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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으로, 정김경숙이 맞이한 인생 2막

100세 시대에 인생 2막을 위한 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삶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당당하게 제2의 삶을 맞이하는 방법에 대하여.

On July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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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6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정김경숙(로이스 김)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세계적인 IT 기업 구글의 본사에서 디렉터로 한 팀을 이끌었던 그녀는 퇴직 이후 미국 대형 식료품 체인점 ‘트레이더 조’,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스타벅스’, 공유 운전 플랫폼 ‘리프트’, 펫시팅 아르바이트까지 N잡러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맞닥뜨려야 할 퇴직, 그 이후의 삶을 새로운 도전으로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모두가 주목하는 기업의 임원에서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지내는 정김경숙의 인생에 물음표를 던질 수 있지만, 타인의 시선과 잣대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그녀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직장 생활로 인해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며 커리어 버킷 리스트에 적어둔 것을 이뤄가고 있다. 여름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한 5월 말, 자신의 은퇴 일기를 담은 저서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 출간 기념으로 한국에 방문한 정김경숙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형 마트 트레이더 조의 로고가 새겨진 스웨트셔츠에 활동이 용이한 워커를 신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녀의 환한 미소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책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가 퇴직자와 퇴직 예정자들 사이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어요.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해요.
정리 해고뿐만 아니라 타의에 의한 부서 이동, 권고사직, 질병 등 많은 이유로 커리어에 변화를 맞이할 수 있어요. 이런 변화가 찾아왔을 때 주저앉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커요. 당장은 인생에서 가장 큰 일에 직면했다고 느낄 거예요. 그러나 별일 아니고 언제나 그래 왔듯 당면한 일을 해결할 힘이 모두에게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위기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슈퍼히어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용기를 냈던 것처럼 책을 읽는 분들이 용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대기업 임원에서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변화를 솔직하게 밝히는 게 마냥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제게 찾아온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가끔 회의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저처럼 정리 해고로 이른 퇴직을 하고, 갑작스럽게 은퇴 이후의 삶에 뛰어든 사람의 얘기에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믿었어요. 그리고 여전히 불안함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요. 책이 출간되고 메일을 많이 받았어요. 메일을 읽으면서 책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상 앞의 마케터가 아닌 필드 전문가 되기

커리어로 말할 것 같으면 막힘없는 30년이었다. 정김경숙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해 내로라하는 외국계 기업에서 눈부신 성과를 기록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구글에 몸담은 16년 동안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시대적 변화를 세상의 중심에서 목도하기도 했다. 성과와 더불어 자랑스러운 직함도 달았다. 201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로 스카우트돼 비원어민 최초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 디렉터를 지내며 구글러들을 이끌었다. 장밋빛 커리어를 이어오던 정김경숙은 2023년 1월 20일, 구글에서 정리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당신의 자리는 없어졌다. 오늘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냉랭한 문구가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믿을 수 없었다. 일을 사랑했던 그녀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하지만 절망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언젠가 마주해야 할 소식이었다. 보통의 50대 중반 직장인이 그렇듯 정김경숙 또한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각광받는 구글의 임원에서 실리콘밸리를 휘젓는 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이 되기로 한다.


30년간의 직장 생활의 끝이 정리 해고였습니다. 심경은 어땠나요?
처음엔 잘못 발송된 메일인 줄 알았어요. 어떠한 예고도 없었던 해고 통보였으니까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에 돌입했을 때도 구글은 끄떡없었어요. 오히려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안심시키는 게 제 역할이었는데, 제가 구조조정 대상자가 된 거예요.(웃음) 그만큼 어떤 대비를 하지 못한 채 실직을 하게 됐어요. 구글이 제 손을 놓았다는 현실을 부정한 뒤에 분노가 일었어요. 왜 제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싶었죠. 실컷 화를 내다가 현실과 타협하면서 우울감에 빠졌어요. 그리고 비로소 제가 닥친 일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 N잡러로


실직으로 인한 우울감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지난 30년간 직장 생활을 열심히 했으니 이제는 해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즉시 다이어리를 펴놓고 하고 싶은 일을 써 내려갔죠. 리스트업만 했는데 기분이 좋아졌어요.(웃음) 실직하면서 생긴 시간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으니 생기가 돌더라고요.

시련을 기회로 받아들인 셈이군요.
누구에게나 그렇듯 진로를 바꾼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고, 지금도 가끔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구글에서 정리 해고된 지 열흘 만에 마트 트레이더 조에 첫 출근을 했어요.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는 시간엔 운전대를 잡아 자동차에 손님들을 태웠죠. 저를 바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땀 흘리는 일들을 찾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차에 손님을 태웠는데 구글 캠퍼스가 목적지더라고요. 매년 5월이면 열리는 구글의 큰 행사에 참여하는 손님이었어요. 만감이 교차했어요. ‘지난해까진 내가 행사의 주축으로 활동했는데, 지금은 갈 수 없구나’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혔죠. 하지만 곧 생각을 전환했어요. 그리고 손님에게 구글 캠퍼스 이용 팁을 알려줬어요. 생각을 바꾸니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삶의 파도 위를 건너는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


은퇴 이후 스스로 선택한 일이 아르바이트라는 사실도 놀랍습니다.(웃음)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구글 디렉터를 지내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급격하게 줄어 아쉬움이 있었어요. 아쉬움을 풀 수 있는 방법으로 육체노동을 떠올렸어요. 생업의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1가지 일을 이루기 위해 1만 시간을 할애하는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제 목표는 1만 명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어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친구들은 당분간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쉬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어요. 하지만 저는 더 많은 경험을 쌓을 때라고 생각했어요. N잡러가 된 이후 친구들과 만나 제 상황을 털어놨을 때 오히려 잘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제 선택을 이해할까 싶었는데 친구들은 저를 진심으로 응원해줬어요. 무엇보다 SNS에 업로드한 제 일상이 화제가 됐어요. 45만 명의 사람이 제 이야기를 읽고 댓글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줘 큰 힘을 얻었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그래서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 거 같아요. 트레이더 조에 이력서를 넣을 때만 해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야’라는 자신감과 설렘이 컸어요. 그런데 출근 첫날 집에서 유니폼을 입고, 가슴에 명찰을 달았는데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육체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두려웠어요. 제가 선택한 일이지만, 마음 한편에 복잡한 생각이 얽혀 있었어요. 굳어버린 발을 바라보면서 ‘지금 문밖에 나가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마치 남북 군사분계선을 넘는 마음으로 비장하게 집 현관문을 열었고, 2차 관문이었던 마트 문을 제 손으로 열었어요. 아마 내적 갈등은 죽을 때까지 차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어요. 구글에 재직 중일 때는 노트북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서든 살 수 있어요. 내 몸 하나만 있으면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어딘가에 소속된 내가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은 기분이에요.

“20년 뒤 당신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더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닻줄을 풀어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탐험하라. 꿈을 꿔라.”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 퇴직 이후 1만 명의 사람과 만나겠다는 궁극적인 목표 아래 N잡러가 되기를 자처한 정김경숙은 삶의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과 교류하면서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구글을 떠난 지 약 1년 5개월, 그녀는 모든 인간에겐 배울 점이 있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소속과 제도가 선사하는 안정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그녀는 처음엔 두렵기만 했던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정김경숙의 하루 루틴이 궁금합니다.
퇴사 전 생활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요.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가용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늘어도 몸이 늘어지지 않도록 바쁘게 움직여요. 그래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하루에 1시간씩 수영과 걷기를 하고, 일주일에 2번씩 검도를 해요. 나이가 들면서 체력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지만, 스케줄 근무를 하는 현재 상황에서 운동은 큰 도움이 돼요.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이어온 영어 공부 또한 게을리하지 않아요.

멘털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무기력해도 일단 몸을 움직여요.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과 만나 에너지를 충전해요. 보통 은퇴와 동시에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경우가 많아요. 직장 생활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은 물론 친구들과의 만남도 꺼리죠. 하지만 전 은퇴 이후의 인간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레 겁먹지 말고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인생 선배들에게 조언을 듣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아라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문장이 있나요?
계획된 변화든, 예정에 없던 변화든 내 인생의 흐름을 파악하고 주도권을 잡고 있어야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믿어요. 어떤 분들은 제 사례를 보고 의아해할 거예요. 정리 해고가 됐는데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겁니다. 만일 제가 정리 해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았겠죠? 하지만 제 인생에 찾아온 변화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아 새로운 도전으로 채우고 있어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가 저를 좌절감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준 거예요.

퇴직을 앞둔 또래 직장인들에게 조언하면요?
은퇴 예행연습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돈을 벌지 않을 때 살림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저 같은 경우 통장에 돈이 있어도 월급을 받지 않으니 인색해지더라고요. 저는 퇴직 이후에도 약간의 경제활동을 지속하는 ‘반퇴’ 라이프를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어요. 또 퇴직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게 좋아요. 밀려오는 불안감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선 무엇이든 활동적인 행위를 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소속된 회사가 없어졌을 때 사회 활동을 어떻게 유지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주변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퇴직자 커뮤니티 등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사회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아야 제2의 인생을 윤택하게 지낼 수 있어요,

은퇴 예행연습의 핵심은 뭘까요?
오픈 마인드요. 퇴직 이후엔 자신을 위해 시야를 확장해야 해요. 직장 생활을 할 때처럼 주어진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하니까요. 퇴직한 이후 세상에 나와 보니 할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웃음) 그동안 생각만 하고 도전하지 못했던 자격증, 각종 봉사 활동, 취미 생활 등 나에게 생기를 줄 수 있는 일을 찾아 일단 해보길 바랍니다. 매사에 호기심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면 기회가 찾아와요. 저는 이제 구글 없이도 잘 살 수 있고, 세상이 무섭지 않아요. 구글에서 나오기 전엔 몰랐던 사실이죠. 당장은 무서운 마음이 들겠지만, 인생은 충분히 재미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N잡러 정김경숙의 넥스트 스텝이 궁금합니다.
마음을 열어놓고 있어요. 현재 수행하고 있는 1만 명 만나기 프로젝트 안에서 오픈 마인드로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고 있어요. 책 출간 기념으로 한국에 와서 구둣방을 들렀는데, 구두 닦는 사장님에게서 장인 정신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대뜸 견습생이 되고 싶다고 말했죠.(웃음) 허락해주셔서 구둣방에 출근해 사장님의 일손을 돕고, 구둣방을 찾는 손님들을 만나고 있어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새로운 기술을 배워볼 생각입니다. 또 지금은 N잡러로 활동하고 있지만, 다시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고 있어요. 여기서 풀타임은 새로운 직장에 국한되지 않아요.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해보지 못했던 일에 도전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든 시도해보고 싶어요.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생각해요.(웃음)

정김경숙 작가는…

정김경숙 작가는…

전 구글 디렉터. 모토로라코리아와 한국릴리의 마케팅, 홍보팀을 거쳐 구글코리아 커뮤니케이션 총괄 임원으로 재직. 201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로 스카우트돼 비원어민 최초로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의 디렉터를 지냈다. 저서로는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영어, 이번에는 끝까지 가봅시다>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가 있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김태이(프리랜서)
사진
이대원, 정김경숙 제공
장소 협찬
도화아파트먼트 마포
2024년 07월호
2024년 07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김태이(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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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 정김경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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