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을 설립한 조홍제 창업주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1906년 5월 20일 태어났다. 집안은 만석꾼에는 못 미치는 천석꾼 정도로 꽤 부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생가로 들어가는 덕촌리 어귀에는 “1935년 유례없는 가뭄이 들었을 때 이곳에 살던 조씨 부자가 쌀을 나눠주어 사람들이 연명했다”라는 내용의 송덕비가 있을 정도다.
그는 1926년 6월 6·10만세운동 당시 동맹휴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중앙보통학교에서 제적당했고, 1928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도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다 호세이대학교 독일경제학과에 입학해 1935년 졸업했다.
조홍제가 창업에 뛰어든 것은 1942년 군북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정미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하지만 광복 이후 서울 명륜동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어릴 적 고향에서부터 안면이 있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이웃 주민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둘은 의기투합해 1948년 공동출자로 삼성물산공사(현 삼성물산)를 설립했다. 둘은 6·25전쟁을 겪는 와중에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전쟁 직후 제당 사업에 뛰어들었다. 1954년 9월에는 제일모직을 설립하고 ‘골덴텍스’를 생산했다. 이를 통해 삼성물산은 비약적 성장을 거둔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갈등이 본격화됐고 결국 둘은 동업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조홍제는 1962년 9월 임직원 15명으로 효성물산을 설립하며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효성은 샛별이라는 뜻의 효성(曉星)에서 따왔다고 한다. 훗날 조홍제는 동업 청산이야말로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꼽아왔다.
효성그룹은 무역업을 바탕으로 1962년 조선제분 인수를 비롯해 1963년 대전피혁, 1967년 한국타이어를 인수하는 등 사세를 빠르게 확대했다. 1966년에는 동양나이론을 설립했고, 1970년에는 한일나이론을 인수하면서 섬유업으로도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후에도 1973년 효성증권, 1975년 동원철강 및 한영공업, 1977년 대동건설, 1978년 대성목재 및 효성기계, 1979년 율산중공과 율산알미늄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조홍제는 1978년 건강 악화를 이유로 세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은퇴했고 6년 뒤인 1984년 별세했다.
조홍제의 장남 조석래는 효성그룹을 물려받았다. 차남 조양래는 한국타이어를 물려받았고, 3남 조욱래는 대전피혁을 물려받았다.
효성그룹 역시 형제의 난이 없었더라면 선대처럼 세 아들에게 나눠 물려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형제의 난 이후 장남 조현준 회장과 3남 조현상 부회장이 효성그룹을 물려받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효성그룹은 2018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장남 조현준 회장과 3남 조현상 부회장이 각각 그룹을 나눠 물려받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조석래 명예회장이 별세하자 기존 지주사 효성은 2024년 7월 1일 인적 분할을 통해 조현준 회장의 효성과 조현상 부회장의 HS효성으로 쪼개졌다.
조 회장이 이끄는 효성은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효성ITX, 효성티앤에스, FMK 등을 맡게 됐다. 조 부회장의 HS효성 산하에는 효성첨단소재, 효성인포메이션(HIS), 효성홀딩스USA, 효성토요타, 광주일보, 비나물류법인 등 6개 회사가 배치됐다.
향후 조 회장과 조 부회장은 자신들이 가진 효성과 HS효성 지분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계열 분리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조홍제의 차남 조양래가 물려받은 한국타이어 역시 국내 최대 타이어 회사로 성장했지만 3세 승계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갈등을 겪었다. 한국타이어는 2012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이후 2020년에 한국앤컴퍼니로 그룹명이 변경됐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조양래의 장남 조현식과 차남 조현범이 경영 승계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조현범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로도 대중에 잘 알려져 있다.
조양래는 2020년 6월 자신이 가진 한국앤컴퍼니 지분 23.59%를 차남 조현범에게 넘기면서 후계자로 조현범을 선택했음을 대내외에 알렸다. 조현범은 한국앤컴퍼니 지분 42.9%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됐고 2021년 회장에 올랐다. 조양래는 2022년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조양래 장남 조현식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한국앤컴퍼니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조양래 명예회장의 결정에 불복하며 조 명예회장이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따라 결정한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했다.
2023년에는 조현식 고문과 조희경 이사장, 차녀 조희원 씨가 손잡고 MBK파트너스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주식공개매수를 통한 경영권 탈환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공개매수 참여율이 저조했고, 조양래와 효성첨단소재가 우군으로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경영권 탈환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조홍제의 3남 조욱래는 대전피혁을 물려받았지만 이후 조용한 일생을 보내고 있다. 1996년 대전피혁은 효성기계공업과 통합했지만 1997년 효성기계공업은 부도가 났다. 이후 조욱래는 DSDL(옛 동성개발) 회장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