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사법 리스 크 걷어낸 이재용 “진짜 경영 능력 입증해야 할 때”
지난 2월 3일과 4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의 과거와 미래, 또 리스크와 기회를 모두 보여주는 행보로 주목받았다.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회장은 2월 3일 오전 열린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오래된 사법 리스크를 덜어냈다. 그다음 날 이재용 회장은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3자 회동을 갖고, 인공지능(AI)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당초 이 자리는 삼성전자 최고위급 임원들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무죄 선고가 내려지면서 일정을 급히 변경해 이재용 회장이 참석했다고 한다.
리스크 ‘거의’ 털어낸 이재용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부터 시작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승계를 위한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2월 3일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공소사실 모두 무죄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이 회장 입장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재계 관계자는 “온전히 마무리된 상태가 아니기에 마침표의 느낌보다는 쉼표의 느낌이 크다. 국정농단 때부터 치자면 거의 10년이다. 사회적으로 비난받았던 시기도 있었다 보니 회사 차원이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초 검찰은 이재용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유리 및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부정 거래를 발생시키거나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또 합병 성사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계열사 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최순실 씨에게 말 등을 제공한 것이 이재용 회장의 승계를 위한 작업이었다고 판단한 검찰이었기에 기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김선희·이인수)는 1심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확보한 주요 증거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2심에서 새로 제출한 증거도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고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반도체를 비롯해 전 사업군이 ‘위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삼성에 가뭄의 단비 같은 판단이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승계 작업을 위해 ‘가치 부풀리기’가 있었다고 검찰이 판단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허위공시·부정회계 의혹도 문제 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재용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지 4년 5개월 만이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 1년 만에 나온 2심 무죄 선고였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로 이 사건 수사와 기소를 주도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월 6일 “국민과 후배 법조인들께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검찰은 교수, 법조인 등 외부 전문가들이 모인 형사상고심의위원회를 열었고, 위원들은 90분간의 토의 끝에 상고로 뜻을 모았다. 결국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대법원에서 더 다투기로 결정했다. 다만 대법원에서도 ‘무죄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한 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1심과 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면 검찰의 수사에 대해 ‘입증이 부족했다’고 연달아 판단한 셈에 대법원이 이를 뒤집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 역시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무리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을 정조준해 다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며 “보완 수사 없이 기존 증거를 토대로 다투는 선에서 끝날 것이기에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큰 고비를 넘겼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