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어로서 ‘거친’이라는 단어는 때론 정반대의 성질을 강조하기 위해 앞에 놓이기도 한다.
문장은 결국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종결되는 것. 난폭함과 퉁명스러움, 투박함 이면의 착한 성질은 이 수식어를 거쳐 더욱 고귀해진다. 거침의 성질을 견딜 수 있는 건 그렇지 않은 성질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함축적이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거칠지만 온화한, 투박하지만 신사적인, 정반대의 것들이 공존하는 트위드의 성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트위드의 외양은 날것처럼 꺼슬하지만 물리적으로든 심상으로든 따뜻함의 본질을 공유한다.
흙먼지의 냄새, 찬 공기와 숲의 냄새, 지독한 향수의 잔향, 옅게 밴 담배 냄새, 위스키의 강한 피트 향, 오래도록 입어 마치 세월이 도포된 듯한 트위드 재킷이라면 더욱 함축적이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트위드의 태생은 스코틀랜드 지방의 트위드 강변에서 제직되었다는 설, 트윌(Tweel)에서 변화된 명칭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다. 트위드의 정의는 굵은 양모로 직물을 짜고 표면을 가공해 거친 감촉을 낸 모직물이라는 것. 사전적 의미로서 ‘트위디(Tweedy)’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며, 트위드를 즐겨 입는 시골 상류층쯤으로 나와 있다.
이 몇 가지 정보들을 추려봤을 때 트위드는 오랜 시간 사냥과 스포츠, 자연 활동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아주 신사적인 코드를 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 가치가 강조된 재료이기 때문에 보수성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트위드의 이미지는 19세기부터 꾸준히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트위드의 가치가 하락하던 시절은 신사적이고 상류층적인 이미지는 증발한 채 따분함만 남기도 했다.
트위드를 입는 남자는 고리타분한 선생님이나 연금 수급자 정도로 보였고, 그렇게 트위드는 케케묵은 것들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꽤 긴 시간 침묵하고 있었다. 트위드가 다시 패션으로 돌아온 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패션의 근본을 재확인하려는 풍토, 클래식의 유행, 트위드 런, 굿 우드 리바이벌 같은 행사들, 하이 패션과의 접목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트위드의 존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해리스 트위드의 드라이버 캡이나 도니골 트위드 수트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고, ‘아카데믹 시크(Academic Chic)’라는 명목으로 따분함과 고리타분함이 패션으로 수용되었다. 이 같은 변화들은 사양되고 있던 트위드 제작 산업을 소생시켰고, 영국 패션 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해리스 트위드의 경우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매출이 4배 이상 뛰었고, 영국 울 산업 종사자의 수는 10년 전보다 6천 명 이상 늘었다. 이제 트위드는 금세 사그라질 유행의 단계를 벗어났다.
트위드의 밴드왜건 효과는 럭셔리 하우스의 세련된 접근을 통해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겨울 우리가 입어야 할 트위드 소재의 옷들은 트위드의 이미지를 1차원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면모마저 발굴해낸다. 거칠지만 온화한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신사적, 구상적 혹은 모던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
아주 현대적으로 정돈한 버버리 프로섬의 아우터들, 까날리의 날렵한 수트, 구찌의 이브닝 룩, 크리스토프 르메르와 드리스 반 노튼, 사카이식의 우아함, 라프 시몬스와 크리스 반 아쉐의 조형미에서도 트위드의 가치는 생생하다. 과거의 남자들이 트위드를 몸에 걸치고 젖은 흙을 밟았다면, 지금의 트위드는 윤택한 대리석과 샹들리에가 달린 레스토랑에서도 유효하다.
트위드는 더 이상 보수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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