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집은 공원이다. 아파트 일 층, 그것도 단지 끝에 사는 나는 운 좋게도 창문 하나 사이를 두고 나무 가족을 이웃으로 두게 됐다. 내가 명명한 공원의 이름은 ‘정원’이고 정확히 이곳은 성동구 그것도 금호1가의 주민들을 위한 근린시설(동사무소의 설명에 의하면)이다. 사방으로 둘러친 나무 숲 안엔 꽤 넉넉한 폭의 조깅 트랙과 날씬한 몸매를 원하는 그녀들을 위한 운동 기구가 소박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그 모습이 퍽이나 평화롭고 건강하여 게으름을 타고난 나도(어머니가 그러셨다.) 때로 슬리퍼를 끌고 친구네 마실 가듯 어슬렁어슬렁한다. 천생연분인 우리 부부(게으름을 타고 났다.)가 그 둥근 트랙을 박차고 뛰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술이 올라 심장이 말랑말랑해진 밤이나, 햇살이 늘어지도록 흠씬 늦잠을 잔 주말 아침엔 머리를 마주한 창밖의 그놈들에게 농도 걸고 술잔도 청한다. 떼로 서서 광합성을 하는, 건강한 근육을 그런 식으로 키워가는 그놈들은 매일 아침 나의 출근길을 배웅하는데, 나는 때론 놈들이 내 집을 지켜주는 파수꾼이자 집에 남겨둔 자식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느 날은 그 모습에 문득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이 떠올라 ‘뭉게구름’이라는 동요를 베어물고 출근을 하고, 그 어느 날은 미당 선생의 시 구절이 내 차 조수석에 슬쩍 올라타기도 한다. 제아무리 늙어도 내 부모처럼 사과나무를, 라일락나무를 뜰에 심고 가꾸는 그 진한 노동을 감내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흔을 석 달 앞둔 요즘의 나는 왜 일찍이 그것이 노동이 아닌 걸 몰랐을까 하고 후회한다. 그건 아침마다 놈들의 배웅을 받는 재미에 푹 빠져서다. 놈들에게 자극을 받아 집 안 곳곳에 화분을 들였는데 그 수가 늘수록 마음 속 동요가, 시가 때맞춰 늘기 때문이다.
자정이 넘어 회사를 나서는 일이 잦은 나는 퇴근길을 막고 선 빼곡한 입시학원(특수고 시험을 위한 유명 학원이라고 했다.) 차량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학원 입구로 쏟아져 나오는 10대들의 등짝에 매달린 참고서를 걷어내고 나무 숲으로 ‘소풍 가자’고 유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일도 잦아졌다. 나는 그 아이들도 나처럼 나무에 농도 걸고 그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토익 점수가 대부분 800점 이상이라는 천재 중학생 그룹, 혹여 그들이 자라서 어린 날을 추억했을 때 나무를 죽여서 만든 참고서와 책상만 떠올리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스멀스멀 치켜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친환경주의자의 ‘친’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에어컨 없이는 여름을 못나고, 신차 전시장을 거르지 못하고 들어가 시승하고, 그걸 쇼핑 목록에 올려 놓는, 내 스타일에 걸맞는 옷과 소품을 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아 내 삶이 금전적으로 윤택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능력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하루하루 성실히 사는 게 애국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소시민이다. 그리고 그건 절대적으로 옳고 타당한 자세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레나>의 기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매우 상식적인 사람들이니까.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상식과 감성을 믿는다. 그래서 <아레나>라는 패션지를 만들면서-그건 독자와 나름의 취향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늘 상식으로 밑그림을 그린다. 이달 우리는 절대적 가치 기준선에 서서 지극히 상식적이고 옳다 여겨지는 하나의 화두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내·외면 모두 풍성해짐’을 이상으로 하는 <아레나>가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정서적이고, 누군가에겐 사회적이고, 누군가에겐 경제적 논리로 와닿을 그런 일이겠지만 나와 <아레나>는 믿는다, 지식인이라면 모쪼록 품에 품어 부화시켜야 하는 또 하나의 상식이라는 걸.
그래서 그 부화의 첫걸음으로 친환경 선각자들의 말을 빌린 학습의 장을 마련했고 생활 속에 퍼져있는 친환경에 관련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이 싱싱한 기사들은 170~199페이지(여기엔 숲을 만들기 위한 <아레나>의 노력도 기록되어 있다.)를 비롯하여 <아레나> 11월호 곳곳에 심겼다.
이들에게 바람을 쏘여 건강한 이웃으로 자라게 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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