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롯데쇼핑(백화점), 호텔롯데, 롯데건설, 롯데웰푸드,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 롯데칠성음료, 롯데하이마트, 롯데정밀화학. 롯데그룹을 대표하는 주요 계열사들이다. 보통 유통업계 강자로 인식되지만, 사실 롯데그룹은 최대 매출이 롯데케미칼로 ‘화학’도 잘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그런 롯데가 위기설을 만났다. 유통업계는 온라인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매출이 부진하고, 화학은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실적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재계 순위도 2023년 5위에서 2024년 6위로 포스코에 밀려났다. 재계에선 당장의 실적 부진보다 ‘미래 먹거리’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뼈아프다는 얘기가 나온다. 산업구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시장에 밀려나는 오프라인 시장
백화점, 대형 마트, 편의점 모두 2024년 매출 정체, 역성장을 이어갔다. 오프라인 유통사 중 2024년 3분기 누계 매출이 오른 곳은 신세계와 이마트에 불과하다.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롯데마트 모두 매출 감소를 피해 가지 못했다.
백화점, 슈퍼, 마트 등이 포함된 롯데쇼핑의 실적도 이를 입증한다. 이 커머스의 공습에 허우적대며 2024년 3분기까지 매출이 전년 대비 3.8% 줄었다. 순이익은 90.7%나 급감했다. 온라인 시장에서도 부진하다. 롯데그룹의 이 커머스 부문을 맡고 있는 롯데온은 2020년 사업 출범 후 2024년 상반기까지 누적 적자가 5,000억원이 넘는다. 롯데면세점 역시 유커(중국인 단체 관광객) 실종 속 4분기 연속 영업 손실을 기록 중이다.
그러다 보니 2024년 6월 롯데면세점을 시작으로 롯데케미칼, 롯데지주 등이 잇따라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롯데온과 면세점,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 롯데호텔앤리조트 등은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폐점도 진행 중이다.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2024년 6월 폐점했고, 최근에는 센텀시티점 매각을 추진하고 나섰다.
시장 흔들리는 석유화학업계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이었던 국내 석유화학업계도 업황 불황 장기화로 벼랑 끝에 섰다. 설상가상으로 고환율까지 덮쳐 울상이다. 국내 석유화학 주요 4사(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 중 금호석유화학을 제외하면 2024년 3분기까지 누적 기준으로 모두 적자를 기록 중이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2015~2019년 매년 1조원이 넘게 영업이익을 올리던 것이 무색하게 2024년 3분기까지 누적 적자가 6,600억원에 달한다.
중국, 중동의 설비 증설로 공급이 과잉이고, 원료 가격은 상승하는데 환율 가치는 하락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국내 나프타분해시설(NCC) 평균 가동률은 2021년 93%에서 2023년 74%로 떨어졌다.
롯데그룹의 한 축인 롯데케미칼은 재무 건전성 강화, 자산 경량화를 위해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 청산을 결정했고, 해외 법인 지분 매각을 통해 총 1조 4,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 석유화학업계 불황을 이유로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등의 계열사 임원들은 급여 일부를 자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유통업계, 특히 오프라인 시장에 주력했던 롯데그룹이 석유화학업종 부진과 맞물려 흐름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최근 롯데그룹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롯데그룹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롯데그룹 공중분해 위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이었는데, 2024년 12월 초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할 수 있고, 롯데건설은 미분양으로 계열사 간 연대보증을 선 상태라 그룹에 부정적일 수 있으며, 그룹 소유 부동산을 매각해도 빚 정리가 어려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알짜 처분하며 불 끄기 나선 롯데그룹
2024년 11월 21일 롯데케미칼이 일부 공모 회사채의 사채관리 계약 재무특약을 지키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동성 리스크가 점화됐다. 회사채 발행 당시 조건을 포함시켰는데 영업 손실이 발생한 탓에 이를 지키지 못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자 롯데는 곧바로 해명에 나섰다.
“2024년 10월 기준 총자산은 139조원, 보유 주식 가치는 37조 5,000억원에 달한다”며 “그룹 전체 부동산 가치는 2024년 10월 평가 기준 56조원이며 즉시 활용 가능한 가용 예금도 15조 4,000억원을 보유하는 등 안정적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동성 위기 루머는 사실무근”이라고 공시하는 한편 루머 생성·유포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시사했다.
롯데의 해명에도 ‘롯데 현금 흐름’에 대한 우려가 나왔던 상황. 이에 롯데그룹은 그룹 내 알짜 계열사였던 롯데렌탈을 처분키로 했다. 국내 렌터카 1위 업체 롯데렌탈의 지분 56.2%를 홍콩계 사모펀드(PEF)에 매각하기로 한 것. 2024년 12월 6일 호텔롯데, 부산롯데호텔이 보유한 롯데렌탈 지분 56.2%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1조 6,000억원으로 넘기는 경영권 지분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롯데의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진 후 첫 계열사 매각인데, 롯데 측은 롯데렌탈이 수익을 내는 계열사이지만 렌털업 성격이 그룹의 성장 전략과 맞지 않아 매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룹의 중장기 전략을 고려할 때 시너지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군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호텔롯데, 부산롯데호텔은 이번 매각 자금을 차입금 상환, 글로벌 진출과 글로벌 브랜드 강화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대신 롯데는 그룹 차원에서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운 모빌리티 분야를 전기차 충전, 자율 주행 등 기술 기반 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롯데케미칼도 회사채 상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그룹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놨다. 6조원 가치인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해 롯데케미칼 회사채 신용을 보강하기로 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최대 강점은 유통업에 종사하면서 확보한 수많은 부동산의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면서도 “문제는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다 보니 가치가 높은 것과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별개인데, 롯데그룹이 미래 산업에서 수익을 낼 부분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1986년생 신유열에게 힘 실어주는 롯데그룹
2024년 11월 28일 롯데그룹은 2025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에 재계는 신유열 부사장에게 그룹 내 미래 사업과 글로벌 사업에서 성과를 창출해내는 과제를 줬다고 평가한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 및 성장 동력 확보 임무를 맡기는 동시에 사실상 후계 구도를 공식화한 것이다.
1986년생인 신유열 부사장은 신사업과 글로벌 사업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관측된다. 동시에 ‘늙은 조직’을 손보는 것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화학군 임원 가운데 30%를 내보냈는데, 퇴임자 중 60대 이상 임원 비율이 80%에 달한다. 또한 1970년대생 CEO 12명을 임명해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능력과 성과 중심의 젊은 리더십을 구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