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을 때 의외로 즐기더라.
쑥스러울 때도 있지만 스스럼없을 땐 약간 즐기려고 한다. 그동안 (살이 쪄서) 사이즈가 맞지 않아 못 입었던 옷을 그나마 입으니 기분 좋더라. 군대 다녀와서 살이 좀 쪘다. 영화 <퍼펙트게임> 찍을 때는 일부러 찌우고. 그나저나 사진이 잘 나와야 하는데….
제대로 못 보고 나왔다.
잘 나왔다. 뻣뻣하게 서 있었으면 사진이 밋밋할 뻔했다.
원래 뻣뻣하다. 사실 예전에는 사진 촬영하는 데 거부감이 있었다. 인위적이라고 생각했다. 정지 동작을 내가 만들어내야 하는 게 싫었다. ENG 카메라 같은 동영상 카메라는 호흡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데 정지 동작은 왠지…. 그래도 지금은 많이 편안해졌다. 이번 촬영은 머리에 피스를 붙여서 평소 내가 낼 수 없는 분위기를 연출해 신났다. 그 분위기에 심취한 거다.
슬쩍 찍힌 사진을 봤는데 타이거 JK 형 느낌이 나더라. 그래서 아예 그 형의 느낌을 따라 해봤다. 그래서 더 재밌었다.
얼마 전에 <화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워낙 인터뷰 기피 대상 1호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사람이 달라졌다. 힘을 뺐다고 할까?
힘을 뺀 게 맞다. 예전에는 내가 주변과 관계를 맺지 않아 세상을 잘 몰랐다. 그냥 나만 알았다. 내 할 일만 하면 됐고 다른 사람 일은 신경 안 쓰고 사는 게 편했다. 그런데 내가 힘든 시간을 겪을 때 내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다.
내게는 없는 소통이나 호흡, 사람에 대한 관심? 그게 보이니 나도 열리게 되더라. 그리고 표현하지 않으면 내 심중을 전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맞다. 모두가 내 마음 같지 않다.
내 심중을 누구나 안다고 생각했다. 모르더라. 예전에 난 가까이에 있는 사람, 아내나 친구에게 거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냥 듣기만 하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방도 잘 모르고, 알아도 관계가 일방적으로 흘러가더라. 재미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많이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까지 했다. TV에서 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서까지 말이다. 좀 말하다 보니까 이제 늘더라.
말 좀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가 언제인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나서부터다. 방송에서도 얘기했지만, 자꾸 헤어졌다 만났다 반복했다. 나는 표현한다고 했는데 저쪽에서는 몰라주는 거 같았다. 내가 더 나아가서 소통해야 더 깊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자연스럽게 느꼈다.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체감한 거다. 내가 하는 일도 어찌 보면 전달하는 거다. 하지만 예전에는 들을 사람은 듣고 말 사람은 말아라, 이런 입장이었다.
지금은 좋은 것이 있으면 더 잘 표현해서 함께 좋은 세상을 꿈꾸는, 공의나 대의를 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려면 내 생각을 잘 전해야 하고, 상대방의 생각도 잘 들어야 한다. 그걸 안 거다.
꼭 갑자기 종교에 귀의해 확 바뀐 사람처럼 보인다.
사실 은혜를 좀 많이 받았다. 교회는 예전부터 다녔지만, 조금 뜨뜻미지근했다. 다닐 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 마음을 알게 해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버지 마음’이란 얘기가 많이 들린다. 그게 뭘까 의문에 빠져 있다가 내가 실제로 아버지가 되면서 이해하게 됐다. 그때부터 관점이 완전히 달라지더라.
검은색 수트는 권오수 클래식 제품.
애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그런가?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마인드부터 달라져야 하고, 실제로 달라진다.
그러다 보면 예전 자신의 장점이나 매력이 희석되거나 희생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그걸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나마 인기 있었지만, 그 매력은 사람을 병들게 하더라. 이게 좋아? 이게 내 색깔? 그러면 이걸 지켜야 해? 지켜볼까? 그 순간, 나는 고립되더라. 더 발전하고 성숙해야 하는데 하나만 고수하다가 고립되는 거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어느 순간 아, 내가 고립됐구나, 느꼈다.
사람이 바뀌려고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늘의 주제는 아버지의 마음인 거 같다. 막상 내가 아버지가 되니까 관점이 달라지더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냥. 걱정거리가 걱정거리가 아닌 상황, 당연한 게 된다. 쉽게 얘기하면 받아들인다고 할까? 말은 쉽게 해도, 산을 잘 넘어야 한다.
남자는 다 똑같다. 처음에는 솔직히 힘들다. 억지로 움직였다.
내 패턴을 버린다는 건 나를 버린다는 거였다. 나를 내려놓는다는, 나를 죽인다는 게 쉽진 않았다. 진짜 높은 산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없는 게 아닌 걸 알게 됐다. 고리타분하게 말하면 성장하고 성숙해진 거다. 겪고 보니 결혼하기 전 내 생활은 그냥 다음 인생의 발판 정도일 뿐이었던 거다. 힘들게 얻어냈기에 더 감사하다.
도를 깨우친 것처럼 세상과 소통하려고 하니 뭐가 달라지던가?
예전에는 약간 나태했다. 일할 때는 열심히 했지만, 나태해질 수밖에 없었다. 두 탕, 세 탕 연기와 음악을 열심히 했는데 보람을 못 느꼈다. 열심히 일해도 밑 빠진 독처럼 빠지더라. 당연히 열정도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까 하고 싶은 거 아니면 안 했다.
나태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열정이 다시 생겼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하겠습니다, 이런 열정이 솟고.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나 자신이 느끼니까 좋다. 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환경 속에 있기도 하고.
최근 몇 년을 살펴보면 양동근이란 배우에게 아쉬움이 있다. 분명히 매력 있는 배우인데, 최근 작품 활동을 보면 겉돈다는 느낌?
<네 멋대로 해라> 끝나고 박성수 프로듀서께 이렇게 이야기했다. 난 두 번 다시 이런 드라마는 할 수 없을 거라고. 다시는 그런 감동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다. 나도 그런 표현을 두 번 다시 할 수 없고. 어떻게 보면 <네 멋대로 해라>가 내 인생의 대표작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더 기대하겠지만, 난 그냥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모습을 못 보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기대가 날 고립시킨다고 생각한다. 항상 홈런을 칠 수는 없다. 오르락내리락하기도, 바닥을 쳐보기도 해야 한다.
나도 욕심이 있다. 머릿속에는 아, 이런 거 하면 좋을 텐데 하지만 마음 같지 않은 게 세상이더라.
회색 수트와 보타이는 모두 구찌, 액세서리는 모두 콴테즈
by KUD 제품.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인터뷰했다. 그가 와인잔을 들며…) 이를테면 이제는 함께 마실 수 있는 고급 와인을 찾아다니는 여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마시면 화이트 와인의 분위기나 깊이를 모른다. 그냥 소주, 맥주 들이부을 때는 그게 전부인 거 같다. 하지만 점차 권유당해 마셔보고, 권유하다 보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맛있는 화이트 와인을 고를 수 있을 때가 있지 않을까?
지금은 그때를 향해 가는 중이지 않을까? 겉돌고 있었다는 거, 맞다. 인생도 연기도 숙성되고 익어야 한다. 이제 그럴 때다.
연기할 때 나는 내 안에 있는 걸 쏟아내는 식이다. 기술적으로 만든다기보다 그냥 영혼에서 나오는 걸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발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맞다. 시간도 필요하고, 숙성된 모습을 보여줄 기회도 생겨야 한다.
운도 솔직히 따라야 한다. 타이밍이랄까? 흔히 쓰는 말로 ‘아다리’. 그 아다리가 맞아야 한다. 그때를 기다리는 거다. 다행히 요즘이 그 아다리가 맞는 시기인 듯하다. 갑자기 일도 많아져 활발하게 활동하고. 또 영화 세 편이 몰려서 곧 개봉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스타 다이빙 쇼 스플래시>에도 나왔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느닷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닷없다?
그동안 잘 안 보였고, 활동할 때도 예능 프로그램에 잘 나오지 않던 사람인데 갑자기 나왔으니까. 어, 왜 나왔지? 이런 느낌?
그렇다면 성공한 거다. 어, 왜 나왔지? 그걸 노리고 나갔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의 반응을 기대했다.
요즘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오히려 지금은 양동근이라는 캐릭터가 통하지 않을까? 아예 반전으로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에 공동 MC나 패널 정도로 출연하는 것도 재밌겠다.
그건 어렵다. 토크쇼는 상식이나 지식이 좀 있어야 진행할 때 도움이 되는데 난 지식이 별로 없다. 내 것밖에 모른다. 연기, 음악 끝. 뭐 세상 돌아가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무슨 책이 있고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없으니 많은 사람을 아우를 수 없다. MC면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잖나. 내가 맡기에는 좀 부족할 거 같다.
5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아직 계획만 잡고 있다. 정규 앨범이 될지 미니 앨범이 될지 싱글이 될지 보고 있다. 상황이 계속 바뀌어서 조율하는 중이다.
흰색 셔츠는 디그낙, 흰색 모자는 카오리 제품.
얼마 전에 힙합 디스전을 비판하는 디스곡을 올렸다. 왜 올렸나? 주변에서 묻지 않았나?
왜 올렸냐는 질문은 처음 듣는다. 그냥 잘 들었다고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궁금한가? 하하하. 디스전 시작 때만 해도 언더그라운드 힙합 애들이 올라와서 자기 목소리를 내서 좋았는데, 점점 부정적인 면이 드러나더라. 파국으로 가는 거다. 그걸 들으면서 내가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고 얘기하는 건 오버고, 어쭙잖지만 중재하고 싶었다. 지금 판을 보니 내가 딱 중간 세대더라.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안에 열정이 팍, 왔다.
그래서 물은 거다. 말 잘 안 하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거니까.
솔직히 예전의 나였으면 가만히 있었을 거다. 남 일에 참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속한 힙합 신의 큰 움직임이기에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니 나도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우리 얘기니까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둘째 문제였다.
나는 연기하는 양동근을 좋아하지만, 본인은 음악 하는 양동근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연기는 일로 하고 정은 음악에 준다고 할까?
그나마 음악 할 때 하고 싶은 얘기를 하니까 그렇게 느낄 수 있었겠다. 연기할 때 나 이 연기하기 싫었어~, 이 작품 하기 싫었어~, 이렇게 못 하잖나. 꾹꾹 누르고 살아서 혼자 막 꿍하고 답답했다. 하지만 음악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남이 모르는 내 얘기를 할 수 있다. 놀이터인 거다. 아무래도 막말하고 자유롭고 거침없는 느낌을 음악에서 받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정을 더 준 건 아니다. 둘 다 싫었으니까. 두 곳에서 다 염증을 좀 느꼈다.
이제는 양동근이라는 엔터테이너가 2막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전에는 그냥 살았다면, 이제는 계획이나 지향점도 있을 듯하다.
배우라는 틀에, 힙합 가수라는 틀에 나를 넣지 않을 생각이다. 배우면 배우이기 때문에 이래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게 있다. 반대로 힙합 가수면 힙합 가수이기 때문에 이래야 돼, 하는. 그게 다 싫다. 그게 사람을 고립시키더라. 나오고 싶다.
그냥 배우일 때도, 힙합 가수일 때도, 가장일 때도, 친구일 때도, 형일 때도 있고, 더 나아가 사업가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이제는 닥치는 대로 세상을 바라볼 거다. 세상을 맞이하고 더 경험해보고 더 나아가볼 거다. 예전에는 그럴 기회를 내가 다 단절시켰다. 세상과 섞이는 게 싫었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향점은 뉴스를 보는 사람이다, 하하하.
photography: 임한수
editor: 김종훈
STYLIST: 박만현
HAIR: 유다
MAKE-UP: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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