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nchy
한동안 ‘유스 컬처’를 모토로 한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힙합 패션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BBC나 베이프 같은 것들인데, 몇 년 전 지방시나 발맹, 릭 오웬스 등의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힙합 영역에 얽혀들면서 이들의 유행은 상대적으로 주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힙합 패션 신에서 노골적이거나 요란하고 불친절한 힙합 코드가 배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디자이너들은 힙합을 고급스럽게 차용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알다시피 지방시는 정점을 찍었다. 가장 우아한 프렌치 하우스인 동시에 힙합의 클래식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이 모든 건 단숨에,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힙합과 하이 패션의 교집합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1990년대 힙합이 장식적이고 노골적이며 속물적이었다면, 현재는 맥락은 같을지라도 방식에 세련미가 있다. 매끈하고 간결해졌지만 옷의 언어는 힙합의 핵심을 향하는 것. 이 같은 마리아주를 가장 능청스럽게 행하는 디자이너로는 (지방시를 제외하고) 알렉산더 왕, 필립 림 정도로 추려낼 수 있다.
- alexander wang
- 션 샘슨의 옷을 입은 에이셉 라키.
이들의 옷은 힙합이 아니면서 동시에 힙합이다. 힙합의 동시대적 가치를 영리하게 이용한 것이다. 젠체하며 고상 떠는 브랜드에게 기대할 수 없는 유연함에서 나오는 그런 쿨함이다. 역으로, 가장 진보된 흑인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들도 디자이너 브랜드를 수단으로 자신들의 세련된 취향을 뒷받침한다. 1990년대 힙합 아티스트들이 의류 라인을 직접 만들어 팬들과 폐쇄적으로 공유했다면 지금은 훨씬 패셔너블한 방법을 택한다. 티 바이 알렉산더 왕의 캠페인 영상에 등장했던 에이셉 라키, 아페쎄와 카니예 웨스트의 컬래버레이션이 그렇다. 힙합의 하이 패션화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련의 변화 단계를 거치며 힙합을 둘러싼 패션 시장은 더욱 조밀해졌다. 새로운 것을 선점하기 위한 조용한 싸움이 틈과 틈 사이를 메운 것이다. 힙합 친화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에 싫증을 느낀 이들은 더 힙합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신진 디자이너 컬렉션과 하이 패션 브랜드를 참고한 힙합 브랜드에 주목하는 중이다. 단지 럭셔리 하우스처럼 일부 취향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힙합을 원천으로 한 것들이다.
shaun samson
총명한 런던의 디자이너들, 아스트리드 앤더슨(Astrid Andersen)이나 션 샘슨(Shaun Samson)의 컨셉추얼한 컬렉션, 챔피언의 후디에 로고를 프린트한 2백25달러짜리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 후디, 후드 바이 에어(Hood by Air)의 간결명료한 아방가르드, 피갈레(Pigalle)의 빈티지한 컬렉션 등은 하이 패션의 매끄러운 브랜딩과 거리 문화를 영리하게 배합한 결과물이다.
지금의 유행은 하이 패션과 힙합, 스트리트를 단호하게 구분 짓는 것이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복합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힙합은 동시대의 가장 세련된 키워드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 pyrex vision
- astrid andersen
editor: 고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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