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김영진이 ‘자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린 일러스트, 패션 매거진과 협업한 여러 형식의 작품을 볼 때마다 이곳 너머의 무엇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드로잉을 구성하는 선들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건 작가로서의 의지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당신을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부른 적이 없다. 작가라고 불렀지. 김영진이 간직한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주변 사람에게 그런 의식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나는 오히려 스스로 작가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을 시작했을 때 열의는 많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게 활동하면서 어느 순간 내 그림이 아닌 남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그림 그리는 게 정말 쉽고 기계적인 행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패션 분야에 관한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작업을 할 때만큼은 아직 좀 더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자의식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 중 바스키아, 피카소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삶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나타낸 게 있다.
그것 역시 내 그림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비칠 수도 있다.
‘액자 + 몰스킨 다이어리 + 드로잉’이라는 콘셉트를 떠올리게 된 배경이 있나? 그리고 이 연작들은 전체가 어떻게 구성되나?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노트에 그린 그림이 액자 안에 들어가는 구성이다. 난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결과물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본다면 더 다양한 느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림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대중이 원하고 궁금해하는 모든 것이 캔버스 밖에 있기 때문이다. 캔버스 안에서만 답을 찾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넓은 공간을 찾아낼 것이다. 그림 그리는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 이번 드로잉 작품들은 회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스케치다. 다른 표현 방식에 대해 계속 고민할 것이다.
전시 공간이 카페다. 미술 쪽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기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동안은 개인 전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로잉, 회화만이 아닌 영상, 설치미술 등 폭넓고 다양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전시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작업 방식을 바꾸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 드로잉 작품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기로 했다. 2013년 후반기에 준비한 드로잉 작품들이 이번에 전시된다. 카페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에게 전시 공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작품만을 위한 공간에서 전시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것만이 내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카페라는 좀 더 오픈된 공간이 지금 내 드로잉 분위기와 더 잘 어울린다.
작가로서 중요한 건 항상성 즉, 꾸준히 작품을 생산하는 능력일 텐데 이에 대해 계획을 갖고 있나?
그렇다. 앞으로는 작가로서의 나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것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쌓아온 것을 여러 매체에 표출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작가로서 완주하기 위한 지구력은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착 지점에 다다르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삶을 즐기고 싶다.
photography: 조성재
editor: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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