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칼, 그리고 활의 민족. 2024 파리 올림픽이 대장정의 막을 내린 가운데 대한민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를 따내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특히 양궁과 펜싱, 사격 등 무기를 활용하는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종합 8위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각 종목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한 기업들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기업과 종목의 성과’만 이야기하지만, 기업 내부에서는 “회장님의 관심도가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회장님의 높은 관심도만큼 기업에서도 지원하기 때문에 기업의 후원 정도=회장님의 관심 정도라는 것이다.
#양궁 승리 요정, 정의선 현대차 회장
그런 의미에서 가장 주목받는 종목과 기업은 단연 양궁과 현대자동차다. 고 정주영 선대회장은 1981년 서울 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선출됐고, 이듬해인 1982년 대한체육회장을 맡으면서 현대가와 스포츠계의 인연은 시작됐다. 특히 정주영 회장은 1983년 초대 대한양궁협회장에 추대됐는데, 1985년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게 됐다. 그리고 2005년 대한양궁협회장으로 취임한 정의선 회장까지 내려왔다. 그동안 지원한 금액만 400억원이 넘는다.
대한양궁협회와 함께 인공지능(AI)과 증강 현실(AR), 비전 인식, 3D 프린팅 등 최첨단 기술 훈련 기법 도입에도 나섰고, 이번 파리 올림픽을 위해 슈팅 로봇을 만들어 선수들의 집중도 향상에 도움을 줬다. 이번 올림픽 때는 현지에서 양궁 선수들이 컨디션 관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별도의 휴게 시설 설치 등도 지원했다.
덕분에 파리 올림픽 양궁 전 종목(5종목)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린 양궁. 업계에서는 정의선 회장의 진심이 통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길에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한 정 회장은 바쁜 일정을 쪼개 파리 현지 상황을 사전 점검했을 정도로 진심이었다고 한다. 현지에 도착한 정 회장은 선수단 동선에 맞춰 경기장과 식당, 화장실 간 이동 시간을 살폈고, 직접 걸어보며 걸음 수와 소요 시간 등도 확인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이번 파리 올림픽 대회에서도 당연히 현장을 찾았는데, “참관할 때마다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다”는 취재진의 반응에 정 회장은 “내가 운이 좋은 것 같다. 선수들이 워낙 잘해서 내가 묻어가고 있다”고 겸손해하며 “나도 할 수 있는 건 뒤에서 다 할 생각이고 선수들이 건강하게 남은 경기 잘 치를 수 있도록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말은 겸손하게 했지만, 탈락 선수들에 대한 위로도 빼먹지 않고 챙긴다. 정 회장은 개인전 경기 이후 홀로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전훈영 선수를 따로 찾아 격려했다. 이러한 정의선 회장의 진심이 금메달 5개를 비롯해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라는 성과로 이어진 것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화약 하면 한화, 사격의 키다리 아저씨 한화그룹
사격은 한화그룹이 꾸준히 후원해온 종목이다. 비록 현재는 대한사격연맹 회장사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사격에서 좋은 성과를 내게 된 것은 한화그룹의 아낌없는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게 공공연한 이야기다.
한국화약에서 딴 ‘한화’라는 그룹사명을 가진 한화는 김승연 회장이 평소 사격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2000년에는 당시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 선수가 소속팀을 찾지 못하자 한화그룹이 나서 한화갤러리아 사격단도 창단했다.
이후 대한사격연맹 회장사를 맡고 첫 올림픽인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진종오가 자신의 첫 메달(남자 50m 권총 은)을 목에 걸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16년 만에 첫 사격 금메달을 명중시켰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김장미가 여자 권총에서 금메달리스트로 올라섰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여자 권총 김민정이 은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사격을 지탱하며 사격 발전 기금으로만 200억원 이상을 쓴 한화그룹. 비록 한화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지난해 11월 한화갤러리아 대표 출신인 김은수 전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물러나면서 회장사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그동안 누적된 투자의 성과를 고스란히 거뒀다. 2000년대생 오예진(여자 10m 공기권총), 반효진(여자 10m 공기소총), 양지인(여자 25m 권총)이 잇따라 금메달을 목에 걸며 완벽한 세대교체와 함께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