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은 짝사랑하는 것과 비슷해요. 짝사랑은 이뤄지지 않잖아요.잠자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자야겠다고 자꾸 잠에 매달리면잠이 나한테 오는 게 아니고 내가 계속 긴장하기 때문에 잠은 자꾸 도망갑니다.
잠은 ‘공간’이다
휴식과 재충전, 면역 강화 공간인 잠의 공간을 비워둬야
일주기 리듬 치료는 얼마나 효과적인가요?
일주기 리듬 문제 때문에 불면증이 생기거나 악화되는 사람이 있어요. 대부분 올빼미형으로 일주기 리듬이 뒤로 밀려 있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밤에 잠 안 자고 깨서 있으면 머릿속 시계는 아직도 낮인 줄 알고 점점 뒤로 밀리거든요. 이런 경우 일주기 리듬을 앞당기는 방법으로 아침햇살을 보게 하면서 잠자기 전에 멜라토닌 제제를 복용하도록 처방합니다. 최소량의 멜라토닌제를 잠자기 전 정해진 시간에 복용하면 뒤로 밀린 일주기 리듬을 앞으로 당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어떤가요?
디지털 치료제는 인지행동치료를 디지털로 구현한 것이에요. 환자의 수면 패턴 정보를 디지털로 모으고 근본 문제를 해석한 다음, 인지행동치료의 요소들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달해 활용하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적용해보고 효과를 분석한 후, 그다음 단계의 지침을 주는 식이죠. 이런 과정을 사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통해 작동하게 만든 게 디지털 치료제입니다.
불면증을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요?
일단 마음의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불면증은 짝사랑하는 것과 비슷해요. 내가 저 사람이 좋은데 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든 얻으려고 이리저리 노력하지만 막상 저 사람이 나한테 무관심하거나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면 나만 괴롭고 힘들지 않습니까? 짝사랑은 이뤄지지 않잖아요. 잠자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자야겠다고 자꾸 잠에 매달리면 잠이 나한테 오는 게 아니고 내가 계속 긴장하기 때문에 잠은 자꾸 도망갑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할까요?
잠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는 게 중요해요. 하룻밤 못 잔다고 큰일 나지 않거든요. 특히 다음날 아침에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잠을 못 자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못 자면 피곤할 텐데’, ‘오랜만에 동창 모임에 가는데 부스스하면 안 좋을 텐데’ 같은 생각으로 긴장하면 잠이 안 오죠. 이러면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심리학 용어처럼 전날 예측이 실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잠은 ( )이다.’ 문장의 괄호 안을 채운다면?
‘잠은 공간이다.’ 잠은 휴식의 공간이고, 재충전의 공간이며, 나의 심장과 혈관이 좋아지는 공간이고, 나의 감정을 정리하는 공간이자 나의 기억과 면역 기능을 강화하는 공간입니다. 어떤 사람에겐 7시간의 공간이 필요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6시간이나 8시간의 공간이 필요할 수 있어요. 안타까운 건 다른 일을 하겠다, 좋아하는 사회 활동을 하겠다며 잠의 공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는 거죠. 잠의 공간을 자꾸 다른 것들로 채우면, 어떤 순간 감당할 수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잠의 공간을 어떻게든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불면증이 오면 환자 스스로 그 공간을 늘리고 싶어도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자야겠다며 계속 신경 쓰기보다 마음속에 잠의 공간을 넉넉하게 비워두면 잠이 훨씬 더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윤창호 교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수면 장애와 뇌전증 환자를 주로 진료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이수했으며 대한수면학회와 대한수면연구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하고 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학술 활동과 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2023년 4월 E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명의> 출연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면 장애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