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구광모 회장 상대로 상속권 날 세우더니…
“인화(人和)의 LG가 흔들린다.”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사망 이후 배우자 김영식 여사와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차녀 구연수 씨 등이 양아들이자 오빠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에게 소송을 제기한 뒤 재계에서 나온 반응이다. 구연경 대표의 남편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가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왔다.
하지만 소송 제기 1년 6개월여 만에 윤관 대표와 구연경 대표는 거꾸로 위기에 빠졌다. 검찰 수사를 통해 부부 모두 형사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고, 윤관 대표는 1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세금을 “내지 못하겠다”고 다툰 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조계에서는 그동안 주목을 받지 않았던 이들 부부가 상속 분쟁을 벌이면서 주목받게 된 것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나는 외국인, 세금 못 내겠다”고 다퉜지만 패소
고 윤태수 대영알프스리조트 회장의 차남인 윤관 대표는 2006년 미국 유학 시절, 구연경 대표를 만나 결혼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0년부터 투자회사인 블루런벤처스(당시 노키아벤처파트너스)에서 일해왔다. 미국에 기반을 둔 투자회사였지만, 한국에 사무실을 두고 각종 벤처 투자 등을 주관해왔다.
2021년 12월 강남세무서는 윤관 대표에게 “종합소득세를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다”며 123억 7,758만원을 추징했다. 윤관 대표가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맞지만,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투자 기준 95%가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게 세무 당국의 판단이었다. 소득세법에서는 외국인이더라도 국내에 연 183일 이상 체류하면 국내 거주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윤관 대표는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이 한국에 머문 기간이 1년 동안 183일 미만이기 때문에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서로 첨예하게 맞섰지만, 법원은 1년여가 넘는 심리 끝에 윤관 대표가 국내 거주자라는 점을 인정했다. 지난 2월 6일 서울행정법원 제5부(부장판사 김순열·김웅수·손지연)는 이 소송을 제기한 원고(윤관 대표)의 청구를 기각하고, 재판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결국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던 ‘국내 거주자 여부’를 인정해준 셈이다. 재판부는 이날 기각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지만, 이번 선고로 향후 윤관 대표는 추가로 수백억원 이상의 세금을 더 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윤 대표가 투자했던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 국내 상장사 여러 곳의 주가가 크게 올라 수천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세무 당국 측 변호인도 언론에 “(2020년 이후) 소득이 실현되는 것이 굉장히 많다. 합치면 조 단위로, 그 부분에 과세권을 확보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수백억원 잃고, 둘 다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까지
‘세금’을 놓고 다툰 것은 비교적 가벼운 사안에 해당한다. 최근 검찰은 부부 모두를 ‘금융 범죄 사범’으로 보고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공준혁)는 아내인 구연경 대표가 산 주식 가격이 급등하면서 차익을 본 과정에서 남편인 윤관 대표가 해당 종목에 대한 호재성 정보를 만들어내며 ‘공모’했다고 보고 두 사람 모두 재판에 넘겼다.
2023년 3월, 한 코스닥 업체가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주당 1만 6,000원 수준이었던 해당 업체의 주가는 유상증자 당일에만 16% 이상 급등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주가가 5만원까지 올랐다. 당시 투자를 주도한 것은 윤관 대표가 이끄는 블루런벤처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구연경 대표는 유상증자 발표 직전 해당 회사의 주식을 수억원어치 매입한다.
검찰은 이들의 투자 과정이 ‘미공개 정보 이용’이라고 판단했다. 미공개 정보 이용은 금융 당국이 칼날을 겨누는 영역이기도 하다. 2023년 6월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처벌 수위가 높아졌다.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이익금의 3~5배에 이르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법조계는 ‘부부 모두를 기소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부부의 경우 책임자 1명만 기소하는 게 보편적인데, 두 사람 모두를 재판에 넘긴 것은 ‘잘못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는 것.
금융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미리 기업의 투자 유치 정보를 알고 아내에게 얘기해 주식에 투자한 것이라면 명백한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요즘은 양형이 올라가 실형 선고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범죄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보통 자녀가 있는 경우, 양육을 위해 책임이 큰 한 사람만 기소하는데 부부를 모두 기소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라며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과연 둘 다 기소했을지는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수억원의 이익을 본 구연경·윤관 대표 부부는 유죄가 확정될 경우 징역형을 살거나 수십억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3월 18일 두 사람의 첫 공판을 진행하는데, 검찰 수사 과정에서 “아내에게 얘기한 적이 없다(윤관 대표)”, “이야기를 듣고 투자한 것이 아니다(구연경 대표)”라고 해명하면서도 해당 주식 3만 주가량을 LG복지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구연경 대표. 하지만 정작 LG복지재단 이사회는 회의를 통해 해당 기부를 받아들이는 결정을 보류했다.
정상국 전 LG그룹 부사장 “지분이니 경영권이니 과욕을 부리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 안팎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이 LG그룹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인화(人和)’다. 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한다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LG는 초대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2대 구자경 명예회장, 3대 구본무 선대회장에 이르기까지 가족을 시작으로 직원 모두의 단합, 화목한 분위기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하지만 LG그룹 3세 경영주인 구본무 선대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 인화의 LG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불의의 사고로 친아들을 잃은 구본무 선대회장은 조카인 구광모 현 LG그룹 회장을 양자로 들여 경영권을 승계했는데, 뒤늦게 구본무 선대회장의 아내와 두 딸이 상속회복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그 시작이다. 그 과정에서 구본무 선대회장의 장녀 구연경 대표와 남편 윤관 대표에 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LG그룹에 몸담았던 이들도 구연경·윤관 대표 부부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정상국 전 LG그룹 부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족들은 처음부터 양자인 구광모 대표는 LG그룹 회장이 되거나, 최대 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쯤으로 여기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지적하며 “연경이는 LG복지재단 대표도 시켜줬고 그 정도면 됐지. 무슨 지분이니 경영권이니 소송까지 하면서 과욕을 부리고…”라는 구본무 선대회장 동생(구자경 명예회장 딸)의 쓴소리도 전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잡음 하나 없던 LG가에 최근 연이어 불거진 장녀, 맏사위의 행보는 LG에게도 치명적인 리스크 중에 하나”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