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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 과학자가 꺼낸 양심에 대해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2025년 신년 화두로 ‘양심’을 꺼낸 과학자가 있다. 최재천 교수는 왜 양심을 이야기하는 걸까?

On March 17, 2025

최재천 교수는 동물행동학과 진화생태학을 연구하는 대한민국 대표 과학자다. 개미를 주로 연구해 ‘한국의 앤트맨’, ‘개미 박사’로도 불린다. 하버드대학원 석박사를 마치고 미시건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교수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를 설립하며 석좌교수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초대 국립생태원장과 코로나19 일상회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 자연과학의 대중화를 넘어 일상 속에 자연과학을 뿌리내리는 데 기여했다.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연과 인간 생태계에 대한 폭넓은 주제로 구독자 74만 3,000명과 소통 중이다. 과학 저술가로 40여 권의 책을 내고 과학 관련 도서 번역도 여러 권 했다. 최재천 교수는 최근 양심의 본질에 대해 하고픈 말을 담은 책 <양심>을 펴냈다. 지난 1월 14일,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를 Q&A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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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양심이란 그저 손을 놓지 않는 것일지도,
누군가의 불안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일지도.
그리고 마침내 그 불편함 속에 사는 것일지도.

책의 제목이 <양심>입니다.
양심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용도 폐기된 듯합니다. “양심에 털 났냐”, “양심은 엿 바꿔 먹었냐”,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일상 대화에서 이렇게 자주 쓰던 단어였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더라고요. 예전에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운전자에게 ‘양심 냉장고’를 선물하는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것이 드문 일이 됐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양심이라는 단어를 이 시점에서 되살리고 싶었어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도 군인의 총부리보다 더 강한 게 양심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점차 희미해지는 우리 사회에 시대적 목마름을 채우는 책이 됐으면 합니다.

왜 양심을 책의 키워드로 삼으셨나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내 안의 깨끗한 무엇’ 바로 양심이에요. 내 마음속에 있다 보니 다 속여도 결국 딱 한 명 나 자신은 못 속여요. 나를 못 속여서 계속 불편해하다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죠. 이게 바로 양심의 힘입니다. 양심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개인의 판단이지만, 다분히 인지적이고 추상적일 뿐 아니라 일정한 방향을 촉구하는 공동체 기준에 관한 지식으로서 사회적 차원도 지닙니다.

왜 우리 사회에서 양심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을까요?
어떤 단어가 일상생활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해요. 사회적으로 통용되던 단어가 사라지는 이유는 그 단어를 대체할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거나 그 단어를 묘사하는 존재나 상황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사회, 문화, 기술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죠. 특히 언어는 끊임없이 진화해요. 우리 사회에서 양심을 대체할 단어를 생각해봤는데 ‘쪽팔리다’라는 비속어 정도더라고요. 좋지 않은 일로 여러 사람에게 얼굴이 알려져 기분이 몹시 상하다는 뜻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인터넷 보급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쪽팔리다’가 양심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채워주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교수님의 ‘양심’은 언제부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나요?
저는 태생적으로 비겁한 사람인데도 그놈의 얼어 죽을 양심 때문에 제법 용감한 일에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마음 깊숙한 곳에서 타는 작은 양심의 촛불은 아무리 불어도 꺼질 듯 꺼질 듯 꺼지지 않습니다. 온갖 사회적 부름에 종종 제 목까지 내걸고 참여했던 지난 과거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양심이 버티고 있더라고요. 차마 외면할 수 없고, 어차피 할 일이라면 차라리 온몸으로 덤벼들자는 이른바 ‘차마, 어차피, 차라리’ 이 세 단계를 거쳐 매번 일을 저질렀습니다.

교수님의 서울대학교 졸업 축사가 화제였어요.
2023년 8월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준비하며 양심이라는 화두를 처음 꺼내 들었습니다. 양심과 공정, 공평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는 것이 공정일까요? 그저 공평에 지나지 않죠. 키가 작은 이들에게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해집니다. 공평이 양심을 만나면 비로소 공정이 되는 거죠. 물리적 균등함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질적 평등성을 포괄하는 개념이에요. 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킵니다. 서울대인이라면 치졸한 공평이 아니라 고결한 공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사회의 공정함은 결국 양심에서 출발하니까요. 속 깊고 따뜻한 공정이 우리 사회의 표준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 남성 최초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하셨죠?
개인적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저는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자연계에서는 암컷 중심의 질서가 당연시되는데, 인간 사회에서만 남성 중심의 제도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호주제 폐지는 이뤄졌고, 저는 이 변화에 기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호주제 폐지는 제 인생에서 제가 학문에 기반해 올바른 일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몇 가지 일 중 하나예요. 욕을 많이 먹었지만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여성 인권의 변화가 얼마나 일어났을까요?
확실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호주제 폐지는 우리나라 여권 신장에 상당한 계기가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우리 사회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니까요. 지금은 진통을 겪고 있고, 남성들은 갑자기 모든 걸 빼앗기는 것 같은 허탈감 또는 불안함을 느낄 수 있는 시점이에요. 세상일이라는 게 결국 시계추와 같아서 평형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으로 조금 치우쳤다가 서서히 가운데로 자리를 잡아가는 거죠. 저는 평등보다는 협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빠른 시일 내에 대한민국 사회는 남녀가 서로 협력하며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살 만한 시대가 올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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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내 안의 깨끗한 무엇’ 바로 양심이에요.
내 마음속에 있다 보니 다 속여도 결국 딱 한 명 나 자신은 못 속여요.
나를 못 속여서 계속 불편해하다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죠.
이게 바로 양심의 힘입니다.

어쩌면 생물학적으로 접근한 것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만든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저는 어디까지나 과학자입니다. 호주제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결코 자연스러운 제도가 아닌 것 같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이 지구 전체에 퍼져 살고 있는데 한반도에 사는 5,000만 명 정도만 채택하는 이 제도가 과연 보편적인 현상일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저는 과학자로서 사실 전달을 했고 그 사실에 기반해 어떤 의미를 찾는 일은 재판관님들에게 맡겼습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양심은 염치와 같은 맥락일까요?
양심이 의식 또는 감정이라면 염치는 양심의 표상이에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염치도 없는 놈”이라는 표현을 보면 양심과 염치는 거의 동의어처럼 쓰는 것 같지만 저는 양심은 심성을 가리키고, 염치는 행위를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염치를 차리게 된 거죠.

양심을 따르는 일이 어려운 것 같아요.
양심은 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고 개선하는 데서 유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양심을 따르기만 하면 우리의 선택이 도덕적으로 항상 올바른 선택이 될 것이라 믿고 싶은 유혹에 빠지죠. 이런 점에서 보면 성령이 우리의 양심에 도덕적 진리를 새겨준다고 확신한 마틴 루터의 양심 무류성은 착각의 산물입니다. 실제로는 오히려 용기가 부족해 양심을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겁이 양심의 발현을 막아 영향을 끼치는 거죠. 그러나 겁이 난다는 것은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겁이 나더라도 끝내 용기를 내려면 지혜의 힘이 필요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양심 개념이 다른가요?
양심은 동양에서는 어진 마음을 뜻하고, 서양에서는 ‘conscience’를 사용하며 옳다고 믿는 대로 생각할 자유의 개념으로 쓰입니다. 동양의 양심은 인간이라면 도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인 데 비해 서양에서의 양심은 보편적이고 법적인 양심을 가리킵니다. 우리나라는 양심을 감정적·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구 사회의 경우 법이나 규율을 잘 따르느냐를 기준으로 삼고 보다 보편적이고 사회가 지키기로 약속한 것을 ‘양심’으로 풀이함으로써 합리적인 공정성을 추구하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과거에는 동양의 양심이 서양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제한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양심은 단순히 스스로의 행위를 평가하는 범주를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양심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감각이 아닌 뇌가 성장함에 따라 함께 발달하고 인정과 불인정 속에 변화하는 마음이에요. 인간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고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배경에도 양심의 힘이 존재합니다.

사회적으로도 양심을 지키려는 분위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양심이 무뎌지지 않도록 사회 분위기 조성이 중요합니다. 점점 법적 합의마저 지키지 않는 모습이 많아져 안타깝습니다. 뇌과학자이자 신경철학자인 패트리샤 처칠랜드의 저서 <양심>에는 양심이 종교적 계율이 아닌 뇌 구조에서 비롯된 메커니즘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포유류는 공감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만, 성장 과정에서 무뎌지기도 합니다. 하루아침에 인성이 회복되는 것은 참 어렵죠. 사회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양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해요. 더 많은 사람이 변화에 합의를 본다면 우리 사회가 변할 거라 믿습니다. 우리 스스로 일깨우는 긍정적인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교수님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시고 싶은가요?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우리가 서로를 배려하고 연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줬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숙론의 장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토론하면서 결론이 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참여했던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변화가 나타날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양심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먼센스> 독자들에게 현시대와 관련해 한 말씀해주세요.
양심과 명예가 살아 숨 쉬는 세상을 바라면서 <양심>을 썼습니다.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2020년 시작한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함께 만드는 팀최마존과 책을 기획하고 펴냈습니다. 최근 탄핵 정국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만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쓴 책은 아닙니다. 나랏일을 책임지는 분들이 양심의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으로 봅니다.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바탕으로 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제시하는 것이 양심이니까요. 자신에게 떳떳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바탕에서 진정한 양심이 발현될 때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하는 ‘사회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양심>(더클래스)

<양심>(더클래스)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 300여 편 중 양심이라는 키워드와 연관된 7편을 선별해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을 글로 새롭게 풀었다. ‘복제 반려견의 윤리적 논쟁’, ‘과학자들의 절박한 외침’ 등 논쟁적인 주제도 상세히 담았다. 양심은 단순히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생존과 공존, 정의의 문제라는 사실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제시한다.

CREDIT INFO
취재
김은혜(프리랜서)
사진
더클래스 제공
2025년 03월호
2025년 03월호
취재
김은혜(프리랜서)
사진
더클래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