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로고로 부의 척도를 가늠하던 시절이 있었다.
로고가 크게 새겨진 야구 모자, 몸을 감싸고 도는 박시한 티셔츠, 뉴키즈온더블록의 음악이 그 시절을 대변했다. 모두 1990년대 얘기다. 브랜드 로고를 티셔츠와 백팩에 큼지막하게 박았고 대중은 열광했다. 화려하고 풍요로웠다. 찬란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만 같던 1990년대의 산물 ‘로고’가 패션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과연 풍요의 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일까?
로고 패션이 한창 유행하던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절정에 달했다. TV에서는 나이키를 신은 마이클 조던의 하이라이트가 방송됐고 우리는 새로운 음악과 패션을 선도한 서태지의 노래를 들으며 짝퉁 보이런던 티셔츠를 사 입었다.
생각해보면 1990년대 중반까지 패션계에서 막강한 화력을 떨쳤던 브랜드는 베르사체다. 베르사체는 로고의 과용과 부유함의 과시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돈이 많은 래퍼들은 베르사체를 제일 먼저 사들였고 그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최고의 시절은 최악의 시절로 기억되기도 하듯 아득하기만 한 1990년대의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 아시아의 외환 위기, 1997년 베르사체의 죽음과 함께 1990년대 패션의 잔재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으니까.
그래서 ‘로고’의 부활이 더없이 반갑다. 2013년 돌아온 ‘로고’는 과거 로고의 이미지와 조금은 다르게 해석된다.
미국 흑인 래퍼 위즈 칼리파는 그의 신보
또 한 명의 흑인 래퍼 에이셉 라키는 ‘Wild For The Night’ 뮤직비디오에서 MLB 스냅백을 거꾸로 뒤집어쓰고 금니를 드러내 보이며 오프닝 세레모니와 DKNY가 함께 1990년대 옷을 재해석한 후드 티셔츠를 입고 노래를 부른다. 이들은 ‘로고’를 통해 자신의 부를 드러냄과 동시에 특출난 패션 시각을 어필하고 있다. 그게 꼴사납거나 불편하진 않다. 하이 패션을 가볍게 다루는 이들의 문화가 풍요로웠던 1990년대 패션을 새롭게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겐조는 뉴에라와 협업한 스냅백과 로고가 새겨진 위트 있는 스웨트 셔츠로 완판을 기록했다. 브랜드의 로고를 변형한 스웨트 셔츠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라이언 리히텐버그도 마찬가지. 국내에서 잠시 주춤했던 베르사체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로고를 드러내는 건 염치없는 일이라 여기며 패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그 로고가 새로운 문화로 돌아온 거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영리한 래퍼와 명민한 디자이너들이 속물적이라고 치부하던 큼지막한 로고를 키치하고 쿨하게 바꿔놓으면서부터 말이다.
GUEST EDITOR: 송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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