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자는 기간이 1~2주로 길어지면, 걱정거리만으로도 힘든데
수면 부족으로 더 피곤해져 수면에 자꾸 매달리게 됩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수면 장애(불면증)로 83만여 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들처럼 병원을 찾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윤창호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주로 비약물 치료로 불면증을 치료하는 의사다. 윤창호 교수는 “저는 특히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불면증을 치료합니다”라며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란 불면증이 왜 생기고 반복되는지를 환자 스스로 깨닫도록 설명하고 환자의 생각과 행동을 바꿔 스스로 잘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치료법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약물 도움 없이 잘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지만 필요한 경우 보조적으로 약물 치료도 한다. 윤 교수는 잠이 드는 원리부터 쉽게 설명해줬다.
“우리 몸에는 잠이 들려는 힘과 깨어 있으려는 힘이 시소처럼 공존하고 있어요. 낮 동안엔 깨어 있으려는 힘이 강하고, 밤이 되면 잠이 들려는 힘이 강해지죠. 이런 구조를 만드는 요소로는 항상성 요인과 일주기 리듬이 있습니다.”
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항상성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로, 깨어 있는 시간에 비례해 수면 욕구가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일주기 리듬은 우리 몸속에 있는 생체 시계로, 깨어 있을 때와 잠들 때를 결정한다. 수면 욕구는 아침에 깰 때 제일 적고, 낮 동안 생활하면서 점점 커진다. 점점 쌓이는 수면 욕구를 일주기 리듬이 강력한 각성 신호를 보내 낮 동안에 깨어 있게 한다. 밤이 되면 일주기 리듬이 각성 신호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하고, 많이 쌓인 수면 욕구로 인해 잠이 든다는 것이다. 잠이 들면 수면 욕구는 점차 해소되고, 아침에 일어날 무렵 일주기 리듬이 각성 신호를 작동시켜 비슷한 시간에 잠에서 깨게 된다. 이런 일주기 리듬과 항상성 요인 사이의 상호 관계를 통해 우리는 잠에서 깨어 있거나 잠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든 이 항상성과 일주기 리듬 간의 균형에 문제가 생기면 불면증이 찾아올 수 있다.
의식적으로 자려고 하면 잠은 달아난다
불면증은 과다 각성 때문에 생기고, 수면 부족 걱정도 잠을 쫓아
어떤 경우에 불면증이라고 진단하나요?
의학적으로는 일주일에 3회 이상 잠들기가 힘들거나 중간에 자꾸 깨거나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 잠들기 어려운 상태가 1~3개월 이상 지속되면 보통 불면증이라고 진단합니다. 잠드는 데 30분 이상 걸리거나 중간에 깨어 보내는 시간이 30분을 넘어도 입면 혹은 수면 유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불면증에 잘 걸립니까?
불면증은 정상적인 수면이 깨진 상태예요. 각성도(긴장 정도)가 높은 사람은 특히 불면증에 취약합니다. 매사에 느긋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걱정을 안 하는 사람은 각성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꼼꼼하거나 성취 지향적이고 섬세한 사람은 각성도가 높아 일상의 변화로 불면증이 생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에요. 꼼꼼하거나 성취 지향적인 이들이 불면증에 취약하다고 해서 나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에 대한 배려가 강하거나 자기 역할을 확실히 하는 등의 강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높은 각성도가 가장 큰 문제인 셈이네요?
누구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긴장해 잠을 잘 못 잡니다. 그러나 잠 못 자는 기간이 하루이틀이 아니라 1~2주로 길어지면, 걱정거리만으로도 힘든데 수면 부족으로 더 피곤해져 수면에 자꾸 매달리게 됩니다. 그런데 자야겠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긴장하게 돼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것을 의학적으로 과다 각성 이론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불면증을 일으켰던 걱정거리가 사라져도 잠 못 자는 것에 대한 걱정으로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못 자게 됩니다. ‘잘못된 보상 행동’ 또한 중요한 불면증 요인이에요.
잘못된 보상 행동은 무엇입니까?
과다 각성과 함께 두 번째로 흔한 불면증 유발 요인은 ‘잘못된 보상 행동’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 오후 11시에 자던 사람이 “전날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며 오후 8시에 잠자리에 누우면 막상 잠이 잘 오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잠자리에서 잠을 못 자거나 조금 잤다가 깨는 일이 반복되면, 잠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 잠과 연결되지 않고 깨서 긴장하는 상태와 연결됩니다. 그러면 부적절한 조건반사가 형성돼 몸과 마음이 ‘침대는 잠자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려 불면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낮잠을 길게 자는 것도 같은 원리로 수면을 방해할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어젯밤에 못 잤으니까 피곤하다고 하루 종일 누워 있으면 내 몸은 ‘눕는 건 잠자는 자세인데 왜 낮에 누워 있지’라며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러면서 낮에 누워 있는 자세가 잠자는 자세인지, 활동하는 자세인지, 낮에 자야 하는지, 밤에 자야 하는지를 계속 헷갈리는 거죠.
윤창호 교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수면 장애와 뇌전증 환자를 주로 진료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이수했으며 대한수면학회와 대한수면연구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하고 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학술 활동과 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2023년 4월 E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명의> 출연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면 장애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