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를 맡으면 꽃사람이 되지”
이해인 수녀가 올해 수녀원 입회 60년이 됐다. 의미 있는 해인 만큼 단상집 <소중한 보물들>(김영사)도 내놓았다. 1964년 수녀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 2024년에 이르기까지 60년간 품어온 이야기다. 언제나 가난한 마음으로 별빛을 씹고 바람을 마시며 사는 착한 아이이고 싶던 그가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 되어 시로 그리고 기도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소망하며 꺼낸 첫말은 이것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더 갖지 못해 아쉽기보다 더 베풀지 못해 아쉽다. 하루하루 무언가를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면서 충만감을 느낀다. 이것이 내 본래 삶이 아닌가 싶다.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사소한 선물을 나누고 양보하며 배운다. 깊고 넓은 사랑을 키워야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이 보물이 되도록 정성을 들여야겠다. 언젠가 수도 여정을 마칠 때까지 작은 선물을 더 나누는 수도자가 되겠다고 오늘도 겸허히 다짐해본다. _<소중한 보물들> 중 ‘첫말 :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에서
지난 7월 말 서울 정동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해인 수녀는 여전히 소녀 같은 순수함과 명랑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처음과 끝이 시 낭송으로 채워져 더욱 따스했던 자리였다.
담백한 물빛의 평화로움 같은 것
올해가 수녀님의 수녀원 입회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부산 광안리 바다가 바라보이는 수녀원에 들어간 지 60년이 됐네요. 동시에 내가 인생 무대에서 80년을 살았다는 말인가 싶어요. 들어올 때가 있으면 나갈 때가 있다고 이제 저세상으로 사라질 날이 머지않구나 싶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이런 자리를 가지니까 긴장이 되는데요, 어려운 질문 말고 간단하고 재미있고 비종교적인 것 위주로 물어봐주세요. 가볍고 명랑한 질문이요(웃음). 간혹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수녀’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희생’, ‘고통’, ‘절제’ 같은 단어들만 말해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 안에도 ‘꽃마음’도 있고 ‘별마음’도 있답니다.
산문집을 종종 내긴 했지만 단상집을 내놓은 건 처음입니다.
피아노 치는 사람들이 손가락이 무뎌지지 않기 위해 계속 피아노를 치듯이 저도 수녀원에서 메모나 일기를 쓴 것이 어느덧 180여 건의 노트에 달합니다. 그래서 에세이도 아니고 시도 아닌, 그 중간의 단상들이 모이게 됐어요. 표지에 제 얼굴이 등장해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이제 80년을 살았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은 용기도 생겼네요. 예전에 신문에 제 사진이 크게 실릴 때면 수녀님께 불려가서 혼나고 그랬거든요.(웃음)
60년간의 시간이 수녀님에게 준 선물도 있을 법합니다.
담백한 물빛의 평화로움 같은 것. 늘 푸른 소나무 같은 평상심이요. 바람이 불어도 중심이 잡힌 안정감이 수도 생활이 준 선물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에게 소중한 선물은 무엇인가요?
애착하는 것 중 하나가 기도 소리를 듣고 떨어지는 솔방울이에요. 광안리 바다의 조가비도 좋아합니다. 산에서는 솔방울, 바다에서는 조가비 조합이요. 손님이 오시면 마땅히 드릴 게 없어서 조가비에 성경 말씀을 적어 예쁘게 칠해 드리기도 하고, 솔방울에 기도의 의미를 적어 건네곤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명언 모으기를 좋아했어요. 어떤 사람이 고민하는 얼굴빛을 보이면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맞춤형 명언을 선물합니다. 불평을 많이 한다고 치면,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촛불 한 개라도 켜는 것이 낫다”는 중국 격언을 써서 선물하는 식이죠. 사랑하기 힘들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인간의 삶은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 시간”이라는 아베 피에르 신부님의 말씀을 나누는 식입니다. 즐거운 궁리가 많은 삶, 그게 제 보물입니다.
간혹 백사장에 가서 조가비를 주워온다. 바닷물이 묻은 조가비를 햇볕에 말린 뒤 거기에 시구, 단어, 기도문을 적거나 그림을 그려 글방에 온 손님들에게 선물한다. 또 조가비에 예쁜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고 성서 말씀을 쓴 종이를 조가비 안에 붙여 선물하기도 한다. 조가비를 줍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 일상의 해변에서 숨은 보물을 찾아내리라. _<소중한 보물들> 중 ‘조가비’에서
수녀님의 시에는 ‘작은’이라는 형용사가 많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크고 높고 많은 것을 추구하는데, 수녀님에게 ‘작은’의 의미를 묻고 싶습니다.
조직에 몸담고 지내면서 나를 낮추고, 나를 작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드는 걸 배웠습니다. 크게 웃지 않는 것도 겸손이라고 가르치는 가톨릭의 엄격한 교육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지요. 하느님은 이타적인 삶을 사셨으니 나도 작아지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늘 내 안에 있습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하는 것이 있나요?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 많은 분이 수녀원으로 찾아오시더군요. 약속도 하지 않고 오셔서 조금은 저를 불편하게 하는 분도 계셨어요. 그럴 때 조금은 불친절하게 대했던 게 몇 년이 지나도 계속 후회가 되더라고요. 또 간혹은 형식적으로 만난 건 아닌지 늘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훗날 서울에 왔을 때 그분들에게 연락해 만나기도 했습니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부터 불친절하지 않고 사랑하겠습니다’ 하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수도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수도원에서 많은 수녀님과 함께 살다 보면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미움이 해소되지 않고 마음 안에 평화가 없을 때 가장 괴로웠어요. 결국 상대가 나한테 잘해주길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다가갔을 때 더 큰 행복을 맛볼 수 있고, 스스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기심의 감옥에서 빠져나와 이타적 삶을 살 때가 행복한 것 같아요.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이 화해와 용서다.
언짢은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거나
듣기 좋은 말을 하거나 / 기도하는 것은 위선이다.
오늘 용서할 일을 / 오늘 용서할 때 평화가 찾아온다.
_<소중한 보물들> 중 ‘수도 단상’에서
“수녀가 되지 않았으면 ‘선물의 집’ 주인이 됐을 거예요.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선물의 집이요.
특히 저는 예쁜 카드를 모으는 걸 좋아했습니다.
“카드를 만들어 나눔을 하다 마침내 그녀는 하나의 러브레터가 돼서 날아갔다”
정도가 내 삶의 요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60년의 수녀 생활은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었다”
여전히 목소리도 마음도 소녀 같으십니다. 내 안의 소녀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어머니가 항상 소녀 감성이 있으셨어요. 동생도, 13살 위인 언니 수녀님도 소녀 같으셨어요. 시를 많이 읽어서 그런 걸까요? 철이 없는 소녀가 아니라 순수한 소녀요. 아무래도 감동과 감탄을 많이 하다 보니까 제 안에 소녀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영희 교수, 박완서 작가 등 과거 특별했던 지인들과 연이어 이별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 슬픔을 극복하셨는지요.
올해만도 같이 살고 있는 후배 수녀님을 비롯해 5명이 돌아가셨어요. 같은 공간에 있던 분들이라 아무리 신앙이 있더라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육신이 한 줌 재가 되는 걸 보니 감당이 안 되더군요. 요즘은 이별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나도 그 길을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죽음이 항상 내 삶 속에 있구나’ 하고 죽음을 앞당기는 연습을 하는 것이죠. 결국 모든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삶 속에서 영성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인생의 이별학교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모든 것은 언젠가 다 지나간다는 것을, 삶의 유한성을 시시로 절감하며 지금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결국 많이 감사하고 자주 용서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되지 않더라도 의식적으로 옆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깊고 넓은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어느 날 찾아올 진짜 마지막 이별을 순하게 맞이하는 길이라고 말이다. _<소중한 보물들> ‘이별학교 학생이 되어’에서
책 속에 어머니가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셨나요?
제가 6살 때 6·25전쟁이 일어났고, 그때 아버지가 작은아버지 댁에 가신다고 나간 뒤 못 돌아오셨어요. 이후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시며 신앙 속에 4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꽤 됐지만 지금도 어머니를 저의 수호천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어머니가 꿈에 보입니다. 죽음이 두렵다가도 어머니가 계신 곳에 가는 것이라 생각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작아집니다.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오셨습니다. 당시에 수녀님이 하신 ‘명랑투병’이란 말이 아픈 분들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한 일간지에 ‘명랑투병의 4대 지침’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첫 번째는 주님에게 달라는 기도 말고 감사의 기도를 많이 하자는 겁니다. 주님도 매일 달라고만 하면 피곤하지 않으실까요? 두 번째는 제가 경상도 땅에서 살고 있어서인지 무뚝뚝합니다. 감탄과 감성을 키우며 살자는 거죠. 세 번째는 아프면 남에게 신세를 지게 되고 자연스레 내 약점도 보이게 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의 한계와 무력함을 받아들이지는 거예요. 그리고 살다 보니 저도 이름이 조금 났다는 이유로 악플에 시달리곤 합니다. 출연한 라디오에서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김수경 추기경은 한 그루의 느티나무, 법정 스님은 소나무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왜 우리 스님이 소나무냐”고 따지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수녀는 아무 곳에도 나가지 말고 방에만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더라고요. 그게 네 번째입니다. 이렇게 명랑하게 살아가자는 지침입니다.
“나는 한 편의 시처럼 죽었으면 좋겠다”
20대로 돌아가면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머리에 물들이는 것, 화려한 스커트를 입어보는 것.(웃음) 귀고리, 목걸이, 파마도 한 번 못 해보고 수녀원에 왔으니 그런 것들이 여전히 신기하기만 합니다. 수녀가 되지 않았으면 아마 ‘선물의 집’ 주인이 됐을 겁니다.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선물의 집이요. 제가 쓴 글 중에 ‘카드로 만든 집’이라는 게 있어요. 나는 항상 예쁜 카드를 모으는 걸 좋아했습니다. “카드를 만들어 나눔을 하다 마침내 그녀는 하나의 러브레터가 돼서 날아갔다” 정도가 내 삶의 요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20대로 돌아가도 다시 수행자의 길을 걸을지 궁금합니다.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이 길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수녀 생활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녀님을 가리키는 수식어가 많습니다. 명랑수녀, 국민 이모, 민들레 어머니….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무엇입니까?
‘흰 구름 천사’. 헤르만 헤세의 ‘흰 구름’이란 시를 참 좋아하는데요, 하늘과 땅 사이에 구름이 있고, 그걸 이어주는 구름 천사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50년 가까이 시를 쓰니 그 시가 저 대신 동서남북 날아다니며 흰 구름 천사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수녀님에게 시란 무엇인가요?
모든 인생의 스토리를 상징 언어로 풀어내는 기도이자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소설과 산문과는 다른 영롱한 구슬 같은, 어쩌면 수도자의 삶과 비슷한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나에게 수도 생활을 지탱하게 해준 도구였습니다.
좋은 시란 천 사람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사람이라도 천 번 읽는 시다. 수도 생활, 수행자 삶 자체가 시와 비슷하다. 내게 시는 수도자의 삶을 압축해 표현하는 사랑의 기도다. 사계절의 삶을 언어로 풀어내는 노래다. 독자들의 편지를 읽다 보면 시는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작은 러브레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인은 삶에 시를 채워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언어의 천사다. 사제처럼 아름다운 노력을 하는 삶 속 예술인이다. 남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민하게 관찰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몫이다. 나는 성당에서, 침방에서, 정원에서 그리고 글방에서 시를 빚는다. 나는 한 편의 시처럼 죽었으면 좋겠다. _<소중한 보물들> 중 ‘시인의 몫’에서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시대가 가장 소중하게 다뤄야 할 가치를 한가지 꼽아주신다면요.
그런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웃음) 제 생각에는 좀 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가족 이기주의가 심합니다. 인류 보편적 사랑을 넓혀가는 정신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내 가족도 소중하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요.
인터뷰 말미, 이해인 수녀는 시를 낭송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여러분, 이 시처럼 바람에 흔들려도 기분 좋게 살아가는 꽃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비꽃과 민들레가 / 좁디좁은 돌 틈에서
나한테 사이좋게 / 웃고 있는 봄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 힘들어도 힘들지 않게
누구하고나 사이좋게 / 정을 나누면서
바람에도 기분 좋게 / 흔들리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 꽃이 되리라
결심해보는 / 이토록 눈부신 봄날
_<소중한 보물들> 중 ‘봄 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