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는 유독 정서적인 옷이다. 이를테면 코트라는 두 글자에 이러한 구절이 대뜸 떠오를 수 있다.
소설 <탐정은 바에 있다>의 한 구절, ‘어둠이 내리면 나는 코트 깃을 세우고 어지러운 골목을 돌고 돌아 바에 들어선다. 바텐더는 시키지 않아도 위스키 스트레이트 더블과 위장약 상자, 물 채운 텀블러를 재빠르게 가져다준다’에서 걸러낼 수 있는 하드보일드한 이미지. 혹은 <상실의 시대>에서 ‘나’가 두꺼운 더플코트 너머 나오코의 체온과 숨결을 느꼈던 장면들이라든지, 고골의 <외투>에서 주인공의 처절한 헌 코트와 힘들게 새로 산 코트를 되찾는 여정에서 오는 외로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 코트는 꽤 투박한 형체로 떠오른다. 소매 끝은 해져 있고, 원단에는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중첩되어 있으며, 찬 공기의 냄새가 섬유 한 올마다 배어 있는 코트에 감정을 대입하는 건, 거창한 낭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다. 코트는 꽤 서걱서걱한 잔상으로 남는다.
몸을 추위로부터 격리시키는 코트의 기능적 본질을 뒤로하면, 계절의 심상과 곧잘 이어진다. 쓸쓸함과 냉담, 매정한 공기를 차단하는 푸근함은 복합적으로 와 닿는다. 그게 아무리 코트의 진부한 이미지라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꽤 시적으로 쓰인다.
이런 코트는 반듯하고 날씬하게 정제되기보다는 둔탁함이 앞장선다. 두 치수는 큰 것처럼 어깨선은 내려오고 길이는 정강이 언저리에서 걸을 때마다 펄럭이며, 벨벳처럼 유순해도 두께만큼은 몸을 짓누를 만큼 두툼하다. 커다란 코트는 남자에게 노스탤지어다.
담요처럼 두꺼운 코트 깃을 세워 올리고 담배를 문 알베르 카뮈처럼 말이다. 쭉 뻗어 말쑥한 체스터필드 코트보다는 발마칸 코트나 폴로 코트를 들쳐 업듯 입은 오래된 삽화 속 남자들, 혹은 1980~1990년대 미키 루크, 맷 딜런, 리버 피닉스가 즐겨 입던 크고 담백한 코트에서 느껴지는 청춘의 정서는 겨울의 매몰참을 누그러뜨린다.
결국 겨울의 정중앙에서 필요한 건, 조금은 크거나 긴 코트도 허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인 것이다. 고민 없이 척 걸쳐 입은 듯한 분방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코트는 겨울의 까칠함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둔해야 하며, 드리스 반 노튼의 아름답도록 우아한 코트도, 오래도록 묵은 코트도 대수롭지 않아야 한다. 코트의 온화하고 서정적인 본질은 치밀한 매만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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