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인생에는 나스카 지상화가 있다.
아직 비행기를 타고 그림 전체를 바라보지 못했을 뿐
우리 모두는 결국 신비롭고 거대한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최송현을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배우이자 전 아나운서 그리고 스쿠버다이빙 강사. 최근 자신의 첫 에세이집 <이제 내려가볼까요?>를 출판한 후 작가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지상파방송 아나운서로서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과 얼굴을 알렸지만,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 차근차근 유영해간 최송현. 10여 년 전 우연히 시작하게 된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단언컨대 지금 가장 단단한 모습이었다.
“제 가슴에 새긴 문장은 올 초 출판한 저의 에세이집 프롤로그에 들어간 구절이에요. 부끄럽지만 제가 직접 쓴 문장입니다. 나스카 지상화는 고대에 그려진 거대한 지상화로 1939년 지역의 파일럿에 의해 처음 발견됐고, 이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을 정도로 거대하고 신비로운 경관을 가졌어요. 지상화인 만큼 500m 상공에서만 그 유산들을 볼 수 있는데, 서울 절반 크기의 면적 위에 기하학적 도형부터 사람과 동식물까지 무려 수백 개의 다양한 그림이 펼쳐져 있다고 합니다. 그 지상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후, 제가 걸어온 다양한 갈래의 길들이 높은 곳에 올라서야 비로소 보이는 나스카 지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수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선택하고, 모두가 만류하던 방향으로 출발해 발 도장을 찍었던 제 모든 행동이 비로소 멀리 떨어져 바라봤을 때 지금의 나라는 모습을 완성해준 아름다운 그림이었던 거죠.”
깊은 바다에서 마주한 작은 행복의 가치
PADI(the Professional Association of Diving Instructors)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정받는 다이빙 트레이닝 기관이다. 이곳에서 강사이자 앰배서더로 수년째 활동하고 있는 최송현은 지난해 교통사고로 허리 디스크가 파열돼 1년 가까운 시간을 누워 지냈다고 말한다. “허리를 다쳤지만, 하지 방사통까지 겹쳐 아침저녁으로 진통제를 먹었어요. 밥을 먹고 누워만 있으니 점점 살이 찌기 시작해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체중 조절을 위해 처음으로 요리를 시작하게 됐고, 자연스레 제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대접했는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죠. 다치지 않았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감정이니, 덕분에 소중한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스쿠버다이빙 하면 으레 떠오르는 거대한 고래와 상어, 아름답게 헤엄치는 가오리 등 장엄한 해양 생물을 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우연히 눈에 들어온 모래 위의 작은 바다 생물들을 발견한 후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자세히 봐야 눈에 들어올 만큼 작은 생물이지만 매일 싸우고, 사냥하고, 사랑하고, 집을 만들며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큰 성공만을 좇던 과거의 제가 생각났어요. 전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하루를 늘 꽉 차게, 인생 계획도 견고하게 세우는 편이었죠. 하지만 이제 알아요. 거창하지 않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채우는 작은 행복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지. 심지어 지금 제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2가지, 스쿠버다이빙과 남편을 만난 것도 전혀 계획하지 않은 일이었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나스카 지상화
나스카 지상화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마치 흐트러져 있는 듯 보였던 자신의 삶이 멀리서 봐야지만 깨달을 수 있는 작품임을 알게 됐다는 최송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희로애락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이제 크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의연함이 생겼다. 그리고 그녀는 나스카 지상화가 비단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님을 함께 덧붙였다. “인생이란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거잖아요. 나스카 지상화는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나 공간을 뜻하는 나만의 ‘안전기지’를 꼭 구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면을 돌보고 사랑을 채우는 것임을 부디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