남자들의 1920년대 옷은 차분했고, 1950년대는 우아하고 정교했다. 지금처럼 만개한 꽃과 천연의 색이 곱게 쓰이고, 아름답기도 때론 당혹스럽기도 한 옷을 보게 된 건 아마 1970년대를 지나면서부터일 것이다. 히피와 디스코, 펑크, 글램 록의 시대에 남자들의 옷은 놀랄 만큼 변화한다. 특히 이 청춘의 문화들은 침착했던 수트를 건들건들하게 만들어놓았다. 직설적인 색, 합성섬유 특유의 저급한 광택, 선풍기 날개만큼 넙데데한 라펠, 좁은 어깨, 빌딩처럼 쭉 뻗은 나팔바지, 요란한 키퍼 타이, 수트를 이루는 근간들은 저마다 시끄러웠다.
여피의 시대가 당도하기 전, 그리고 이탈리아 혹은 프랑스적인 옷들이 대단해지기 전, ‘스튜디오 54’의 찬란했던 시절 딱 그 지점의 옷이다. 미니멀리즘이나 예민함은 불경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이 옷들의 정체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아메리칸 허슬>에도 잘 재현되어 있다. 크리스천 베일은 오렌지에 가까운 다양한 갈색의 재킷, 팬츠, 베스트에 크고 날카로운 칼라의 셔츠를 풀어헤친 뒤 샛노란 실크 스카프를 맸고, 자주색 벨루어 스리피스 수트를 입기도 했으며, 제레미 레너는 진하늘색 수트에 그보다 연한 하늘색 셔츠를 입었다. 브래들리 쿠퍼는 실키한 자주색 셔츠를 오픈해서 입고 금으로 된 액세서리들을 더했다.
당시에는 액세서리를 휘황하게 쓰는 것이 유난도 아니었다. 대담하고 화려한 가치들이 자연스러웠다.
1970년대식 분방함이 도처에 널린 이 영화와 존 트래볼타, 잘만 킹, 브라이언 페리, 믹 재거가 화려한 청춘이었던 시절을 요즘의 몇몇 호방한 옷과 연관 짓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과감함의 정도가 독보적이어서 경외로운 톰 포드나 한량 같은 까날리와 벨루티, 거기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 에트로, 비비안 웨스트우드, 미쏘니가 얼른 떠오른다. 옷의 형태를 따른다기보다 당시의 분방함이 어제처럼 느껴지는 옷들이다. 정제된 수트에서 느껴지는 건강한 이미지와는 어긋나지만, 분방한 건 분방한 멋이 있다.
향락적으로 보인다 해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디자이너들이 제철 과일처럼 내놓은 옷들이 예사롭지 않게 소담하다.
관능적이고 불량하며, 괜한 호사 같기도 한 옷들을 앞에 두고 무던하게 이성을 챙기기엔 아까운 계절이다.
당신을 ‘허슬러’쯤으로 본다면, 계절 탓을 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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