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나를 지배한다.”
고영은 조정 심판 겸 강사 , 여성 의류 쇼핑몰 ‘키린’ 대표
175cm라는 큰 키는 물론 남다른 체력 조건까지 갖췄던 중학교 3학년, 16살의 고영은은 우연히 참가한 강원도민체전 육상대회에서 고등학교 조정 감독의 눈에 띄게 된다. 돌이켜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그렇게 엘리트 조정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운동부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저한테 하신 말씀이 있어요. 앞으로 시작될 선수 생활은 모든 훈련이 힘들고 벅차고 지쳐서 분명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올 거라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겨야 한다고요.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아버지의 말씀이 머릿속에 박혀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내려놓은 적이 없거든요. 아버지 말씀처럼 정신이 몸과 나를 지배한다 생각하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고 있습니다.”
올림픽 그리고 아시안게임까지
조정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후 단 하루도 운동을 쉰 날이 없었다고 말하는 고영은은 무려 태극 마크까지 달았던 국가대표 선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여자 조정 국가대표로 출전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조정이 인기 종목은 아니잖아요. 국가대표가 되어 베이징으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취재진은 물론 저희를 격려해주는 국민들까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응원을 받아봤어요. 지금까지 힘들게 운동했던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죠. 개막식 날 입장할 때는 꿈만 같았어요. 내가 지금 베이징 올림픽에 온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격스러웠죠. 그래서 올림픽 시즌에 TV에서 경기라도 보게 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옛날 생각도 나고. 그때의 벅찬 감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2년 뒤 그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또 한 번 여자 조정 국가대표로 발탁된다. 메달 불모지였던 조정에서 무려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조정이라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선수 은퇴와 함께 시작한 조정 제2의 삶
27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하게 된 고영은은 결혼과 동시에 선수 생활도 은퇴한다. 하지만 실력이 좋았던 그에게 머지않아 조정 강사 제안이 들어온다.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이 있었어요. 엘리트 운동선수 출신에 올림픽, 아시안게임 경력까지 있으니 어렵지 않게 조정 강사 일을 시작할 수 있었죠.” 이후 그는 심판 자격증까지 획득하게 된다. 자격증을 따면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선배의 제안에 시간을 쪼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맡은 것, 해야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요. 일할 때는 집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집으로는 일을 가져오지 않죠. 주어진 상황에 맞춰 한 가지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이뤄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작된 쇼핑몰 창업
고영은은 올 초 여성 의류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 ‘키린(Keerin)’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쇼핑몰은 온전히 그의 취향으로 채워진 그만의 공간이다. “옷을 사는 것도 입는 것도 좋아했어요. 모델도 직접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조정이라는 업을 버린 건 아니에요. 강사는 물론 가능하다면 모든 경기에 심판으로 나가고 싶거든요.”
조정 심판 겸 강사, 쇼핑몰 운영자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지만, 그는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한번 사는 인생이잖아요. 무엇보다 저는 여자는 남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요.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신조로 누구보다 강한 여자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