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정재환 hair 성진숙(아우라) Cooperation 리복 Editor 이현상
축하한다. 어제 우즈베키스탄과의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1차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만약 경기에서 졌으면 오늘 인터뷰가 힘들었을 텐데 나 역시 이겨서 다행이다.
고맙다. 기분 좋게 인터뷰하게 되었다. 지각해서 미안하다. 어제 진규 형이 회식 자리를 마련하는 바람에 술을 조금 마셨다(경기 전반 자책골을 넣은 김진규가 술자리를 마련했다).
노홍철의 저질 댄스 골 세리머니가 인상적이었다.
한 번쯤 꼭 해야지 하고 생각한 것인데,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웃음)
어제 경기에서 제 기량을 발휘했는가?
생각한 것보다 수월하게 경기에 임했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경기라 떨리기도 했지만,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첫째도 자신감, 둘째도 자신감으로 최선을 다했다.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는가?
…. 노력하고 있다.
연고주의는 지양해야 하나 어쩔 수 없다. 나도 인천 사람이다. 당신이 자랑스럽다. 과거 노정윤, 이상헌부터 김남일, 이천수, 최태욱으로 이어지는 부평고 스타 계보를 당신이 이어가고 있다.
축구 명문 부평고를 졸업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선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고, 선배들 못지 않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한다. 선배들도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부평고가 자랑스럽다.
선배들을 자주 보는가?
총회도 있고 해서 자주 보는 편이다. 모임에 꼭 참석한다.
2007년은 당신에게 최고의 해다. 축구 선수로서의 자질도 예전에 비해 일취월장했고 기량도 십분 발휘하고 있다. K리그에서는 외국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득점도 가장 높다. 리복과 스폰서 계약도 맺고 돈도 많이 벌겠다.(웃음)
돈 중요하다. 그런데 생각만큼 돈을 많이 못 번다.(웃음) 연봉 조율할 때, 작년에는 성과가 없어서…. 그러나 올해 연봉 계약은 어찌될지 연말이 기다려진다.(웃음)
베어백 감독에서 박성화 감독으로 바뀐 것이 올림픽 팀의 가장 큰 변화다. 이를 계기로 당신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일단 나를 뽑아주고, 지도해준 베어백 감독이 고맙다. 베어백 감독이 있었다면 지금 내 상황에 안주했을지도 모르고, 자만했을지도…. 박성화 감독 부임을 계기로 내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고 긴장하게 되었다. 나의 잠재된 기량과 기술을 발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생기고. 내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는 좋은 계기다.
팀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나?
당연하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지 않던가, 감독이 바뀌었으니 팀 분위기도 달라질 수밖에. 베어백 감독은 훈련 외의 시간은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외국인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박 감독이 엄격한가?
엄격하기보다는 카리스마가 있어, 팀 내 분위기가 살짝 엄숙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감독님이 대표팀을 맡은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거다. 초반이라 느끼는 내 나름대로의 긴장감도 있다.
베어백은 분명 당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당신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그가 떠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을 텐데.
솔직히 섭섭하기도 했다. 감독님이 계속 계셨으면 하는 바람. 나를 믿고 아시안 컵 출전을 허락했고, 충고를 많이 해줬다. 개인적으로 고마운 분인데,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지금 감독님이 싫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웃음)
지난 아시안 컵 대회 이야기를 해보자. 발탁 되었으나 기회는 많지 않았다. 마지막 일본과의 경기에서 그것도 교체로만 뛰었는데 무슨 생각이 들던가. 경기 중에도 계속 몸을 풀지 않았는가, 몸이 엄청 근질거렸을 텐데.
내가 몸을 가장 많이 풀었다.(웃음) 게임을 뛰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 두 경기 모두 뛰지 못했을 때는 많이 아쉬웠다. 잘 뛸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러나 여유를 갖기로 맘을 다잡았다. 그래도 한·일전에 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벤치에 앉아 많은 생각을 했는데 문득 인천 팀 시절 벤치에 앉아 있던 생각이 들어 확고하게 자신을 채찍질했다. 물론 형들과 같이 국가 대표팀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었다.
국가 대표팀 선발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당신에게 중요한 기회다. 군대에 가야 할 텐데, 메달 달성이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가?
물론 도움이 된다. 그래서 참으로 중요한 문제다.
몇 살인가?
1985년 생, 23세다. 나뿐 아니라 선수들은 3위 안에 들어 메달을 따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다. 병역 문제가 선수에게는 아킬레스건이다. 그래서 다른 대회보다 더 집착하는 것 같다.
축구 선수에게 병역 혜택이 되는 대회가 올림픽 대회 말고 무엇이 있나?
아시안 컵 대회와 월드컵 대회. 시기가 맞지 않아 이런 큰 대회를 뛰지 못하는 선수들도 많다.
난 운이 좋다.
K리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현재 득점 6위(인터뷰 당시)다. 김두현과 당신만이 유일한 국내 선수다. 한국 공격수들이 부진하다. 이유가 뭔가, 단지 브라질에서 온 선수들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고 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배워야 할 점이 많은 선수들이다. 거액을 들여 영입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경기 중의 침착함, 순간 판단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그런 걸 보면 외국 선수들이 K리그에서 뛰는 것을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점들은 배우고, 더욱 노력해 경쟁하면 된다.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다.
말은 잘 통하는가?
축구 용어라 어렵지는 않다. 대신 일상 대화는 힘들다.(웃음)
당신의 장점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예측 불허의 드리블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단점은 뭔가?
큰 대회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정교한 플레이와 세밀함이 부족한 것 같다. 국제 경기에 대한 자신감도 부족하고, 안 해도 되는 실수를 하는 것들. 그리고 골 결정력 부족.
아직 큰 부상은 없었는가?
다행히도 없었다.
조심해라. 몸이 재산 아닌가.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물론 2군 리그에서는 펄펄 날았다. MVP도 차지하는 등 활발했지만, 1군에는 올라서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나?
그것에 대해서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감독님과 잘 맞지 않았던 점도 있었던 것 같고. 인천에서 머문 3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초기의 좋지 않던 이미지가 계속해서 간 것 같다. 나 역시 그곳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하면 실망도 커지니까. 그래서 2군에서라도 있는 힘껏 뛰었다.
대구의 변병주 감독에게서 무엇을 배우는가? 80년대 대표팀 부동의 왼쪽 윙이 그 아니었는가? 포지션이 같아서 당신에게 무언가를 더 주려고 할지 모르겠다.
감독님 역시 스피드를 중시하는 플레이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배후를 주시하라고 지시한다. 뒤 공간을 노리는 것. 그리고 항상 미리 움직일 공간도 생각하고 경기에 임하라고 한다. 나한테 제일 적합한 전술 같다.
주위의 시샘은 없는가?
선배들이 장난을 많이 한다. ‘변근호’란 별명도 생겼다. 그리고 감독에게 부탁해야 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꼭 나를 시킨다.(웃음)
‘태양의 아들’이란 별명도 있다.
구단 팬들이 지어준 건데 맘에 든다. 대구가 뜨거운 곳이라 ‘태양’이 붙었다.
타향살이하는데 힘들지 않은가?
어렸을 때부터 선수 생활과 합숙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힘든 점은 없다. 그리고 부모님이 경기마다 오시기 때문에 외로울 틈이 없다.
여자친구 있나?
없다.
대구 아가씨들 예쁘지 않나?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예쁜 아가씨들은 다 서울로 올라갔다 하더라.(웃음)
최종 목표는? 대개 선수들은 국가 대표가 된 후엔 의례 해외 진출을 말하곤 하던데. 역시 그런가?
나 역시도. 해외 진출은 선수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꿈이다. 혹시라도 실패하고 돌아오더라도 그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 있는 경험일 거다.
좋아하는 구단이 있는가?
지성 선배가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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