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는 걸 보면 흥이 있다. 극중 캐릭터를 떠나 배우의 성향이랄까?
기본적으로 좀 밝은 편이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도 그냥 하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합쳐져서 한 인간이 된다고. 그렇다고 심오하거나 철학적인 의미는 아니다. 작품 이미지 자체가 한 형체로, 그냥 한 인간으로 느껴지더라. 그래서 보고 싶은 사람도, 미운 사람도 있다.
어떤 작품이 추억이 많은 사람인가?
폼 잡지 않고 그냥 말하자면, <민들레 가족>이다. MBC에서 3년 전에 한 주말 드라마다. 그 작품에 출연할 때 애증 관계인 사람들도 있었고 따뜻하게 느낀 사람들도 있었다. 주말 드라마라고 하면 카리스마가 조금 덜해 보이고 아는 사람도 적겠지만, 마음에는 잔잔하게 남아 있다. 그때 연기하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고. 대외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중간점에 있는 작품인 영화 <바람>도 많이 기억에 남는다.
원작자로 이름을 올린 작품이기도 하니까.
연기 인생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아직 얼마 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대외적으로도 그렇고, 연기에 대한 확신이라고 해야 할까? 대중이나 관계자에게 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내가 연기에 대한 믿음이 있고 자신이 있으면 그 모습이 스크린이나 관객에게 전해지는 걸 인정받은 거니까. 아, 이런 부분을 좋아하는구나, 했다. 다행인 건 나도 하면서 굉장히 즐거웠다.
왜 그전에는 <바람> 같은 작품을 못 만났을까?
<바람> 이전에는 역할보다는 일단 작품에 임하는 게 우선이었다.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서 오디션을 봤는데 그냥 백반이 나온 거다. 고기를 좋아하는데 햇반 하나 받은 거다. 당시에는 배가 고프니까 그냥 먹었다. 진짜 좋아하는 음식을 먹은 적은 <바람>이 처음이었다. <바람>을 고기라고 생각하면 그때 진짜 내가 고기를 좋아한다고 느꼈고,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관객도 꿀꺽거리는구나, 생각했다. 고기를 먹기 전까지, 그 기간이 길었다.
긴 시간, 버틸 수 있는 힘은 뭐였나?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무슨 근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사건이 쌓여가면서 그 자신감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서울예대 들어갔던 것부터, 더 거슬러가면 연기 학원 오디션에 붙었다는 것, 더 거슬러 올라가면 소풍 때 애들 앞에서 춤을 췄는데 박수갈채를 받은 것부터. 오디션을 볼 때도 몇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조연이 됐든 단역이 됐든 캐스팅이 됐다는 것, 그게 한 작품, 두 작품 쌓이기 시작하면서 확신이 점점 생겼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깡이 생겼다.
언제부터 배우를 꿈꿨나?
어릴 때부터 약간 꿈틀대는 게 있었다. 일단 이쪽 계통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들어가니 연기인지 노래인지 개그인지 잘 모르겠더라. 주목받는 걸 좋아했다. 준비된 상태에서 주목시키고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체계적으로 배운 건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춤에 관심이 있었다.
주목시키는 데는 춤이 가장 확실하니까.
반응이 바로 나오니까. 저 춤을 내가 소화했느냐 안 했느냐는 보면 바로 나타나니까.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거 같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때 이제 체계적인 걸 배워야 하는데 그때 당시엔 댄스 학원이라든지 개그 학원이라든지 그런 게 없었다. 그냥 연기 학원이 전부였다. 특히 부산은 지역적으로 그런 곳이 활성화되지 않았으니까.
무스탕은 시빌리아 by 베나코, 재킷은 휴고 보스, 셔츠는 로다 by 로다 코리아,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
MTM 같은?
맞다. 그런 학원. 부산에 딱 한 곳 있었다. 처음 생겼을 때 오디션까지 봐서 들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형식적이고 장삿속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래도 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었다고 하니까 나한테 가능성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아무튼 내게는 동기 부여가 됐다.
한 인터뷰에서 봤다. 배우 황정민이 기회가 한 번은 온다고 한 적이 있어 그 말을 가슴에 품었다고. 얼마 전 종영한 <최고다 이순신>에서 호평받았다. 기회가 온 걸까?
솔직히 말해 몸 풀기로 한 거다. 그전 작품인 <붉은 가족>이라는 영화도 소집 해제하고 몸 풀기로 한 거고. 계속 그럴 거 같다. 설사 기회가 오더라도 여기서 내가 힘 한 번 주자, 하면 그때부터 망가진다. 계속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응답하라 1994>도 기회라고 생각한다.
맞다. 흐름이 좋다.
<응답하라 1994>는 내 고향이 부산이고, 또 내가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소재이자 장르라서 하나 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단편 영화, 독립 영화 촬영장 간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해야 나 스스로 재미있게 놀 수 있고, 현장에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자꾸 자기 최면을 건다.
시작하기도 전인데 언론에서 관심이 많다.
리딩만 해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고 사진 한 장 찍어도 이슈가 되어버리니까.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관심을 넘어서 좀 부담스럽다고 해야 하나? 긴장된다.
얼마 전 캐릭터 포스터가 나왔다. 일명 ‘추리닝’을 입었는데 옷이 착 붙는다. 이런 평이 배우에겐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아직까지 좋다. 난 아직 어떤 이미지라는 게 없다. 어떤 분들은 내가 예전에 악역을 많이 해 좀 거친 이미지가 있다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개구쟁이 같은 재미있는 캐릭터를 많이 했다고 인식한다. 모두 단편적인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고정된 이미지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거다. <최고다 이순신>으로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갔지만, 아직 확고한 이미지는 없다. 그래서 괜찮다. 재미있는 느낌으로 이미지가 안착되어도 강한 걸 잘 즐기는 편이니 바꿀 수 있고, 또 나름대로 멜로 성향이 있어 그 부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내가 눈물이 많다.(웃음)
못 본 사이 <붉은 가족>이란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 영화는, 정우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좀 생뚱맞은 느낌이다.
소집 해제하고 나서 2년의 공백이 있었다. <바람>으로 신인상을 받긴 했지만, 이후 들어온 역할을 보면 날 소모한다는 느낌이 많았다. 한 달에 2, 3개씩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사투리 쓰는 작품은 다 들어왔다. 하지만 <바람>에서 잡은 감을 더 느끼고 배운 걸 이어나가고 싶었다. 쉽게 말해 포지션 부분이다. 공격수를 하고 싶은 마음인데 수비수 느낌의 작품들이 많이 들어왔으니까. 한 번이라도 공격을 해봤는데 최소한 미드필더는 해봐야 하지 않나, 그래야 공격하는 감을 잃지 않을 텐데, 그랬다. 무조건 공격수를 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전 작품에서 공격수를 했고 조금 인정받았는데 다시 수비수를 하면.
한순간에 감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게 두려웠다. 그동안 작품에 대해 굉장히 갈증을 느꼈다. 더구나 이 음식을 먹으면 내가 이 음식을 좋아하는 줄 알고 다른 이들도 그 음식만 줄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제일 무서웠던 건 내가 거기에 안착할 거 같아서다.
이것도 괜찮아, 배불러, 이런 마음?
기계적으로 돌아갈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아예 무에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붉은 가족>을 택했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에서 내가 공격수를 맡을 수 있는 경우가 드무니까. 또 예전부터 김기덕 감독님 작품을 너무 하고 싶었다. 제작자이시긴 하지만, 날것 같은 부분에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파수꾼> 같은 좋은 독립 영화와 만나고 싶어도 거의 학교 인맥으로 연결되니 그런 기회가 흔치 않다.
시나리오도 공부했다고 들었다.
군 복무할 때 시간이 많이 남아서 어설프게나마 공부했다. 2년 동안 시나리오 딱 한 편 썼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책이 있다. 연출 공부하는 사람은 대부분 알 텐데, 그 책도 수박 겉 핥기 정도지만 읽었다.
공부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시나리오 잘 고르는) 선구안이 좋은 배우가 오래간다.
작품을 선택할 때 내가 왜 하는지 분명히
알고 간다. 그게 돈일 수도, 인지도일 수도, 내공을 쌓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물론 제일 좋은 건 이 세 가지를 전부 충족시키는 작품이겠지만.
하나도 겨우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하니까.
아직까지는 첫 번째 얘기한 돈은 제일 마지막이다. 내 가치를 높게 알아주는 일이면 그만큼 더 열심히 한다. 보는 눈을 많이 기르고 싶었다. 연출자 입장에서 배우를 생각하는 게 어떤 기분일지 알고 싶었다. 연출자가 뭔가 얘기했을 때 잘 알아들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내 고집을 세웠던 거 같다.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연기가 잘 나오지 않는 거다. 그런데 나중에 방영할 때나 완성된 영화를 보니 아차, 싶었다. 연출자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알겠더라.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 거다.
시나리오를 공부하다 보면 전체 그림이 보이니까.
많이 도움 됐다. <의형제>든 <우아한 세계>든 <올드보이>든 평이 좋았던, 내가 정말 재미있게 본 작품들의 시나리오를 다시 찾아서 봤다. 영화와 시나리오를 비교해서 자주 보다 보니 다양한 면이 보였다. 아, 이 배우는 이런 느낌으로 시나리오를 이렇게 표현했구나. 아, 이 감독님은 이런 느낌으로 글을 영상으로 표현했구나, 하면서. 상상력이 많이 풍부해졌다. 공부할 때 구조를 짜면서 시나리오를 썼던 게 아무래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바람 2>를 다 썼다. 이 작품을 언제 어떤 이와 만나서 이렇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제 지금까지 배우고 쌓은 경험을 모아서 <응답하라 1994>에서 활용하겠다.
그쪽에 집중해야지. 그렇다고 내가 <응답하라 1994>에서 뭘 써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그냥 현장 가면 그때그때 즐기면서 하고 있다. 대중에게 보여주는, 대중의 반응을 볼 수 있는 첫 작품인 거 같다. 감독님도 너무 좋다. 내가 너무 원하는, 이상형의 감독님이다.
photography: 김태선
editor: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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