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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레터 4월호

그리하여 좋은 글이란 ∏

*2013년 7월호 에디터스 레터를 먼저 읽으셔도 좋고, 귀찮다 싶으면 그냥 이번 호만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UpdatedOn March 24, 2014

EDITOR IN CHIEF 박지호

당연한 말이지만 글쓰기는 어렵다. 십 수년간 글쓰는 직업을 갖고 살아왔고 수년간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참 어렵다. 모든 것에 서툴렀고, 그저 욕심만 앞섰던 어린 시절엔 휘황찬란한 글이 세상 모든 것인 줄만 알았다. 문장을 끝내기에 앞서 어떤 기발한 형용사를 더 집어넣어야 할까, 남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대단한 단어를 더 추가해야 할까, 고민하느라 밤을 샜던 적도 많았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나서는 그 반작용 탓인지 모든 수식어를 극단까지 없앤 문장에 깊이 매혹되기도 하였다. 어떻게 하면 토씨 하나라도 더 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어와 동사와 목적어만으로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즉 김훈 식의 이상적 글쓰기에 가닿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유독, 한국식 글쓰기에는 엄숙함과 비장미가 철철 흘러넘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랬다(물론 지금도 여전히). 명징한 문장과 위트의 조합이 가장 중요한 글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영미권 라이선스 남성지에서 일하면서도 항상 ‘글쓰기는 좀 더 어려워야 하는 그 무엇’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듯하다. 당연히 그렇게 나온 결과물들은 함부로 뜯어 고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리도 오래고 오랜 고심과 밤샘 끝에 나온 이 무거운 결과물에 대해 누가 논평이라도 할라치면 발끈 감정부터 앞서기 일쑤였으니…. 지난 달에도 인용한 바 있는 뉴욕 매거진 <파리 리뷰>의 작가 인터뷰를 모은 책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습니다. 초고는 엉망진창이거든요. 고치고 또 고쳐야 해요. 보통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 수정하지요. 초고를 쓰는데 6개월을 보내고, 수정하는 데 6~7개월을 보냅니다.” 이 대목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심지어 헤밍웨이는 이렇게 강조한다. 특유의 마초적인 말투로. “저는 글쓰기를 멈춘 부분까지 매일 다시 고쳐 씁니다. 원고를 모두 마쳤을 때는 당연히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지요. …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쪽을 서른아홉 번이나 고치고 나서야 겨우 만족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단편소설의 황제’ 레이먼드 카버는 긴 한숨을 내뱉는다. “한 단편에 스무 가지나 서른 가지의 다른 수정본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열 개나 열두 개 이하인 경우는 없답니다. …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여덟 번이나 수정했고, 마지막 교정쇄에서도 여전히 수정했어요. 이런 걸 보면 저처럼 초고가 엉망인 작가들이 용기를 낼 수밖에 없지요.” 한 때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인쇄되어 나온 글만 제대로 된 글이라 고집한 적도 있었다. 즉, SNS에 떠도는 수많은 글들은 미완성된, 절대로 완성되어질 수 없는 문장의 묶음이라 무의식적으로 규정해 버렸던 것이다. 이런 편견도 슬그머니 깨져 가고 있다. 이를테면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책은 왜 읽는가?’라는 대중 강연의 한 대목을 거칠게 정리만 한 글에 그렇게도 격하게 감정이입이 될 수가 없었다. “어떤 것에 허영을 부리고 싶다는 것은 그것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일례로 여행가 유성용씨는 항상 짐을 간단하게 싸는 데 유독 히말라야에 갈 때 팥빙수 기계를 가져갔다. 이유는 히말라야의 얼음으로 팥빙수 만들어 먹고 싶어서. 그는 여행에 허영이 있는 것이다. … 나는 욕조에서 책을 본다. 몸을 푹 담그고 책만 빼서 본다. 4~5시간 볼 때도 있다. 사실 사치다. 책이 젖지는 않는다. 나는 달인이니까.” 프로 레슬러 출신 김남훈의 <나보다 쎈 놈과 싸우는 방법>이라는 페이스북 글은 큰 감흥을 내게 던져 주었다. “‘에이 씨발 한놈만 걸려라.’ 주말의 유흥가 뒷골목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내들의 울부짖음입니다. 정작 혼자인 제가 옆으로 가도 그들은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자신들이 안심하고 분풀이를 할 수 있는 아주 약한 한 사람만 걸려라 라고 소리치고 있는 겁니다. … 찌질합니다. 그건 바로 두렵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두렵기 때문에 스트레스의 근원지에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권력과 젠더 또는 빈부. 여러 가지 요소로 서열을 나누고 위에서 아래로 쏟아냅니다.” 결정적으로 최근에 읽은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1980년대에서부터 썼던 칼럼들을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책으로 묶어낸 이 대학자의 글들은 어쩌면 그 내용과 문체가 그리도 하나 같이 쉬운지. 그러면서도 어찌나 현실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지. 새삼, 글 전문가는 아니지만 누구 못지않게 자박하면서도 울림이 큰 문장을 쓰는 김창완 선생의 글을 다시금 들춰보게 된다. 그렇게 울고 난 저녁, 여느 때 같으면 혼자서도 잘 먹는 밥을 엄마가 떠먹여주셨다. 하얀 밥을 물에 말아 한 숟갈씩 떠서 밥그릇 가장자리에 수저로 꼭 눌러 고추장 볶음한 멸치는 입으로 매운 걸 한 번 빨아내고 얹어주시고 멸치김(뱅어포)은 잘게 썰어 얹어주셨다. …… 이제는 노래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어머니의 노래는 거친 세상을 건너 와 강가에 묶여 있는 빈 배다. 그 배가 왜 거기 와 서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배는 우리의 어머니들을 많은 세파로부터 안전하게 모셔 온, 남루하지만 고마운 배다. <이제야 보이네> 中 -김창완 To be continued…

EDITOR IN CHIEF: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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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n chief 박지호

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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