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 바탕에 흰 줄무늬 재킷·베스트·팬츠는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타이·실버 커프링크스는 모두 랄프 로렌, 흰 바탕에 회색 줄무늬 셔츠는 S.T.듀퐁 제품.
부산국제영화제에 <톱스타>를 들고 갔다. 어땠나?
제2회 때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봤다. 연기자 타이틀로 영화제에 간 건 아마 제6회, 7회부터일 거다. 제16회 때는 폐막작인 <카멜리아>에 출연해 부산에 갔다. 그때도 감회가 새롭더라. 내가 연기를 하기 전부터 있었던 영화제고, 아시아에선 최고의 영화제에 작품을 들고 간다는 게 굉장히 고무적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 번도 상업 영화 프리미어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간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제에 가면 영화도 좀 보나?
웬만하면 영화를 본다. 아마 폐막작을 가장 많이 본 연기자 중 한 명일 거다. 공교롭게도 그동안 폐막작에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많이 상영됐다. 안노 히데야키의 <에반게리온-서>는 정말 보고 싶어서 폐막식에 참석했다. 영화 끝날 때까지 있으면 사람들이 다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다른 일정 때문에 개막식에 참석했는데도 영화를 못 봤다.
활동하기 전에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면 내가 저기 서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나?
그런 생각은 안 했다. 그때는 그냥 지적 호기심이 많았다. 안타까움도 있었고. 좋은 영화인데 극장 상영도 못할 영화가 굉장히 많았으니까. 데이터베이스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을 나중에 볼 수 없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쫓아다녔다.
그때 봤던 것 중에 기억나는 작품이 있나?
갑자기 떠오르는 건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철남>. 컬러를 다 배제해버린 강렬함이 굉장했다. 가와지리 요시와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뱀파이어 헌터 D>도 생각난다. 그때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극장 퀄리티가 좀 떨어졌다. 그때 가와지리 요시와키가 실망을 금치 못하고 상영을 중단하라고 했고, 자기가 사운드를 최대한 보정한 후 다시 상영할 테니 10여 분만 달라고 했다.
그걸 보며 가와지리 요시와키라는 애니메이션 거장의 열정에 놀랐다.
<톱스타> 관련 인터뷰에서, 박중훈 감독이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묻고 따지지도 않고 수락했다고 했다. 어떤 의미였나?
지금까지 장편영화만 12편을 했다. 연기하면서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의 마음을 감독님이 잘 몰라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두 장르를 아우르는 사람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컸다. 전체적인 영화 시스템도 능수능란하게 잘 알고, 많은 작품에 출연해 노하우도 있는 그런. 박중훈 감독님이 <톱스타>를 말하며 톱스타의 어떤 면을 카메라로 팔로하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기성 감독님이었다면 굉장히 주춤하고 따져들었을 거다. 하지만 데뷔 1년 만에 톱스타가 돼 27년 동안 그 자리를 고수하신 분이 감독이 되어 찍는다면 무조건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진짜를 진짜처럼 찍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회색 베스트는 브리오니, 회색 패턴 셔츠는 S.T.듀퐁, 보라색 니트 타이는 발란타인 제품.
배우끼리 우리도 제대로 만들어보자, 하는 동지 의식을 느끼며 만드는 재미가 있었겠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 얘기를 하는 거잖나. 영화가 시상식 장면에서 시작된다. 청룡영화제나 백상 때 정말 리얼한 얘기들 있잖나. 영화에서도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정밀하게 다듬는 거다. 1부터 10까지
얘기가 있으면 영화적인 부분들을 뽑아서 만들어야 하잖나. 그때 합의점을 찾는 게 굉장히 쉬웠다.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많이 수용되기도 하고?
실제 얘기도 많이 있다. 감독님께 이 신은 경험이 좀 들어가 있지 않나요? 하면 몇 년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굉장히 재밌었다. 영화는 물론 허구지만 실제적인 얘기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실제와 닿아 있는 사람들도 있고.
영화 속 캐릭터 중에 누구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고.
나도 한번 찍고 싶다, 이런 생각 들지 않나?
가정해서 많이 생각하긴 한다. 대본을 볼 때 일단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하잖나. 그런 작업은 어느 연기자나 매 순간 할 거다.
대본을 볼 때 상상 속으로 장소를 섭외하고 인물을 캐스팅하고 조명을 생각하며 넘기잖나. 그러면서 많이 훈련한다. 머릿속에는 탄생하지 못한 무수한 영화들이 있다. 만약에 내가 찍는다면 하고 머릿속에 상상했던 것을 현장에 가서 비교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자라면 누구나 다 감독의 작업을 하는 거 같다. 그렇지만 내가 실제로 직접 해보겠다고는, 아직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욕심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들, 영화의 사운드나 액션 코디네이터를 해보고 싶다. 시대극 같은 작품에서 미술 소품도 맡아보고 싶고.
전방위적으로 관심이 많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굉장히 많았다. 이모가 SLR 카메라를 선물해주셨다. 사진을 찍다 보니 더 관심이 생겼다. 음악도 좋아하고, 옷도 좋아했다. 이 모든 게 합쳐진 게 영화다. 고등학교 때 시네마테크 회원이었다. 거기 가면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잖나.
당시엔 모노 사운드였다. 헤드폰에서 한쪽만 소리가 나서 듣다가 다른 쪽으로 바꿔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나도 영화를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연기가 아니고 영화. 영화를 해야 하는데 내가 어디에 재능이 있지? 카메라인가? 이렇게 막 생각했다.
지금은 운이 좋게도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을 가졌다.
관심 있는 걸 잘 누릴 좋은 위치에 있다. 즐겁겠다.
촬영할 때만큼 즐거운 건 없다. SNS 같은 걸 보면 자기 직업에 대해서 많이 토로하잖나. 불편함이나 힘든 걸 말한다. 그걸 보면 주변에 정말 힘든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도 촬영하면서 트러블이 많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제일 재밌다.
제일 짜릿한 순간이고. 정말 복 받은 직업이다. 역할의 고저를 떠나서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만큼 재밌는 건 없는 거 같다. 나중에 자료로 남고 썩지도 않고. 굉장히 매력적이다.
행복한가?
행복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많이 불안하지는 않다. 올라갈 곳이 더 많으니까. 정말 톱스타들 있잖나. 할리우드 톱스타들은 잠 못 잘 것 같다. 최고 작품에 출연하다가 갑자기 캐스팅보드에서 누락되거나 스캔들에 싸이는 두려움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난 이제 앞으로 할 게 더 많다. 영화에서 12가지 캐릭터밖에 못 해봤다.
니트 소재의 피케 셔츠·골드 프레임 벨트는 모두 구찌,
체크 팬츠는 발렌티노 by 쿤 제품.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구가 전해진다. 하지만 그동안 맡은 캐릭터를 보면 갇힌 느낌이 좀 든다.
타입 캐스팅으로 참여한 작품들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예를 들어 부잣집 아들에 공부도 잘해서 검사가 된, 다 가진 사람. 최고의 여자도 있는 그런 사람. 그런데 그 여자는 이제 부족해 보이는 사람한테 간다.
이런 것들은 무수하게 소진된 이미지잖나. 이런 배역을 맡아 특별하게 궤도에서 벗어나버리면 연기를 못하는 거다. 그래서 일정 수준에 맞추려고 하면 부자연스러워지고. 거기에 갇힌 기간이 길었다. 이제는 그런 거 덜 하고 내가 잘하는 것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부담감이 없다. 아직 안 보여준 게 많아 여유 있다.
타입 캐스팅이 아닌, 그냥 사는 얘기를 찍고 싶다. 보다 보면 그런 사람은 분명히 있을 거야, 하고 여겨지는 캐릭터. 생각보다 하드코어도 안 해봤다.
작년에 SNS에서 은퇴 해프닝이 있었다.
트위터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잠깐 쉬겠다는 얘기였다.
그때 그 글을 쓴 이유는 딱 하나다. 매니저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난 매니저에게 쉰다고 얘기했는데, 대본은 계속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검토하겠다고 답하다 보면 주변 분들에게 실수하겠구나 생각해 아예 정확히 일정 기간 쉰다고 공표한 거다. 대본을 줬는데 대답도 없는,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그 한 부분만 잡아서 은퇴라고 과장하니 난감했다.
왜 이런 기사를 내는 거지? 전체 맥락을 봐야 하지 않나? 했다. 매스컴에서 그렇게 써버리면, 난 아니라고 누구에게 얘기해야 하나. 이건 사실과 다르다고 하면, 사실과 다르답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이러지 않는다. 그건 그냥 묻혀버린다. 그렇다 보니 과격한 표현을 쓰는 거다.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하면 또 싸움이 시작된다. SNS의 역기능이다.
그 당시에는 왜 쉬고 싶었나?
정확하게 뭐 하나 때문에 쉬고 싶은 건 아니었다. 쉬지 않고 계속 작품에 출연했을 때였다. 한 1년 돌아보고 싶었다. 왜 그런 거 있잖나. 30대 후반, 40대를 앞두고 있으니까 뭔가 바꿔보고 싶고. 트위터는 내 주변 사람에게 정보를 주는 거잖나.
난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기자가 은퇴라고 써버리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거다.
◀ 코듀로이 소재의 갈색 수트·회색 터틀넥 니트 톱·주머니에 꽂은 포켓치프는 모두 브리오니, 소품처럼 사용한 안경은 타테오시안 by 비씨디 코리아 제품.
연기하는 것 외에 하는 게 많다. DJ로 활동하기도 하고 가게도 내고. 여기저기
관심도 많고 한 번 빠지면 심취하는 성향도 있다.
매 순간 역동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다.
재밌다. 1988년도 올림픽 때쯤에 언더월드가 세상에 데뷔했다. 그때 엄청나게 센세이션이었다. 16비트 컴퓨터 시절에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들었으니 문화적인 충격이 엄청 났다. 그러면서 많은 뮤지션들을 접하며 나이가 들어버린 거다. 이런 음악을 보통 사람보다 많이 들은 사람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내 스타일대로 한 시간 세트를 만들어서 튼다면 굉장히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마인드’도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나?
딱 하나였다. 어묵바를 좋아한다. 가서 맥주 한잔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일반 어묵바는 왜색이 짙잖나. 위생 상태도 그렇고 시끄럽기도 하고. 왜 꼭 선술집 느낌으로 먹어야 하는지 불만이었다. 발상을 전환해 깔끔하고 멋있게 대리석 쫙 깔아놓고 먹어도 괜찮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
벨기에에서 공부하던 애가 스시를 너무 좋아해 일본에서 한 1년 스시 공부하고 자기 나라 돌아가 창업 자금 얻어서 차린 가게가 이렇지 않겠나 하는 인테리어.
연기 활동 외에 지금은 뭐에 관심 있나? 독특한 게 튀어나올 듯하다.
작년 겨울에 한창 꽂혔던 게 장비였다. 촬영 장비 중에서도 그립 장비. 산길에서 연기자가 말 타고 산을 뛰어갈 때 카메라가 파워풀하게 못 움직인다. 그럴 때 보면 안타깝더라. 자본이 많은 할리우드를 보면 기가 찬 장비들이 많잖나. 한국은 영화가 발전했는데 그런 장비 부분에서는 떨어지더라. 이런 걸 만들어보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과 만들려고 했다. 주변 카메라 감독님과 많이 얘기도 하고. 이런 장비가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하면 너무 좋다고 하시고, 이런 걸 만들면 쓰실 의향 있으세요? 하고 얘기하고.
대본을 보면 이런 장비는 정말 필요하겠다 싶더라. 오지랖인가?
마흔을 바라보는 시기다. 막연한 두려움도 있을 테다. 어떻게 살려고 하나?
글쎄, 굉장히 철학적인 건데, 멀리 볼수록 괴로운 거 같다. 멀리 내다볼수록 현재 불만이 생기고, 높은 곳을 볼수록 내 위치가 낮으니까 괴롭다. 그러다 보면 오버페이스가 된다. 헐떡거리며 뛰게 된다. 1,000m 고산을 올라가야 하는데 100m 달리기로 힘 빼는 꼴이 돼버리잖나. 그런 것보다는 그날그날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한 지 몇 년 됐지만 정작 잘 그러지 못한다.
이게 가장 현실적이다. 짧게 지금 이 순간이 괜찮은가?
이제 한강에 놀러 간다고?
아, 친한 분 중에 배를 수입해서 테스트하는 분이 있다. 한강에 요트 정박해놓은 곳에 간다.
요트 타는 토요일 오후라, 부럽다!
photography: 김태선
editor: 김종훈
STYLIST: 이진규
HAIR&MAKE-UP: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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