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이지영
심형래가 불안하긴 한가보다. 지난 6년 동안 무려 3백억원을 쏟아 부어 만든 영화 <디워>의 개봉을 앞두고 오랜만에 TV에 출연한다. 그동안 오로지 영화 제작만 하겠다며 대중의 곁을 떠난 그가, MBC <황금어장>, KBS <상상플러스>, SBS <옛날 TV>에 출연한다고 하니 세간의 관심이 조금은 들끓는 것 같다. 하지만 심형래는 공중파에 얼굴을 보이는 것만으로는 불안하다. 그는 자신을 아직도 ‘영구 심형래’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독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지난 9일에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했다. 그는 개그맨으로서가 아닌 감독의 어투로 손석희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아치느라 땀 좀 흘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도 그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전작 <티라노의 발톱>, <용가리> 등이 줄줄이 흥행에 참패했기에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용가리>야 사무실에 컴퓨터 달랑 두 대 놓고 찍은 작품이었지만, <디워>는 차원이 다른 영화다. 그는 <디워>에 공을 들인 세월만큼, 그 노고만큼 요즘 침이 바싹 바싹 마른다.
오는 7월 15일~20일까지 열릴 ‘<디워> LA 정킷’은 배급사와 심형래의 불안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행사다. <디워>의 국내 배급을 맡은 쇼박스는 기자들 30여 명을 ‘대거’ 이끌고 LA로 향한다.
‘LA 프레스 컨퍼런스’라는 화려한 주제 아래 출발하는 이번 정킷의 일정은 그야말로 눈요깃감이다. <디워>를 편견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기자들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스케줄도 무척 넉넉하게 잡았다. 일단 컨퍼런스 기간 동안 정작 감독인 심형래는 국내에 머문다. 그럼 30여 명이 넘는 국내 기자들은 LA까지 가서 무엇을 하느냐, <디워>의 예고편을 감상하고, 스태프들과 간단한 Q&A 시간을 갖는다. 그게 다다. 나머지는 할리우드 거리를 견학하고(쇼박스가 제시한 스케쥴표에 따르면),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저녁을 먹으며, 하루는 30여 명이 넘는 기자들이 떼로 LA 근방 명품 할인 몰로 쇼핑 가게 되어 있다. 이쯤이면 심형래가, 혹은 국내 배급사인 쇼박스가 얼마나 이 영화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LA 현지에서 진행하는, 그러나 감독이 불참하는, 고작 스태프 Q&A가 전부인 컨퍼런스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건 그저 <디워>를 바라보는, 그리고 평할 국내 기자들에게 미리 던져주는 떡고물일 뿐이다. 그래야 기자들이 더는 ‘<디워>, 용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기사를 안 쓴다. 적어도 LA 관광 정도는 시켜줘야 ‘<디워>, 기대 이상 그 자체’ 이런 기사가 나온다.
그 불안함이야 정작 심형래가 아닌 누구라도 알겠다. 국내 언론인을 비롯 모든 관객은 아직도 그를 ‘영구’로 바라보니 미칠 지경일 것이다. 야심을 가지고 만든 <티라노의 발톱>, <핑크빛 깡통>, <파워킹>, <드라곤 투카>, <용가리> 등이 망해도 완전히 망했으니 속이 상할 만하다.
그래도 한때 심형래는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된 바 있는 인물이다. 언론은 한때 그를 불가능에 도전하는 프런티어로 삼은 적이 있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못하는 겁니다.”라는 그의 말은, 한때 무척 멋진 유행어로 통했다. 하지만 정작 그 프런티어는 요즘 이게 뭔가 싶다. 영화 만들어서 내걸기도 바쁜 판에, 온갖 언론 플레이까지 혼자 다 감당하고 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뛰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의 나이 올해로 오십이다. 심형래는 힘들다.
“국내 영화계에는 개그맨 출신이라고 하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연극 몇 년 하다 영화판에 들어와서 영화인 행세하는 친구들 조차 20년 넘게 영화에 출연하고 영화를 만들어온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도무지 잠잘 시간도 없는 형편인지라, 모든 지면 인터뷰는 사양하겠다는 그가, 유일하게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심정을 밝혔다. 그는 또한 “할리우드 시장 진출을 위해 ‘영구아트’를 만들었다. 괴물은 외국 사람들과 코드를 맞추기 위한 장치다. 용은 어느 나라나 다 있지만 용과 비슷한 이무기는 한국에만 있다. 이 좋은 콘텐츠를 활용한다면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봤다.”라며 <디워>의 야심을 설명했다.
그런데 세간의 관심은, 그가 <디워>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들었느냐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가 왕년에 얼마를 벌었고, <용가리>로 얼마를 까먹었으며, 이번 영화 <디워>에 투입됐다는 3백억원은 모두 어디에 쓰였는가에 있다.
한때 심형래는 연예인 소득 랭킹 1위를 차지할 만큼 잘나가는 연예인이자 고소득자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1년에 24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돈이 <용가리> 한 편으로 자취를 감췄다. 당시 심형래는 배급사 말만 믿고 영어로 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그 바람에 쫄딱 망했다. 심형래는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디워>는 그런 그가 다시 일어나 만든 영화다. 제작비 3백억원은 최소 비용이었다. “전 세계 시장을 놓고 계약을 한번 하려면 엄청난 계약 조건과 시간이 걸린다.
<디워>를 만드는 동안 변호사도 세 명이 붙었고, 변호사팀, 마케팅팀, 배급 라인, DVD, 프리 TV 케이블, 공중파 등등 계약 조건만 백과사전 정도 두께가 나왔다.” 그러니 3백억원은 할리우드에서 찍은 영화 치고 최소 비용이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왜 심형래는 그런데도 할리우드를 고집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알려졌듯 <디워>는 LA 현지 촬영 영화다. 미국인들이 자막 읽기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원어로 진행됐다. 국내 신화인 ‘이무기’를 소재로 그는 왜 굳이 할리우드를 꿈꾸는 걸까.
“<쥬라기 공원> 한 편이 우리나라 자동차를 2년간 수출한 것보다 더 많이 벌어들인다는 사실 하나에서 출발했다. 워낙 영화를 좋아했기에 <쿼바디스>, <벤허>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걸 만들어 싶었다. 그런데 그냥 이것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심형래는 LA로 갔다. 제작 기간이 6년 걸렸고 3백억원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처음 그의 의지와 맞물린다. 그는 <디워>의 특수 효과를 ‘영구아트’에서 담당하게 했다. 여기저기서 외주하겠다고 나서서 맡겨봤지만 결국은 본인이 원하는 데로 퀄리티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작업팀이 곁에서 늘 본인과 소통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영구아트’에 특수 효과를 일임했다. 즉, <디워>는 심형래의 욕심대로 만들어진 영화인 셈이다.
“SF라는 사이언스 픽션, 공상 과학 영화, 국적과 이념에 관계없이 남녀노소 즐겨 볼 수 있는 장르다. 이런 SF 영화야말로 세계로 나아갔을 때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형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를 꿈꾼다. <디워>의 처음과 끝을 한국적인 무드로 이끌고갔다는 얘기는 그저 소문은 아니다. 실제로 영화에는 정방폭포와 낙안읍성의 풍경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리 노래 ‘아리랑’이 배경 음악으로 흐른다. <트랜스포머>의 음악 감독 스티브 자블론스키가 ‘아리랑’을 모차르트나 바하의 음악처럼 재편집했다.
<디워>의 미국 개봉은 9월 14일이다. 1천5백 개 관을 잡았다고 벌써부터 떠들썩하다. ‘영구’ 심형래가 만들었다는 편견은 적어도 미국 땅에서는 없는 것 같다. “일단 이 정도 규모로 개봉하려면 1백50억에서 2백억원이 필요한데, 미국 배급사가 이걸 댔다. 그만큼 <디워>를 높이 평가한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나 다부지게 말하고 있지만, <디워> 덕분에(?) 심형래는 오늘도 숨이 찬다.
나이 오십인 개그맨 출신 감독은 어쩌면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힘들다. 그는 자신을 향한 편견이 사라지리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영화 자체로 봐줬으면 한다는 점이다. LA까지 날아간 30여 명의 국내 기자들이 ‘기꺼이’ 이 영화에 대해 좋게 써준다면 국내 언론의 평은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된 게 심형래는 한국에서의 홍보가 더 힘에 부친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