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효율 다 잡은 나 교수의 강의
공부 잘하는 아이는 어휘력과 문해력이 뛰어나다. 책을 읽고 쓰는 실력이야말로 모든 학습의 기초가 되고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도 향상시킨다. 어려서부터 독서 습관을 잘 들이면 학업의 튼튼한 기본기가 될 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엄마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독서 교육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로 재직하며 12년째 글쓰기를 가르치는 나민애 교수는 우선 아이 손에 재미있는 책부터 들리라고 말한다. 즐거운 경험이 쌓이면 책에 관심 없던 아이도 독서를 즐기는 아이가 될 수 있다.
나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재미와 효율을 모두 잡은 글쓰기 강의로 유명하다. 학생 평가 1위를 달성해 ‘갓민애’라고 불리는 그는 나태주 시인의 딸로도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지난 7월 24일 방영된 tvN <유퀴즈>에 출연해 읽고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을 전하며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화제가 됐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초등학교 5학년, 고등학교 1학년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터득한 보다 실용적인 독서 교육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독서가 왜 중요한가요?
독서는 모든 학습의 기본이에요. 책 읽기를 잘하면 어떤 과목이든, 어떤 활동이든 수월해져 아이 성장과 학업, 나아가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죠.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할까요?” 엄마들이 자주 하는 질문인데 제가 가르치는 서울대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독서 이력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열에 일곱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영어·수학 공부보다 책을 보여주세요. 어휘력이 부족한 아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 못 하고 소통도 어려워요. 책을 멀리하면 아이의 인생이 힘들어지고 더불어 엄마도 힘들어집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혀야 할까요?
책을 즐겨 읽는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을 가능성은 다분하지만 독서의 최종 목적이 성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는 사고력과 창조력을 기르고 고른 두뇌 발달을 도와줍니다. 핵심을 파악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읽기와 쓰기, 상관관계가 궁금해요.
많이 읽어야 겨우 씁니다. 읽기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쓰기라는 결과물은 바로 나오지 않아요. 쓰기는 생각을 정제해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나무 수액처럼 오랜 시간 고여야 해요. 독서가 따로 점수 매기기 어려운 영역인 만큼 학습 효과가 쓰기라는 성과물로 보이길 기대하지만 그 결과물 생성에 집착하면 아이의 독서는 원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책 읽기가 글쓰기를 위한 수단이 되면 안 됩니다. 충분히 읽을 수 있게 기다려주세요.
그렇다면 어떻게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
독서 습관을 형성할 때는 환경 요인이 매우 중요합니다. 책에 둘러싸여 책 냄새를 맡고 ‘행복한 책 읽기’를 경험한 사람이 책을 싫어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어릴수록 책과 친해지는 것에 목표를 두세요. 책 냄새를 많이 맡고, 책을 깔고 안고 논 아이는 나중에도 책과 깊이 친해질 수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해주시던 방식이에요. 아이가 얼마나 읽었는지, 이해했는지 평가하려는 순간 아이는 재미를 잃게 되니 다양한 책을 함께 읽어주세요. 아이가 흥미를 느껴야 독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요. TV와 스마트폰, 태블릿 PC를 치우고 아이에게 ‘심심한 시간’을 만들어주세요. 아이는 심심함이 지겨워 곁에 있는 책을 펼칠 거예요. 이때 부모가 먼저 옆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책 읽고 글 쓰는 아버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체득했어요.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어요.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해야 한다고 여겨요. 우리가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죠. 어릴 때 눈뜨면 책을 읽으시는 아버지가 곁에 계셨어요. 저도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함께 읽었어요. 그래서 저도 아이들과 있을 때는 함께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독서 환경을 조성해요. 그렇다고 엄마가 항상 책을 봐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저도 하루 종일 책만 보진 않아요.(웃음) 아이들이 학원 갔을 때나 잠들었을 때 최대한 저만의 시간을 즐겨요. 드라마도 보고 취미 생활도 합니다.
좋은 책을 고르는 눈도 중요할 것 같아요.
요즘은 정보가 많잖아요. 내가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고 알고리즘으로 추천해주는 빅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좋은 저자의 책은 실패할 확률이 낮으니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거나 시리즈를 탐색해 판매량이나 리뷰가 많은 상위 목록을 참고해도 좋습니다. 내 아이 스타일과 나이에 적합한 책을 골라보세요. 한 시리즈를 전집처럼 들이기보다 1권씩 사면서 도서 목록을 확장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여러 권 읽는 것도 좋지만 1권을 여러 번 읽는 것도 좋은 독서법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에게 ‘갓민애’로 불리는,
유쾌한 책 언니가 알려주는 읽고 쓰는 즐거움”
학습 만화가 읽고 쓰기에 도움이 될까요?
간혹 학습 만화가 독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사탕 사준 것처럼 돈 쓰고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요. 제가 가르치는 서울대학교 학생 중에는 아직도 <마법 천자문>이 ‘최애’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고, 저도 사실은 만화 덕후예요. 지금도 만화를 즐겨봅니다.
학습 만화의 장점은 ‘지대넓얕’이에요. 얕고 넓은 지식을 무리 없이 접하게 해주고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통로가 됩니다. 잡다한 지식이 늘어나면 수능 볼 때 상당히 유리해요. 어디서 들어본 지시문을 읽는 것과 생판 모르는 지시문을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책에 대한 흥미를 고취시킵니다. 간혹 학습 만화에 빠져 줄글을 안 읽으려고 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땐 학습 만화도 읽히고 줄글도 읽히면 됩니다.
아이가 학습 만화만 봐서 걱정이라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만화가 전혀 없는 삶이 가능할까요? 딱딱한 교과서보다 친근한 그림과 재미있는 캐릭터가 그려진 책이 아이에게 더 익숙하고 쉽게 읽히지 않을까요? 시각을 자극하는 영상보다 종이로 된 학습 만화를 보여주는 편이 낫습니다. 학습 만화 좀 보면 어때요. 못 보게 하지 마세요. 오히려 아이의 독서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요. 영리하게 활용하면 문제없어요.
학습 만화에는 한자도 많이 쓰여 감각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중학교부터는 교과서가 문어체 중심으로 바뀌며 한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학습 만화를 많이 읽은 아이는 한자 유추 능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될 수 있습니다. 한자를 잘 알면 어휘력이 풍부해지고 국어 학습에 유리합니다. 간혹 학습 만화에 익숙해져 줄글이 많은 교과서를 어려워할 수 있으니 만화적 포인트가 있는 줄글 책, 만화처럼 생긴 삽화가 있는 책을 함께 보여주세요.
학습 만화가 꼭 필요한 아이도 있을 것 같아요.
의자에 앉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아이, 책에 흥미가 없는 아이라면 학습 만화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종이책을 손에 쥐고 앉아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독서의 첫걸음입니다. 책을 읽으려면 우선 ‘앉기’가 필요해요. 앉아야 책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고, 제대로 마주해야 빠져들 수 있고, 빠져들어야 알 수 있어요. 처음부터 완벽한 독서는 없어요. 책과 마주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학습 만화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설탕이 될 수 있습니다.
독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어요.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자체를 어려워하는 아이일수록 재미를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기 가장 적합한 시기가 바로 초등 시절이에요. 웃긴 책, 모험 책, 영웅 책, 축구 관련 책 등 아이 관심 분야의 책을 접하게 해주세요. 웃긴 삽화가 그려진 책이나 코믹 포인트가 있는 줄글 책도 좋습니다. 부모는 아이 스스로 책의 재미를 찾을 수 있게 기다려주세요.
연령별 독서 로드맵이 궁금해요.
초등학교 저학년은 알록달록하고 따뜻하고 창의적인 그림이 정서에 큰 영향을 줍니다. 교과서 수록 도서를 통해 교과서와 학교를 더 친숙하고 편하게 해주세요. 전래 동화와 신화, 문화 관련 동화도 섭렵할 가치는 있습니다. 초등 3~4학년은 엉덩이 힘을 기를 체력도 되고 읽기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시기로 100~150쪽 책을 경험하게 해주세요. 만약 아이가 책의 무게감과 활자의 압박감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엄마와 소리 내어 번갈아 읽거나 소리 내지 않고 읽기, 혼자 읽기 등 상황에 따라 비중을 달리해 읽으면 좋습니다. 초등 고학년은 책을 읽은 후 저자를 파악하고 전체 내용을 요약하고 전체 메시지를 정리하는 ‘분석 독서’를 활용하세요. 책을 거시적으로 장악하는 경험은 독해는 물론 자기 생각 쓰기 수준이 높아집니다. 또 한국 소설이나 시를 미리 읽어두면 중학교 내신에 도움이 됩니다.
책 읽기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아이가 공부를 못하거나 책을 안 읽는 게 괜히 엄마의 탓이 되기도 해요. 아이 학원 레벨에 따라 엄마의 등급이 나눠지기도 하는데 같은 엄마로서 참 안타까워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마다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 달라요. 책을 열심히 읽던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 후 하루아침에 책을 멀리할 수 있고, 학습 만화만 열심히 본 아이가 서울대를 갈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옆에서 도와주면 좋지만 아이가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서 온전히 엄마 탓은 아닙니다.
독서 교육에 앞장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도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예요. 적어도 국어만큼은 내 자식을 덜 고생시키고 더 잘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 노하우를 알고, 현재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모든 아이가 더 즐겁고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세요. “네가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줘야 품위 있는 행동이야”라고요. 누구보다 바쁜 엄마들에게 독서 교육만큼은 편하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먼센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강연할 때 엄마들에게 듣는 가장 뿌듯한 말이 “우리 동네 언니였으면 좋겠다”와 “독서 교육의 길라잡이가 돼줘서 고맙다”는 말이에요. 저에게는 엄청난 영광이고 칭찬이죠. 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읽힐지 고민하는 엄마들은 다 훌륭합니다. 만약 지금 자신이 외롭고 고단하다면 책을 읽고 아이도 책을 접하게 해주세요. 저와 함께 책 읽는 여름이 되길 바랍니다.
학습 만화의 장점은 ‘지대넓얕’이에요. 얕고 넓은 지식을 무리 없이 접하게 해주고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통로가 됩니다. 잡다한 지식이 늘어나면 수능 볼 때 상당히 유리해요. 간혹 학습 만화에 빠져 줄글을 안 읽으려고 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땐 학습 만화도 읽히고 줄글도 읽히면 됩니다.
나민애 교수가 추천하는 학습 만화 3
<수학도둑>(서울문화사)
코믹 메이플스토리를 원작으로 한 수학 학습 만화로 100권까지 출간됐다. 재밌는 스토리와 친근한 그림으로 수학을 흥미로운 과목으로 받아들이게 도우며, 수학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과목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 줄 평 “수학의 원리와 개념을 쉽게 설명한 책으로 스토리가 재밌어 지루할 틈이 없어요.”
<마법천자문>(아울북)
중국 소설 <서유기>를 바탕으로 만든 한자 학습 만화로 초등학생 필수 한자 어휘를 담았다.
한 줄 평 “한자를 익히기 좋고 단어 감각과 유추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먼나라 이웃나라>(김영사)
1987년 출간된 책으로 만화가 이원복이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한 줄 평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읽기 좋은 책. 자연스럽게 세계사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