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김지태 HAIR& MAKE-UP 박혜령 STYLIST 최태경 Editor 성범수
First 처음 당신에게 영감을 준 CF 작품이 있다면, 기억할 수 있는가?
난 원래 미술 학도였고,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러다 학창 시절에 그룹사운드도 했지만 원래 꿈은 영화였다. 그때는 상황이 열악해 영화를 하기 힘들었고 영상 메커니즘을 겸할 수 있는 부분이 CF 쪽이었다. 광고를 하니까 영상 미학에 접근하기 쉬웠던 것 같다. 좋은 영상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해외에 있는 정보를 모으고 모든 광고를 리서치했다. 칸이나 베를린의 광고를 많이 보고 그런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First 당신의 첫 번째 작업은?
참 오래된 일인데 ‘헉스’라는 슈즈 광고였다. 동일레나운, 캠브리지 멤버스 등 패션 위주의 광고를 많이 했다. 패션 광고는 내 손을 거친 것이 많았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진 이런 광고를 많이 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첫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때의 마음가짐이 기억에 남고, 작품은 다양하게 기억한다.
Last 다재다능한 연출력을 겸비했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CF 감독이고 국가 행사를 진행했고, 이제 연극의 예술 감독까지 도전했다. 만약 마지막 작업이라는 하늘의 명이 떨어진다면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은 어떤 것인가?
영화다. 영화라고 꼭 집어 얘기는 하지만 영화의 장르를 빌린 다른 테마도 괜찮을 것 같다. 굳이 스크린이 아니어도 비주얼적인 영상, 독특한 콘셉트 등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표출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First 외국의 경우 마이클 베이 감독은 CF 감독이었다 영화로 성공했다. 그런 사람들은 영상미는 뛰어나지만 스토리 쪽이 약한 경우가 많은데, 영화를 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생각한 복안이 있을 거 같다.
광고를 한 사람은 롱테이크를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나는 반대다. 오히려 짧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롱테이크를 하면 훨씬 군더더기 없는 영상이 나올 수 있다. <나인 하프 위크>를 만든 CF 감독 출신의 애드리안 라인도 마이클 베이와 같은 경우다. 물론 스토리라인은 자신이 직접 쓰진 않지만 그것을 어떻게 각색하고, 비주얼 메이킹할 것인가가 감독의 몫이다. 그들의 영상 체계를 보면 CF 감독의 한계라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불식시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행위와 생각이 비정상적인 면이 있다. 나는 천 명의 우등생보다는 한 명의 천재가 우선이라고 표현한다. 기인이고 속된 말로 ‘또라이’들인데 그런 것들이 작품 영역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한다. 롱테이크든 아니든 그런 것들을 구분하고 단정짓는 통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First 심야 공포 연극 <죽이는 이야기>라는 작품에서 예술 감독을 맡았다. <죽이는 이야기>라는 제목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죽이게 볼만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고,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죽이는 이야기>는 죽여서 공포냐, 죽이게 재밌느냐는 중의적 의미일 수도 있다. 그 둘을 다 담을 수 있으면 물론 좋다. 그러나 공포는 결국 ‘죽음’에서 기원한다. ‘죽음’이 전제되지 않는 공포는 있을 수 없다. 철학적인 면에서는 생(生)은 즐거움이고 사(死)는 고통이라고 한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공포는 죽음이다. 결국 <죽이는 이야기>는 사(死), 죽음이다.
Last 사(死)가 있기 때문에 생이 즐거운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다 죽어버리면 기쁨이 없다. 누군가 살아남을 때 해소되고 정화될 수 있다는 ‘딴지’를 걸어본다.
좋은 질문이다. 전제는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생(生)과 사(死) 속에 살아 남은 사람들이 극 속에서 역할을 해줘야 극이 살아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한다.
Last 결론적으로 이 연극은 무서운가?
무서워야 하고, 무섭다. 아주 무서울 것이다. 관객들이 더 잘 알겠지만 공포물은 뻔하다. <전설의 고향>을 보라. 얼마나 뻔한 이야기들인가. 우리의 연극은 뻔한 공포물의 특성을 어떻게 포장할 것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 결국은 죽음이다. 죽음의 주체 속으로 내가 들어가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거니까. 하지만 주변에 우군이 있으면 무섭지 않다. 제일 앞자리에서 보면 더욱 공포스럽지만, 뒤에서 보면 앞 사람들이 놀라는 걸 보고 웃게 된다. 몰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얼마만큼 몰입시키느냐도 공포의 관건이겠다.
First 처음 머릿속에 그렸던 무대 장치들이 현실에서는 많이 달라졌을 거 같다. 아쉬운 점은?
그런 부분들이 매우 많았다. 마음속에 그렸던 미장센이나 특수 효과를 다 적용하지 못했다. 대학로에 극단이 1백 개 이상 있지만 대부분 무대가 좁고, 깊이가 없다. 관중과 호흡할 수 있는 가까운 공간이지만, 약간의 돌출된 행동도 도드라질 정도다. 무대 자체가 깊이가 없기 때문에 장치를 따로 설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외국처럼 무대의 동선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열악할 수밖에 없다. 너무 극을 많이 올려야 하는 것도 문제다. 결국 이런 이유로 특수 장치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안 된다. 그런 열악함 때문에 나의 기획은 망상밖에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몰입할 수 있도록 배우의 연기력과 관객의 호흡, 장치적인 부분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호흡과 리듬을 주는 것에 집중했다. 내가 요구한 미장센이나 효과는 아직은 우리나라 무대에선 무리다. 그래서 전용 극장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Last 당신의 마지막을 함께할 손수 만든 최고의 작품을 꼽는다면?
아직 진행 중이다. 지금도 길 위에 있지 않은가. 나는 길 위에서 인생을 깨달았다. 내 죽음도 길 위에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지금은 역시 길 위고, 진행 중이라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또 CF는 작품이 아니다. CF는 상업 활동, 경제 활동이다. 거기에 예술성을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영화든 연극이든 자유자재로 재능을 표출해서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그걸 훌륭한 작품으로 키워야 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훌륭한 작품을 위해 매진할 뿐이다.
First 당신의 시작이었던 탄생은 기쁨이었나? 아님 외로움이었나?
사람에게는 성향이 있다. 나는 음지 쪽이다. 5,6세 때 나는 동네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신문에도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런 것들을 하다보니 주변 아이들과 단절되었다. 나의 유아기와 성장기는 외로운 시기였다.
뭔가를 너무 빨리 키워 가다보니 또래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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