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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록이 없었다면 남성 패션도 없다 오제형 멀티플레이어&J컴퍼니 대표 몇 년 전부터 펑크 록을 패션의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떠받들며 난리법석을 떠는 디자이너들을 보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 역시 그런 의혹을 품어본 적이 있으니까. 그것은 펑크 록이 없었다면 지금 남자들의 패션은 어떠한 모양새 였을까라는 가정을 세워보는 것이다. 먼저 펑크 록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남자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양복과 트렌치코트만을 고집하거나 청바지와 널찍한 체크 무늬 셔츠만이 최고의 남성 패션으로 알고 살았을 것이다. 날씬한 다리 라인과 매끈하게 빠진 근육 대신 나무꾼과도 같은 커다란 근육과 단단한 허벅지만이 남성의 아름다움인 줄 알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스키니 팬츠는 상상조차 금지된 변태들의 전유물이었을 테고(그나마 누가 용기를 내어 두세 벌 만들었다는 가정 아래), 메탈 스터드 벨트 및 체인 목걸이와 가죽 팔찌 역시 대중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바지의 밑위는 영영 배꼽 위를 유지했을 것이고,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제냐만이 전 세계 남성들의 유일한 명품으로 경배를 받는 반면, 디올 옴므와 디스퀘어드는 풍기문란을 조성하는 이단아로 낙인 찍혀 첫 컬렉션 이후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헤어스타일 관련 산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각종 헤어 염색 산업은 소수의 마니아만을 상대하며 곧바로 사양길로 접어들었을 것이고, 헤어스프레이와 강력 젤은 포마드의 왕좌를 결코 밀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전체적인 헤어 산업은 오직 지구 전체 인구의 반인 여성만을 중심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남자는 여자친구의 헤어 제품을 몰래 써보는 것으로 호기심을 충족했을 것이다. 또, 랑콤과 장 폴 고티에는 절대 남성만을 위한 스킨케어 라인과 색조 라인을 발표할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며, 남자들은 귀고리와 화려한 보석 반지는커녕 귀를 뚫을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뿐인가? 어쩌면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아레나>라는 잡지 또한 아예 발간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떤가? 아직도 펑크 록을 향한 디자이너들의 야단법석이 단순한 아티스트의 근거 없는 변덕과 트렌드를 조성하고자 하는 은밀한 상업적 담합의 결과물로밖에 안 보이는가?
펑크 록의 두 갈래 선배님은 섹스 피스톨스와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나도원 음악 평론가 1970년 중반 폭발한 런던 펑크에 불씨를 당긴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 이들은 보수적 사회와 자본주의 체제에 무산계급 젊은이로, 그리고 양식화된 브리티시 록에 대해선 스리코드 뮤지션으로 맞서며 스스로의 좌표로 찍었다. 그리고 그들 곁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있었다. 파격적인 문구와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를 비롯해 서로 매치되지 않는 산만한 복장은 뒷골목의 못살고 불량한 젊음을 상징한다. 말쑥하고 단정한, 또는 구도자와 같은 록 스타들이 활보하던 거리에 누군가는 침을 뱉어주어야 할 때였고, 섹스 피스톨스가 그 역을 맡았다. 한편엔 펑크를 해프닝이 아닌 스타일로 완성한 클래쉬(The Clash)가 있었다. 클래쉬는 반항에서 저항으로 한 걸음 나아가 <The Clash>와 <Give’em Enough Rope>,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노선을 취했고, 레게 등 다양한 요소를 펑크에 도입한다. 퍼포먼스보다 내용에 방점을 찍는 이들이어선지 외적인 치장은 상대적으로 점잖은 편이었다. 하지만 알몸에 진흙을 칠하고 거적 하나만 걸친 사진으로 앨범 <Cut>의 커버를 채운 걸 밴드 슬리츠(Slits)를 비롯해 펑크 신에는 반항적 파격이 이어진다. 이는 점차 펑크의 전통이 되어갔고, 고쓰를 비롯한 컬트 문화에 영향을 주었으며,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 맞는 기름칠 과정도 거치게 된다. 감각적인 송라이팅과 세련된 사운드의 그린데이(Green Day), 오프스프링(Offspring)을 앞세워 네오 펑크가 1990년대에 부상했지만, 사실 펑크의 물감은 탈색된 채였다. 펑크는 음악 스타일인 동시에 라이프스타일이다. 너저분한 하류 계급의 복장, 노동에 용이하며 또한 전투 중임을 드러내는 군화, 세상과 벽을 쌓는 징이 덕지덕지 박힌 가죽 재킷, 이런 것들은 타협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펑크의 밴디지 스타일도 세상으로부터 고통당하고 있음의 표현이다. 모두가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완장까지 차게 된 그린데이는 피가 다를 수밖에. 물론 네오펑크 밴드 중에서도 진정성과 태도를 중시한 이들이 있다. 스카펑크를 시도한 <And Out Come the Wolves>로 크게 성공한 랜시드(Rancid)와 같은 밴드가 그들이다. 침략자들에게 항거한 모히칸족을 기리는 모히칸 헤어스타일, 그리고 군화와 가죽 재킷 등은 랜시드와 같은 이들이 스스로를 말하는 표식이다. 물론, 영화 <라스트 모히칸>의 주인공들은 바르고 착해 보이기 위해 이 무식한 헤어스타일을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 건 악당의 몫이었다. 늘 그래왔듯.
2006년 패션도 펑크 록이 리드한다 박만현 <아레나> 패션 에디터 무수히 많은 음악 장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펑크 록은 유독 패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 유수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모두 하나같이 펑크 록에 심취해 영감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펑크 록을 사랑하는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가 있으니 디올 옴므의 에디 슬리먼과 존 갈리아노다. 에디 슬리먼의 2006년 S/S 컬렉션 단 한 컷의 사진만 봐도 어디서, 어떻게 펑크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힘없이 쓰러질 듯 슬림한 보디의 창백하게 메이크업을 한 모델들도 그렇거니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색색의 서스펜더와 내로타이, 그리고 음악적인 코드가 역력하게 드러나 있는 재킷과 몸에 피트되는 베스트 등 너무도 많은 액세서리와 룩에서 펑크 록적인 요소가 여실히 드러난다. 에디 슬리먼에게 뒤질세라 존 갈리아노는 그보다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펑크 록에 대한 영감을 표현했다. 그 예로, 하늘거리는 실크 팬츠에 펑키한 요소의 음표를 그린다든지, 비비드한 컬러의 배지와 목걸이를 매치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름을 직접 새기는 대범한 디자인까지 선보인 존 갈리아노. 펑크 록은 그것도 모자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본 디자이너와 새롭게 이름을 떨치고 있는 신인 디자이너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는 펑키한 헤어스타일과 소품들로 펑크 록을 표현했으며, 넘버나인의 패션쇼는 쇼 자체가 펑크의 가장 핵심적 모티브인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 버나드 윌헴이나 웬디&짐도 빈티지스러운 워싱의 데님 팬츠와 독특하고 구조적인 베스트와 재킷을 만들어 펑크 록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다시 확인시켰다.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우리나라의 디자이너까지도 펑크 록에서 영감을 받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접근으로 패션쇼를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디자이너는 레주렉션의 디자이너 이주영과 제너럴 아이디어의 최범석이다. 매번 패션쇼에서 펑크 록 뮤지션의 라이브 음악으로 새롭게 접근하고 있는, 얼마 전 미국의 유명 펑크 뮤지션 마릴린 맨슨의 옷을 만들어 주목을 받은 디자이너 이주영. 그녀의 패션쇼엔 언제나 펑크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컬러풀한 벨벳과 가죽, 그리고 자신만이 스페셜하게 오더 메이드해 제작한 가죽 롱부츠와 실버·골드 슈즈들이 그것이다. ‘밀리펑크’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펑크라는 것을 기본 테마로 쇼장에서부터 모델들의 헤어·메이크업, 자유분방한 표정과 워킹까지 세세하고 꼼꼼하게 체크하는 디자이너 최범석도 펑크 마니아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국내외를 막론하고 펑크에 영감을 받고 어떤 룩으로 신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기대된다. 앞으로 몇 세기가 지난다 해도 펑크 록이 패션계에 미치는 영향은 끝이 없을 전망이다.
펑크는 아무렇게나 걸친 빈티지 티셔츠 같은 자유로움이다 정준화 <W> 피처 에디터 좋은 음악은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금세 효용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시대의 느낌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부분이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1970년대 사회의 모순적 질서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처럼 기타를 들었던 펑크는, 귀를 즐겁게 하는 데 큰 관심을 두는 음악은 아니었다. 강렬하고, 순진했으며, 힘차게 터져나왔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1980년대 이후로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던 내가, 원년의 펑크에 적극적으로 열광하기는 어려웠다는 뜻이다. 내가 비로소 마음을 붙이고 몸을 맡길 수 있는 펑크를 만났던 것은 1994년이 되어서였다. 당시 신인 밴드였던 그린데이는 선배들만큼 거침이 없었고, 한편으로 선배들보다 유쾌한 모습이었는데, 말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네오 펑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조적인 가사를 날듯이 가벼운 멜로디에 담았던 앨범 <Dookie>는, 나의 10대 시절 끝자락을 유쾌하게 어른거렸다. 펑크는 음악인 동시에 태도이며 정신이다. 반듯하고 위선적인 세상의 기준에 저항하는 그들은, 머리카락을 멋대로 물들이고, 빈티지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친 모습이었다. 그 자유로움은 엄격하고 빈틈없는 차림의 일반적 패션 아이콘들보다 훨씬 마음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펑크 록의 패션은 신·구세대를 연결하는 코드다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 1970년대와 80년대 사이에 주류를 이룬 펑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들은 온갖 부정적인 행위와 타락한 청년들의 비행실태. 하지만 삼십이라는 나이를 넘겼을 때 펑크라는 것을 나름대로 재해석하게 됐고, 펑크 록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정의를 세울 수 있었다. 과거 블랙 해골이 크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송곳처럼 삐죽하게 세운 스파이크 헤어를 하고 떼지어 침 뱉고 미친 듯 소리 지르는 그런 사람들을, 내 기준으로 펑크한 사람들이라고 분류했었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펑크 록에 대한 부정적인 단면일 뿐, 이젠 펑크 록에 대한 정의를 나름대로 바로 세웠다고 자부한다. 몇 년 전 영국 런던으로 출장갔을 때 본, 쉰을 넘긴 듯한 노부부 커플은 블랙 컬러의 낡은 군화를 신고 피어싱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스키니 팬츠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이질적이거나 혐오스럽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그것이 바로 자유라는 코드 아래 시대를 뛰어넘은 신·구세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진정한 펑크의 의미 아니겠는가. 그런 영향으로 이번 나의 2006/7 F/W 컬렉션은 펑크라는 요소를 메인 테마로 밀리터리적인 소스를 가미했다. 펑크라는 단어에 내재되어 있는 함축적인 깊은 뜻을 헤아리기엔 아직 어리지만 말이다.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펑크 록에 대한 나만의 생각은 이렇다! 펑크는 시대를 뛰어넘는 영원불멸의 불사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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