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종의 책 치료사다. 욕구불만의 상태로 서점을 찾은 이들에게 나의 책은 비타민처럼, 파스처럼, 때론 칵테일처럼 그들의 환부를 치료한다고 믿으니까. 어느 시간, 어느 마음에 소용되는 지는 중요치 않다. 치료의 장소가 차 안이든 침대든, 혹은 화장실이든. 그저 나의 책이 소용될 것이라는 믿음이면 된다. 지루함, 무료함, 스트레스, 울분을 삭히며 뇌 속 찌꺼기들을 휴지통에 처박기 위한 최고의 그리고 최대의 수단이 될 것이란 자기최면은 잡지 만드는 자의 최음제다. 책 치료사라는 자부심은 나 역시 책으로 치유받는 자이기에 더더욱 가당한 것이다. 이 달, 과다한 최음제의 투여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다소 불편한 마음이 많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사건사고가 많은 달이라 표현하기엔 너무 건조하고, 마음고생을 했다 지껄이기엔 매우 청승맞고, 버라이어티했다고 웃어넘기기엔 지나치게 경박하지만 말이다. 나에겐 털어낼 과제가 증식하는 이스트처럼 부풀대로 부푼 달이었으므로 마음의 기포를 함몰시킬 예리한 흉기가 필요했다. 제다이의 광검처럼 위기의 상황에 내 손 끝에 힘을 실어줄 무기 말이다. 비약하자면 창간 3호는 제1,제2,제3의 제다이 검을 빌어 만들어졌으며 나는 또 한 권의 <아레나.가 감격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를 덥썩 안아줄 96시간 후까지 지극히 사적인 나의 컨트리뷰터에게 절절한 감사를 보낼 것이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나에게 비행이란 여백의 시간을 말함이다. 그 여백의 시간이란 자질구레한 문명의 이기로부터의 해방을 의미(최고의 이기를 타고 앉아서 이렇게 말하기는 좀 민망하지만)하며 지인들부터의 철저한 소외와 고립을 뜻한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기뻐 날뛸 지경인데 극진한 서비스까지! “리슬링 오아 샤도네이?" 화이트 와인을 주문하자 달력에서 튀어나온 것같은 8등신의 그녀가 리드미컬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나는 기포가 꼬물대는 연한 레몬빛의 리슬링을 곁에 두고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라는 위협스러운 단편을 읽어내려 간다. 이달 독일 출장으로 인한 왕복 28시간의 온전한 여백이 준 또 하나의 행운. 그의 글에 밑줄을 긋다가 반문과 반론을 반복한다. 이런 식이다. ‘인간다운 생활이 어떤 것인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새로 산 신발을 지근지근 밟아 일부러 주름을 만들어 신는 것이 바람직한 습관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중).’ 나 역시 인간다운 생활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현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새로 산 신발에 주름을 내서라도 지금의 옷차림에 어울린다면 그렇게라도 해볼 요량이다. 그런 생각으로 다시 서울에 입성했다. 그리고 마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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