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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ed for Tweed

트위드는 따분한 소재가 아니다.

UpdatedOn December 10, 2013

수식어로서 ‘거친’이라는 단어는 때론 정반대의 성질을 강조하기 위해 앞에 놓이기도 한다.
문장은 결국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종결되는 것. 난폭함과 퉁명스러움, 투박함 이면의 착한 성질은 이 수식어를 거쳐 더욱 고귀해진다. 거침의 성질을 견딜 수 있는 건 그렇지 않은 성질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함축적이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거칠지만 온화한, 투박하지만 신사적인, 정반대의 것들이 공존하는 트위드의 성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트위드의 외양은 날것처럼 꺼슬하지만 물리적으로든 심상으로든 따뜻함의 본질을 공유한다.
흙먼지의 냄새, 찬 공기와 숲의 냄새, 지독한 향수의 잔향, 옅게 밴 담배 냄새, 위스키의 강한 피트 향, 오래도록 입어 마치 세월이 도포된 듯한 트위드 재킷이라면 더욱 함축적이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트위드의 태생은 스코틀랜드 지방의 트위드 강변에서 제직되었다는 설, 트윌(Tweel)에서 변화된 명칭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다. 트위드의 정의는 굵은 양모로 직물을 짜고 표면을 가공해 거친 감촉을 낸 모직물이라는 것. 사전적 의미로서 ‘트위디(Tweedy)’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며, 트위드를 즐겨 입는 시골 상류층쯤으로 나와 있다.

이 몇 가지 정보들을 추려봤을 때 트위드는 오랜 시간 사냥과 스포츠, 자연 활동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아주 신사적인 코드를 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 가치가 강조된 재료이기 때문에 보수성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트위드의 이미지는 19세기부터 꾸준히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트위드의 가치가 하락하던 시절은 신사적이고 상류층적인 이미지는 증발한 채 따분함만 남기도 했다.

트위드를 입는 남자는 고리타분한 선생님이나 연금 수급자 정도로 보였고, 그렇게 트위드는 케케묵은 것들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꽤 긴 시간 침묵하고 있었다. 트위드가 다시 패션으로 돌아온 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패션의 근본을 재확인하려는 풍토, 클래식의 유행, 트위드 런, 굿 우드 리바이벌 같은 행사들, 하이 패션과의 접목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트위드의 존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해리스 트위드의 드라이버 캡이나 도니골 트위드 수트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고, ‘아카데믹 시크(Academic Chic)’라는 명목으로 따분함과 고리타분함이 패션으로 수용되었다. 이 같은 변화들은 사양되고 있던 트위드 제작 산업을 소생시켰고, 영국 패션 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해리스 트위드의 경우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매출이 4배 이상 뛰었고, 영국 울 산업 종사자의 수는 10년 전보다 6천 명 이상 늘었다. 이제 트위드는 금세 사그라질 유행의 단계를 벗어났다.

트위드의 밴드왜건 효과는 럭셔리 하우스의 세련된 접근을 통해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겨울 우리가 입어야 할 트위드 소재의 옷들은 트위드의 이미지를 1차원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면모마저 발굴해낸다. 거칠지만 온화한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신사적, 구상적 혹은 모던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

아주 현대적으로 정돈한 버버리 프로섬의 아우터들, 까날리의 날렵한 수트, 구찌의 이브닝 룩, 크리스토프 르메르와 드리스 반 노튼, 사카이식의 우아함, 라프 시몬스와 크리스 반 아쉐의 조형미에서도 트위드의 가치는 생생하다. 과거의 남자들이 트위드를 몸에 걸치고 젖은 흙을 밟았다면, 지금의 트위드는 윤택한 대리석과 샹들리에가 달린 레스토랑에서도 유효하다.
트위드는 더 이상 보수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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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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