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것들을 하고 싶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나라고 언제까지 잘되겠나. 생각이 많아지면 두려움이 커지더라.결국 내가 믿는 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능계의 혁신가
<최강야구>(JTBC), <강철부대>(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채널A, 이하 <도시어부>) 등으로 그동안 한국 예능에선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소재에 신선하고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더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시원 PD가 이번에는 럭비를 선택, 대한민국 럭비 선수들의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를 담아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최강럭비: 죽거나 승리하거나>(이하 <최강럭비>)는 승리의 영광을 위해 온몸을 던지며 필사의 전진을 이어가는 럭비 선수들의 진짜 승부를 보여주는 스포츠 서바이벌 예능이다.
장시원 PD는 “럭비는 정말 거친 스포츠다. 전진해야만 이기는 스포츠이고 두려워도 정면 승부를 해야 하는 스포츠, 그게 럭비만이 가진 매력이다. 항상 마지막인 것처럼 모든 걸 던지는 럭비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두 번째 ‘최강’ 시리즈로 럭비를 선택한 이유를 전했다.
<최강럭비>가 공개된 이후 주변 반응은 어떤가?
밤에 문자메시지가 많이 온다. 개그맨 이수근·김준현 씨에게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냉정한 지인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줘서 기분이 좋다.
왜 ‘럭비’였나?
<최강야구> 시즌 1이 끝나고 3일 정도 시간이 비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설원 속 노천탕에 들어가는 걸 너무 하고 싶어 간 여행이었다. 그런데 설원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중세 시대에 설원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는 전투가 떠올랐다. 피가 설원에 뿌려지는 색감 같은 거 말이다. 그걸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뭐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럭비였다.
평소 럭비를 좋아했나?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 럭비 경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스태프와 함께 경기장에 가서 럭비 경기를 보자 싶었다. 충격적이었다. 선수 모두 이 경기가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몸을 던지더라. 내가 본 그 경기에서 선수 5명이 실려 나갔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 모습이 순수하게 느껴졌다. 돈을 떠나 오늘 경기가 마지막인 것처럼 몸으로 ‘때려 박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 언급한 것 외에 럭비의 매력은 뭔가?
점수 차가 점점 벌어지면 지는 팀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한 번 더 때려 박더라. 남자의 가오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점수 차가 많이 나도 쪽팔리게 들어가지 말자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남자끼리 싸우면 맞는 순간 주눅이 든다. 그런데 주눅 따위 없더라. 점수 차와 상관없이 ‘우리 팀을 얕잡아봐?’ 하는 몸짓이었다. 울컥하는 것들이 있다.
아무래도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럭비’ 소재를 선택했을 때 주변 만류나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설득하는 과정은 없었나?
스태프와 함께 경기 관람을 갔을 때 모두 같은 감정을 느꼈다. 공부하면 할수록 럭비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넷플릭스 측을 설득하는 과정도 없었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운드가 섬세하다.
아까 언급했다시피 현장에서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난다. 그 섬세한 소리를 담고 싶었다. 부상 위험이 있어 몸에 맞게 개인 마이크를 제작해 목 뒤에 부착했다. 여러 과정의 작업을 통해 현장의 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사실 그 부분이 제일 힘들었다. 때에 따라서는 뼈 부딪히는 소리를 키우는 작업도 했다. 그 소리를 현장에서 들으면 소름이 돋는다.
소재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룰이 많다. 그리고 어렵다. 그래서 최소한만 알게 하고, 보게 하자는 생각을 했다. 시청자들이 ‘그냥’ 볼 수 있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걸 알지 않아도 보게 만드는 것에 중점을 뒀다.
해보지 않았던 카테고리다. 연출자로서 두려움은 없었나?
뭘 하든 두렵긴 마찬가지다. <최강야구>를 할 때도 똑같았다. “야구 가지고 되겠어?” 그런 말을 들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두려움이 커진다. 부정적 요소가 많이 떠오르면 결국 도전하지 않게 된다. 그럴 때면 첫 감정을 가져가려고 노력한다.
낚시를 비롯해 럭비도 마찬가지다. 비인기 종목을 다루는 ‘혁신가’ 같은 느낌이다.
나는 ‘심심함’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탐구한다. 살면서 낚시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관심도 없고, 물고기도 싫어한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들의 세계가 뭘까? 낚시인들은 물고기 사이즈 1cm를 가지고 엄청 싸운다. 그들에게는 진심인 것이다. 그런 모습을 만나면 재미있다. <강철부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는 건 있을 수 없다’는 특수부대 친구들의 진심이 궁금했다. <최강야구>도 그랬다. 야구계 레전드의 세계가 궁금했고, 영건(기대주)들의 세계가 궁금했다. 그게 시작이다.
<최강야구>에 이어 정용검 아나운서가 이번에도 중계를 맡았다.
그를 섭외한 건, 몰입감 때문이다. 정용검 아나운서는 본인이 경기에 빠져든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도 거기에 빠져들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프로이면서도 울컥거리거나 만들어내지 않은 아마추어리즘도 공존한다. 그게 몰입이다. 몰입 면에서는 내가 아는 아나운서 중에서 첫 번째다.
다음 기획도 궁금하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분명한 건 혁신적인 것들을 하고 싶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두려움도 있다. 나라고 언제까지 잘되겠나. 그런데 내가 믿는 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많아지면 안 된다. <도시어부>도 애초에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어서 집에 가면 자괴감에 빠졌던 적이 있다. 바다도 보기 전에 실패한 사람 같았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기회가 언제까지 주어질지 모르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