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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은 특별하다

다수에 속하지 않으면 ‘아웃사이더’라 분명하게 경계선을 그어버리는 현실에 발을 들여놓은 정준영은 스스로‘로커’라 칭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찡긋, 윙크를 날린다.

UpdatedOn July 31, 2013

◀ 어깨 부분에 갈색으로 포인트를 준 검은색 셔츠는 지방시, 갈색 반바지 수트는 김서룡 옴므, 재킷 주머니에 꽂은 보타이는 에잇세컨즈, 재킷 라펠에 장식한 해골 모양 핀은 에이치알 제품.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초지일관 로커의 애티튜드를 강조했던 정준영이 ‘TOP 3’ 안에 든 건 그의 말마따나 순전히 운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타이틀대로 시청자 투표가 큰 영향을 끼친 결과였으니, 그의 매력과 실력이 어필된 이유도 있었으리라. 시청자들은 편집을 거쳐 쇼로 완성된 프로그램을 보며 각 참가자들을 단순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기억한다.

참가자들은 대중이 원하는 캐릭터를 맡음으로써 대리 만족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반대인 경우엔 비호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단편적으로 쇼에 비친 모습만으로 모든 게 판단되고 결정되는 방식이 때론 잔인하고 가혹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것 또한 세상이 굴러가는 하나의 방식인데.

정준영의 캐릭터는 ‘Weirdo’다. 곱상한 외모에,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고, 수십 년 차 뮤지션 선배들 앞에서 눈 하나 꿈쩍 않고 할 말은 다 한다. 결정적으로, 정준영은 ‘로커’다.

로커란 말은 록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뜻하기도 하지만 록에 빠진 마니아를 뜻하기도 하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만 해도 정준영은 후자에 더 가까워 보였다.

매일 밤 디제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마친 정준영이 촬영장에 도착한 건 한밤이었다. 밤이 주는 무게와 피곤함에 짜증을 낼 법도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열기와 한기를 오가며 호텔 안팎을 누비는 촬영이 쉽진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그는 안 그랬다. 촬영 중간 중간 코믹한 표정과 제스처를 짓고 애교도 떤다. 수많은 스태프들이 결국 그로 인해 웃었다. 프로다운 노련함보다는 일을 대하는 그만의 방식이라 느껴졌다. 정준영은 사람들에게 예쁨 받는 법을 아는 친구다.

▶검은색과 흰색 패턴이 들어간 셔츠는 생 로랑, 검은색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검은색 랩스커트는 지방시, 검은색 레이스업 슈즈는 유나이티드 누드, 하얀색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실버 링은 에이치알 제품.

음악 얘기를 꺼내자 눈빛이 반짝한다. 마릴린 맨슨, 슬립낫, 머틀리 크루…. 신이 난 정준영이 꺼내놓은 밴드 이름들이 대략 이렇다.
이 친구, 가도 너무 갔다. 또래 중 대부분은 당시 유행하던 댄스 곡이나 발라드를 들었을 테고, 록을 좋아하는 소수도 오아시스나 콜드플레이, 뮤즈 정도지 머틀리 크루까지 가진 않았을 거다. 정준영에겐 메탈이 곧 아이돌 댄스 뮤직이요, 건스 앤 로지스와 슬래쉬가 곧 소녀시대요 씨스타였다. 많은 이들에게 메탈이나 하드 록은 ‘시끄러운 음악’이었지만 그에겐 ‘신나는 음악’이었다. 무엇이 더 낫다는 게 아니다. 결국 모든 건 취향의 차이일 뿐이니까.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다 밴드 음악 하겠다고 무작정 한국에 들어온 게 열아홉이란다. 메탈 밴드의 거칠고 반항적인 느낌과 사운드, 제스처에 피가 끓었단다. 그때부터 정준영의 꿈은 정해졌다. 말 그대로 ‘록 스타’.


“대체 정준영에게 록 스타란 어떤 의미인가?” 멤버 하나하나의 유기적인 구조가 그럴싸하게 들어맞아야 제대로 된 밴드 음악이 나오고, 그래야 자연스럽게 록 스타도 탄생하는 거라 믿는 내 질문은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권력이 만든 시스템에 시원하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 제 생각을 멋대로 지껄이며 거칠 것 없이 사는 게 록 스타라지만, 생각해보라. 단언컨대 우리가 현세에 록 스타로 기억하고 부르는 이들에겐 ‘끝내주는 음악’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정준영은 우리에게 제스처와 애티튜드로 록 스타로 캐릭터화되었지, 음악성에 있어서 록 스타는 아니지 않는가. “일단 음악적으로 성공해야겠지. 나도 처음엔 록 스타의 겉모습을 동경했다. 과격하고 괴팍한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거다. 무작정 음악을 듣다 보니 점점 들리고 보이기 시작하더라. 이게 내가 해야 할 음악이구나,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또 좋아하는 게 바로 이거구나. 그게 얼마나 죽이는 일인지 아나?” 이때 정준영의 표정은 충분히 거만했다. ‘안 해본 사람은 죽어도 모를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 칼라에 베이지색 라인이 들어간 셔츠는 디올 옴므, 아이보리 물방울무늬 수트는 김서룡 옴므, 페이즐리 패턴의 보타이는 돌체&가바나, 검은색 스웨이드 슬립온은 아니마스코드 제품.

더블베이스를 밟을 줄 아는 드러머와 슬랩이 죽이는 베이시스트와 깁슨 기타 특유의 두꺼운 사운드를 맛깔나게 내는 기타리스트를 찾아 세상을 놀라게 할 밴드를 만들겠다고, 한 살배기에 떠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니. 록 스타가 되겠다는 정준영의 꿈이 얼마나 저돌적이며 한편으론 무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이나 미국의 인디 밴드 대부분의 태생이 그러하듯, 허름한 창고 하나 빌려 합주하고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고 놀다 보면 레이블에 들어가 앨범 내고 록 스타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7년 전, 한국에 왔단다.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된다는 인디 신마저도 편중된 장르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어찌 보면 대중가요계보다 더욱 폐쇄적이고 경직된 곳이란 걸 몰랐겠지.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당시 홍대는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댄스 클럽으로 잠식되던 시절이었다. 라이브 클럽엔 사람이 없었고, 그나마 흥행이 되는 몇몇은 서정적이고 소프트한 얼터너티브나 모던 록 밴드들이 대부분이었다. 해외 여러 나라를 옮겨 살며 보냈을 인생 대부분에서 그는 아웃사이더였겠지만 그건 지리적이고 인종적인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정준영은 아웃사이더였다.
내색은 안 하지만 외로웠을 것이다. 록 스타의 꿈을 가진 피 끓는 젊은이가 서는 무대에 관객이라곤 라이브 클럽 주인과 다른 공연팀 멤버들이 전부였을 테니.

‘주사위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주사위를 하늘로 던져버리는 사람’이라 했던가. 아웃사이더 정준영은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2백만 명의 참가가 중 ‘TOP 3’에 들었다. 프로그램에서도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심사위원과 대중에게 가장 호평받았던 무대도 봄여름가을겨울의 ‘아웃사이더’를 부를 때였다.

그는 프로그램 인터뷰에서조차 생계가 힘들었던 인디 밴드 시절로 사연 팔이를 하지 않았다. 로커로서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당신은 뼛속까지 로커인가?” 의구심을 걷고 그에게 물었다. “그럼. 이것만 해야지. 지금까지 계속 이것만 믿고 해왔으니까. 언젠간 될 거니까.” 그가 말하는 ‘언젠가’가 바로 지금인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다. “내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 멋지고 완벽한 노래를 큰 무대에서 불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를 때, 그때가 내가 꿈꾸는 가장 완벽한 순간이다. 아직 아니다.”

“그럼 이렇게 묻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정준영에게 듣고 싶은 노래로 뽑은 게 발라드였다. 본인이 하고 싶은 건 메탈이고. 이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건가?” 정준영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여전히 고민 중이고,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내가 메탈을 하고 싶다고 무조건 신나게 방방 뛰기만 할 건 아니다. 이래 봬도 무게 잡는 무대를 좋아한다. 퍼포먼스보다는 감동을 주고 싶다. 물론 무대 위의 감동이란 건 뮤지션과 관객이 오랜 시간 쌓아온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거겠지. 그러려면 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스타가 되고 싶나, 뮤지션이 되고 싶나?” 수줍게 웃으며 노래하듯 말한다. “뮤지~션~!” 그래서 하나 더 물었다. “지금 당신은 스타인가, 뮤지션인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 한참 있다 답한다. “아직 둘 다 아닌 것 같다.”

◀ 흰색 반소매 티셔츠는 매료, 남색 줄무늬 팬츠와 남색 트렌치코트 모두 닐 바렛, 스터드 장식의 남색 슬립온은 블랙마틴싯봉 제품.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을 베어 문 느낌이었다. 정준영이라는 사람의 엉뚱하고 괴짜 같은 모습과 진지하고 여린 모습, 모두를 봐서일까. “나는 로커다”를 외쳐왔던 그였기에 곧 발표할 데뷔 앨범에 대한 걱정도 기대도 반반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준영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로커’니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사람은 더 특별한 걸 볼 수 있다는 믿음, 젊음의 허영이 때론 과정이 되기도 한다는 믿음, 그러니까 정준영은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란 믿음.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김영준
STYLIST: 남주희
HAIR: 이에녹
MAKE UP: 이준성
COOPERATION: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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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김영준
Stylist 남주희
Hair 이에녹
Make-up 이준성
Cooperation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201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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