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센스> 9월호 촬영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스튜디오에 모였어요. 강지영 아나운서를 떠올리면 노력하지 않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점심시간 이후에는 다시 회사에 들어가봐야 해요. 새롭게 들어가는 예능 프로그램 준비도 해야 하고, 요즘은 외부 일정도 많아 더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외부 일정은 스케줄도 직접 조율해야 하고 피드백을 해야 할 것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아침 일찍 스케줄 잡는 걸로 부탁드렸어요.
<JTBC 뉴스룸>에서 하차하면서 예능 프로그램 비중이 많아졌어요. 뉴스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뉴스는 저의 가장 기본이 돼주는 활동이에요. 이제는 유튜브 콘텐츠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것에 충실하고 있고요. 아마 더 이상 뉴스를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이 부각되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껏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다행히 제 캐릭터도 그에 따라 잘 흘러온 것 같아요. 하나의 방향성을 고집하기보다 전천후 활동을 지향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늘 아나운서의 틀을 깨고 싶다고 해왔어요. 깨고 싶은 ‘아나운서의 틀’은 무엇인가요?
선배들이 쌓아왔던 이미지도 충분히 멋있어요. 이젠 시대는 물론 방송국의 콘텐츠 트렌드도 많이 달라졌으니 아나운서 역시 달라져야 했고요. 정형화된 활동은 시대도 원치 않고 저 역시 재미를 못 느꼈어요. 그래서 저만의 길을 가보기로 한 거죠. 처음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까지 와서 인터뷰할 수 있는 거겠죠.(웃음)
지금은 이렇게 인터뷰이로 앞에 있지만 인터뷰어로서 많은 인터뷰를 해왔어요.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다 보면 영향을 받게 되는 지점도 있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과 인터뷰하다 보면 지금까지의 제 삶이 굉장히 제한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을 인터뷰를 통해 잠시나마 그 세계에 들어가 물어볼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 힘들 때는 언제인지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기회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타인의 인생을 잠시나마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죠.
하나의 방향성을 고집하기보다
전천후 활동을 지향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득 떠오르는 인터뷰 답변들이 있나요?
너무 많아요. 임지연 배우의 “난 항상 절실했다”, 최민식 배우의 “현장에서 레디 액션 후 허구의 인물을 진짜로 만드는 그 시간은 외로운 순간이다”도 기억나고 김성근 감독님은 정말 너무 많고요. “뒤를 보면 안 된다. 앞을 봐야지” 같은. 답변들도 기억에 많이 남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인터뷰의 순간들이 떠오른다는 거예요. 함께 웃음이 터진 순간이라든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케미가 딱 맞아떨어진다든지, 그런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요.
SNS에 “I do things for fun”이란 문장이 적혀 있어요. 일할 때도 적용되는 문장일 것 같은데, 요즘 가장 재미있는 일은 뭔가요?
새로 준비 중인 <극한투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될 거 같아요. 처음으로 해외 로케이션 예능 프로그램을 해보게 됐어요. 엄청 고생스러울 것 같기는 한데 그만큼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다음 주에 첫 여행지로 촬영을 가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여행지여서 어떤 환경이 펼쳐질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만큼 설레고 두려운 면도 있어요.
여행할 때는 MBTI의 P와 J 중 어느 것에 가깝나요?
P! 여행 준비를 거의 안 해요. 좋아 보이면 들어가고 맛있어 보이면 먹고, 여행이 다 그런 거 아닌가요?(웃음) 담당 PD가 슈퍼 J예요. 성향이 전혀 달라서 그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20대에 나를 이끈 원동력과 30대에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 좀 달라졌나요?
달라요. 20대에는 무모해 보여도 겁 없이 일단 해보고 봤어요. 30대에는 생각을 좀 더 많이 하죠. 합리적인 판단인지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한 후 행동하기까지 여러 각도로 들여다봐요. 20대에는 ‘일단 해보고 나면 뭐라도 하나 배우겠지’라는 마음이 강했다면 30대에는 저에게 주어진 책임감이 많다 보니 무언가를 한 번에 결정하기가 두렵더라고요.
최근에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인생의 선택이 있었다면 결혼이겠죠?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웃음) 제가 방송에 나와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건데, 남편만큼은 항상 든든한 내 편이죠. 믿어볼 법한 사람이 내 편이 된 게 정말 좋아요. 저와 남편 모두 극T여서 서로에게 조언할 때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조언을 해요. 위로나 격려보다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것도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강지영 아나운서는 누구로부터 답을 얻는 편인가요?
선배를 좀 더 확장해 들여다봐요. 해외 여성 배우나 여성 파일럿 인터뷰도 종종 찾아보고요. 그리고 꼭 여성이 아니어도 연로하지만 젠슨 황 엔비디아 CEO처럼 여전히 커리어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봐요. 각자 자기만의 인사이트가 분명히 있어요. 예전에는 굉장히 위대하고 커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생각만큼 멋있지 않은 사람도 종종 있더라고요. 기대했던 바가 컸기 때문에 실망감도 커지죠. 그래서 어느 특정한 사람을 롤모델로 삼기보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다른 인사이트를 얻으려고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 뿐이에요.
그래서 자꾸 뭐라도 조금씩 해보려고 해요.
우리는 누구나 슬럼프를 겪어요. 슬럼프가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온다고 말한 적 있는데, 최근에는 슬럼프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나요?
지금 슬럼프의 끝자락에 있어요.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슬럼프라는 게 현재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심리적으로 겪는 힘겨움일 수 있잖아요. 지금의 슬럼프를 벗어나는 데 <극한투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현지 사람들에 대한 기대도 크고요. 겪어보지 않은 나라에서 열심히 삶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큰 힘을 받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일을 제외하고 요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뭔가요?
가장 우선시하는 건 건강이에요. 체력을 키워보겠노라 복싱도 시작했고요. 아직 몇 번 못 갔지만요.(웃음) 하고 싶은 게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어 건강과 체력에 신경을 더 많이 쓰게 됐어요. 일에 대한 욕심이 많은 만큼 체력을 키워야 하겠더라고요. 하기 싫은 걸 해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명언 제조기인가요?(웃음) JTBC 디지털 콘텐츠 <고나리자> 굿즈에도 “자아도취하면 발전이 없다”는 말이 적혀 있어요.
명언 만드는 거 안 좋아해요.(웃음) 그냥 툭툭 제 생각을 던지는 것뿐이에요. 나이와 경험이 쌓이다 보면 신조가 생기잖아요. 무엇이 맞고 틀린지 경험했고 그때마다 드는 생각을 말로 했을 뿐이에요. “자아도취하면 발전이 없다”는 말도 정말 이 상황에 만족하면 그 이상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말이에요. 만족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떨어질 뿐이니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하죠.
늘 멈춰 있기보다 발전을 지향하는 편인가요?
그렇진 않아요. 자연을 보며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고인 물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깨끗한 물이어도 어딘가에 고여 있으면 썩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분명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해요. 그 정도 노력도 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조차 없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 뿐이에요. 그래서 자꾸 뭐라도 조금씩 해보려고 해요. 저 역시 예전만큼 폭발력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20대에는 정말 불사르며 뭔가를 했다면, 지금은 그만한 체력도 안 되고요. 남들이 봤을 땐 제가 엄청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 않아요. 자본주의에서 돈 벌기 위해 이 정도는 열심히 해야죠.
어떤 40대를 열고 싶어요?
우선 건강하고 싶어요. 인생을 대할 때 유쾌하게 생각하다가도 좀 진지한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러다 ‘인생 별거 없어’라고 생각하고 다시 유쾌해지고. 그렇게 순환하는 것 같은데, 요즘은 진지한 시기예요. 그러다 보니 MBTI가 원래 E였는데 I가 돼버렸어요. 세상에 ‘기’를 너무 빼앗겨버린 것 같기도 해요. 요즘은 집에 머물며 청소하고 책상 정리하고 밀려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아요. ‘나가서 뭐 할 생각하지 말고 주변부터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사실 올 한 해는 지칠 수밖에 없는 일정이기도 했어요.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었다>는 에세이도 냈으니까요.
책을 낸 시점이 결혼 전이어서 인생의 한 챕터가 정리되는 기분이었어요. 책이라는 물리적 결과물에 대한 성취감도 컸고요.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쓰다 보니 감정도 잘 정리됐어요. 독자들이 피드백을 들려줄 때마다 저 역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이런 사람도 있어요”라는 제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었어요. 그런 제 얘기를 보고 ‘그럼 나도 한번 해볼까?’라고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기대했고요.
아나운서로서 최종 목표는 뭔가요?
예전에는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면 이제 아나운서로서 목표는 없어요. 다만 막연하게 어떤 것까지 해볼 수 있을지가 궁금해요. 책도 써봤고, 이렇게 영광스럽게 잡지의 표지 촬영도 해봤으니 그다음에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마지막으로 동시대의 여성들에게 ‘고나리’를 해주겠어요?
각자의 인생에서 자신의 능력치를 한번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이렇게 시작된 이번 생에 능력치를 최대화해 한계가 어디인지 한번 보는 거예요. 끝장나도록 멋있게. 그리고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