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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빛 좋은 개살구?

한국 스타들의 해외 활약상은 감동을 넘어 애국심으로 이어진다. 모두 ‘한류’라는 실체 없는 이름 아래서다. 하지만 문화는 절대적 비교 우위를 따질 수 없는 법. ‘한류’는 지금 잘못 가도 한참 잘못 가고 있다.

UpdatedOn June 17, 2013

한류는 빛 좋은 개살구?

대형 기획사엔 소위 ‘미디어 센딩’이라는 마케팅 프로그램이 있다. 자사 소속 아티스트가 해외 활동을 할 때 기자들을 동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해외여행 줄 테니 기사 달라”는 두꺼비집 놀이의 미디어 버전이다.

대한민국엔 두 종류의 스타가 있다. 그냥 스타와 한류 스타. 한류 스타란 일종의 국가대표다. FIFA가 지정한 A매치 데이에 펼쳐지는 국가 간 축구 경기처럼 왼쪽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해외 스타들을 무찌르는 ‘애국 스타’이기도 하다. 관객은 열광한다. 2002년 안정환의 헤딩슛이 이탈리아 골문을 가르는 순간 느꼈던 쾌감을 동방신기가 일본 공연장에서 환호성을 받는 장면에서 똑같이 느낀다(좀 더 정확히, 그리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환호를 받았다’는 뉴스를 접할 때다). 그러니 싸이가 뉴욕 타임스퀘어에 등장하는 장면을 TV로 보며 경험하는 오르가슴은 홍명보의 승부차기 성공에서 맛보았던 것보다 결코 약하지 않다.

자연히 한류 스타는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되었다. 일본 아줌마들의 대통령 배용준과 베트남 여인들의 꿈인 장동건은 논평의 대상에서 벗어나 신전에 옹립된 지 오래다. 해외에서 스타가 되었다는 건 올림픽 금메달과 맞먹는 성공이고 삼성 갤럭시가 아이폰을 엎어치기 한판으로 내동댕이친 것과 같은 쾌거이니, 국가 영웅인 이들에 대한 비평은 자유롭지 못하다.
만에 하나 배용준의 연기력과 장동건의 흥행 성적을 물었다가는 사회 통합과 국가 이념에 반기를 든 불순분자로 분류될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쯤 되니 기획사들은 너도나도 한류 스타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급기야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국가기관까지 나서 한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발 빠른 성명까지 발표했다. ‘유사 이래 최초’라는 수식어를 써도 될 만한, 아름다운(!) 민관 합동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내전을 겪은 스페인이 월드컵 우승을 통해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화합을 이끌어낸 것처럼, 한류는 지역감정과 계층 불화를 해결할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류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논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성공도 한류요, 추추 트레인 추신수의 안타와 도루도 한류다. 영국 왕실 자제들이 춘 말춤도 한류이고, 한국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일본 신오쿠보 지역 땅값이 오르는 것도 한류다. 한류는 이 모든 현상을 먹어치우며 불가사리처럼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이 한류란 단어는 천하무적 도깨비 방망이와도 같았다. 덕분에 대한민국 문화의 모든 이슈가 오직 한류로 집중되는 데 성공했다. 겉보기엔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한류라는 열풍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 영 시원치 않다. 실체가 모호한 안개에 갇힌 기분이다.

우선 한류란 단어에서부터 지독한 콤플렉스 냄새가 난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마치 한류를 통해 지난 수십 년간 영미 언어권과 유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문화가 이입되었던 기형적인 상황을 뒤집는 통쾌한 역전극을 이뤄냈다는 프로파간다가 들려온다. 문화의 상대성이 아닌, 문화를 통해 국가, 민족 간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위험한 발상이 담겨 있다. ‘Be the Reds’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동남아를 활개치거나 유럽 주점에서 “I’m Korean!”을 자랑스럽게 외치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첨병엔 JYP가 있었다. 미국에 입성한 원더걸스의 ‘Nobody’를 그토록 바라던 빌보드 차트 76위로 데뷔시키며 감동에 벅찬 목소리로 <무릎팍 도사>에 나와 “지난 30년 동안 싱글 차트 100위에 오른 유일한 아시아 그룹”이라 구라를 쳤다. (필리핀 가수 채리스 펨핀코가 리메이크한 ‘Note To God’이 2007년 44위에 오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빌보드 차트를 그저 막연한 동경으로 바라보던 이들 역시 그와 비슷한 감동을 맛보았을 것이다. 빌보드라니! 그것도 싱글 차트 100위권 입성이라니! 빌보드에 대한 JYP의 짝사랑, 아니 우리의 짝사랑을 거머쥔 그의 행보 중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아시아의 혼’이라는 카피와 함께 등장한 <빌보드> 표지 광고였다. “<빌보드> 표지에 한국 아티스트가 ‘드디어’ 등장했다!”고 홍보됐지만 엄밀히 말해 이 사건은 돈을 주고 표지를 산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조국애 결핍의 불한당들로 폄하되어 맹렬한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렇게 JYP가 미국 땅에서 혈혈단신 도장 깨기에 몰두하기 전, 이수만 대표의 SM은 일찌감치 한류의 전초기지로 일본을 골랐다. ‘에이벡스 트랙스’를 통해 아이돌 그룹의 메이킹 프로그램을 습득한 SM은 H.O.T의 성공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유사 그룹들을 생산해냈으며, 그 상품들을 유독 일본 시장에 역투입시켰다.
물론 SM 입장에서는 익숙한 시장이라는 장점이 있었겠지만, 그 밑바닥에 깔려 있던 동기 중 하나는 “우리도 일본 시장에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해마다 펼쳐지는 SM 스타들의 합동 콘서트를 일본 마켓에 소개한다는 의미를 제하고 세력 과시의 일환으로 보는 이들도 많으니 말이다. 결국 두 대형 기획사의 수장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트라우마, 혹은 콤플렉스가 한류의 몰두에 대한 진짜 원인임은 분명하다.

YG 소속 싸이의 시청 앞 공연은 그 정점에 있다. 역사에 가정법은 유효하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 한 번 솔직히 털어놓자. 유튜브 조회 수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의 성적이 없었다면 너도나도 시청 앞으로 나갔겠는가? 싸이의 공연은 음악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닌,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을 맞는 행사였으며, 미국과 유럽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준, 그래서 우리의 오랜 콤플렉스를 치유해준 선지자에게 바치는 제사였던 셈이다. 세계 최초로 성화 봉송을 전 세계에 TV로 중계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과 다를 게 없다. 히틀러는 이 선동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게르만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었다.

간과되고 있는 팩트로 돌아가보자. ‘과연 한류란 실재하는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배용준 효과로 수많은 일본 유부남들을 졸지에 기러기 아빠로 만들어버린 일본 아줌마들의 한국행은 분명 한류로 보인다. 심지어 그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펀딩을 가능케 했던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도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이런 한류에 정치적 대립이 겹쳐지며 반한류, 혹은 혐한류로 변질되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한류는 실재하지만, 현재진행형인지에 대해선 대차대조표를 자세히 검토해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조금 멀리 동남아로 가보자. 필리핀, 베트남, 태국, 그리고 대만까지 한국 스타들의 인기는 짧은 여행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태국 한 나라에만 1년에 1백만 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들이 몰려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건 너무 늦은 관심이다. 한편으론 여름마다 동남아로 향하는 한국 관광객의 어마어마한 숫자를 앞에 놓고 동남아류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무슨 무슨 유’란 결국 우리가 부르는 것이 아닌, 저쪽에서 불러줘야 성립된다는 것이다. 다른 이가 불러줘야 꽃이 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면 더욱 초라하다.
미국 시장에서 유일하게 해외 문화의 진출에 대한 단어를 만들어낸 것은 1960년대 비틀스와 롤링스톤스의 입성뿐이었다. 당시를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명명하며 “영국 여권만 있으면 미국에선 누구나 앨범을 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유행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어느 시기에도 타 문화권의 유입을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분석하는 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비와 원더걸스, 그리고 최근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싸이의 활동마저 그들에겐 그저 ‘방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리치 밸런스에게 멕시코류나,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일본류, 그리고 ‘마카레나’의 로스 델 리오에게 브라질류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잊지 말자. 유럽으로 가면 더욱 그렇다. 한류 스타들의 공연장에 5천 명, 1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는 토픽이 쏟아진다.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이 숫자엔 분모가 빠져 있다. 유럽 전체 인구는 7억을 넘어선다. 더구나 유럽의 국경은 유로 규정에 따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7억 분의 1만 명은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한류라는 수식어로 설명될 숫자는 더더욱 아니다. 얼마 전 유럽의 한 무명 소녀가 자신의 생일 축하 공연에 와달라고 SNS에 초대 글을 올렸을 때 모인 축하객이 1천 명이 넘었다. 유럽은 그런 지역이다.

한류의 과용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은밀한 거래’에 대한 강한 확신 때문이다. 대형 기획사엔 소위 ‘미디어 센딩’이라는 마케팅 프로그램이 있다. 자사 소속 아티스트가 해외 활동을 할 때 기자들을 동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해외여행 줄 테니 기사 달라”는 두꺼비집 놀이의 미디어 버전이다. 비행기 타고 호텔에서 잤으니 그에 맞는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이다. 이 거래 속에서 과장되고 포장된 팩트는 결국 시장을 혼란에 빠트리고 투자 유치와 감사 면제에 이용된다(몇 년 전, 미성년자들로 구성된 여성 아이돌들을 해외에 진출시키기 위해 노출 많은 의상을 좀 봐달라고 했던 어떤 기획사를 떠올려보자). 그러니 한류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실체는 우리가 인식하는 수준의 몇 분의 몇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류가 왜 이리 대단하고도 거룩한 단어가 되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두어 달 전 이 지면을 통해 이야기했듯, 한류의 유일한 수혜자는 기업일 뿐인데 말이다. 심지어 최근엔 미디어와 기업들로부터 “해외에서 얘들을 좋아하니 한국인인 너희들도 무조건 좋아해야 해”라는 강매까지 당하고 있다. 한류라는 수출품 생산을 위해 오히려 다양한 취향과 선택을 보장받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 이름 짓고 도취되어 있는 ‘한류’라는 이름의 실체를 제대로 짚어봐야 할 때다.

EDITOR: 조하나
WORDS: 김태훈(칼럼니스트)
ILLUSTRATION: 이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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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김태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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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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