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기성율 editor 이민정
내가 (팝아트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당신의 ‘오지랖 넓은’ 매니저라고 치자. 그렇다면 나는 빽빽한 스케줄표를 비집고 ‘오전 10시 영은미술관’ ‘오후 2시 소마미술관’이라고 적어두겠다. 두 곳 모두 당신의 동공을 충분히 자극할 전시지만, 시나리오와 희곡처럼 본질이 다르다.
먼저 영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팝 콘 믹스(Pop& Con Mix)>전은 현재 한국 화단에서 주목받는 12명의 젊은 현대 작가의 시각적 이미지들을 모아놓았다. ‘팝&콘’은 ‘팝아트’와 ‘컨템포러리 아트’의 합성어. 강렬한 색상과 형태로 즐거움을 유도하는 여동헌은 평면성과 입체를 혼융할 뿐 아니라 원근법이나 명암까지 무시하고, 김현숙의 플라 모델 시리즈는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사용법을 유희적으로 해석한다. 이동재는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차용하지만 단순히 찍어내는 기법이 아닌 쌀알을 조형의 최소 단위로 이용한다. 12개의 작품을 ‘휘리릭’ 둘러보고 나면 책상에 쌓인 잡지책 위에, 식탁 크리넥스 티슈 옆에 걸어두고 싶어 안달이 난다. 하지만 딱 그만큼이다. 팝아트를 놀이나 유희 정도로 취급한 점이나 지나치게 가볍고 쉽게 생각한 부분은 안타깝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다음은 소마미술관으로 갈 차례. 팝아트, 라는 단어를 듣고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이미 뉴욕 팝아트에 길들여져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워홀 이전에 영국의 화이트 채플 갤러리에서 리처드 해밀턴이 ‘이것이 내일이다(This is Tomorrow)’라는 전시를 통해 팝을 선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그는 각종 상업 광고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을 콜라주해 ‘오늘날 우리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실감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스터로 제작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핀업 걸 같은 여자가 소파에 걸터앉아 있고 근육질의 남자가 ‘팝(Pop)’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물건을 들고 있다. 한편 1960년 파리에서는 신예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신사실주의’를 내걸고 새로운 개념의 예술을 선포했다. 이들은 TV, 만화책, 영화 잡지 등의 광고에서 차용한 도상들을 작품에 넣었지만‘도시적, 산업적, 광고적 리얼리티의 시적 재활용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단답형 팝과는 다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누보 팝(Les Nouveaux Pop)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중국 등 7개국의 작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1. 소비 사회의 구조를 인정하고 2. 일상을 벗어나지 않은 소재로 3. 컬러풀하고 4. 대상을 덩어리와 미로, 스펙터클한 액션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5. 인간과 자연의 연결 고리를 놓지 않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한다는 점이다. 마리아 마누엘라는 서구 문화의 허무주의가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 분석하는가 하면, 시실리아 큐발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보여주기도 한다. 안토니오 페립은 <보그> 커버로 황소를 등장시켰고 7명의 작가로 뭉친 크래킹 아트 그룹은 전시장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펭귄과 곰에게 플라스틱 옷을 입혔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도움말 박윤정(소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문의 영은미술관(031-761-0137), 소마미술관(02-410-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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