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총수 주식 재산 순위 6위
지난 5월 K-팝을 선도하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뉴진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아일릿, 르세라핌 등이 소속된 엔터테인먼트 하이브가 자산 규모 5조원을 넘기며 국내 엔터테인먼트업계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됐다. 공정자산총액이 2022년 말 기준 4조 8,100억원에서 지난해 말 5조 2,500억원으로 성장한 결과다. 재계 순위는 85위다.
이로써 하이브는 상장사로서 공시했던 상법, 사업보고서, 재무제표 외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내부 거래, 비상장 중요 사항, 기업집단 현황 등을 추가로 공시해야 한다. 즉 하이브뿐 아니라 계열사의 주주 현황과 주요 경영 사항 등을 자본시장에 모두 공개해야 하는 것. 현재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 체제로 운영된다.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어도어를 비롯해 빌리프랩, 쏘스뮤직,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KOZ엔터테인먼트 등 하이브의 계열사만 11개에 달한다. 자회사인 각 레이블이 음악 등 콘텐츠 제작을 맡고 홍보나 업무 등은 모회사인 하이브가 담당하는 구조다. 만약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집단에 포함된 계열사를 신고하지 않을 시 허위 자료 제출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고 검찰 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방시혁 의장에게 새로운 오너리스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하이브가 보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밖에도 엔터와 융합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공연과 콘텐츠를 기획하는 하이브360,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하는 하이브IPX, 게임 사업 하이브IM, 지난해 인수한 오디오 기업 수퍼톤, 세계 최대 팬덤 플랫폼인 위버스도 운영 중이다.
하이브가 대기업 반열에 들어서면서 방 의장은 그룹 총수 주식 재산 순위 6위에 올랐다.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하이브의 지분 31.8%를 보유한 방 의장의 주식 재산은 2조 6,302억원에 달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보다 보유 주식 재산이 많다. 앞으로 방 의장은 친인척 등 총수 일가가 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사익 편취 규정을 적용받는다.
‘천재기 있던 아이’ 독학으로 음악 공부 시작
1972년생인 방시혁 의장은 언북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노동부에서 공직 생활을 한 방 의장의 아버지에 따르면 방 의장은 어린 시절 운동을 싫어하고, 5살 때 한글을 깨쳐 하루 종일 책만 읽던 소년이었다. 집중력과 속독력이 뛰어나 많은 양의 책을 읽어 초등학교 입학 전 청소년 시기에 읽을 책을 거의 읽었다는 후문이다. 방 의장은 스스로 알아서 1시간 남짓 소설을 읽듯이 시험공부를 했고, 성적도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이른바 천재였다. 방 의장 역시 어린 시절 자신을 “친구들이 재수 없어 할 정도로 노력 대비 공부를 잘하던 천재기 있던 아이”로 기억했다.
방 의장의 이런 특성 때문에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을까 우려한 부모가 기타를 사준 게 음악 활동의 시작이었다. 기타에 흥미를 가진 방 의장은 스스로 악보를 그리며 작곡했고, 중학교 땐 밴드를 결성해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서울의 한 공원에서 공연을 했었다고. 또 팝송을 즐겨 듣고 빌보드 차트를 달달 외우는 빌보드 키드였던 그는 음악 분야에서는 지독했다. 1994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발을 들인 그는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방 의장은 “독학도 독하게 하니까 나중에 작곡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말하기도. 이후 동갑내기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창의성 총괄 책임자의 눈에 띄어 1997년부터 JYP 대표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한국형 팝 발라드의 개척자 유재하의 영향을 받은 그는 대담하고 실험적인 음악 작업으로 히트곡을 쏟아냈다. 그룹 god의 ‘하늘색 풍선’과 ‘프라이데이 나이트’, 비의 ‘나쁜 남자’, 그룹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그룹 2AM의 ‘죽어도 못 보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음악적 자부심이 높다. 2011년 인기를 끌었던 MBC 예능 <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 임재범이 방 의장이 작곡한 백지영의 ‘내 귀에 캔디’ 리메이크를 요청했으나 “한 번도 곡의 리메이크를 승인한 전례가 없다”며 거절했을 정도.
2005년 방시혁 의장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빅히트라는 사명은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진영과 미국으로 떠나 활동할 당시 박진영이 지어준 ‘히트맨 뱅(Hitman Bang)’이란 예명에서 시작됐다. 방 의장은 “히트를 따와서 대박 내자는 의미에서 빅히트라는 사명을 지었다”고 밝혔다. 그는 2013년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고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팀명에 담아 방탄소년단(BTS)을 데뷔시켰다. 방 의장은 BTS 멤버들을 혹독하게 트레이닝시킨 것으로 악명 높다. MBC 오디션 예능 <스타 오디션-위대한 탄생>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그는 “싱어송라이터는 노래뿐 아니라 사람 자체가 캐릭터다”며 “미안하지만 외양에 좀 더 신경 쓸 생각은 없나?”라거나 “상업 음악을 하는 사람들보다 부족한 실력이다. 본인의 음악을 알릴 거면 실력부터 키우라”며 독설을 마다하지 않기도. 그러면서도 방 의장은 BTS 멤버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습생 시절부터 멤버들에게 팀으로 성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멤버들이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했다고. 그 때문일까? BTS 멤버들의 끈끈한 신뢰 역시 유명하다. BTS 멤버 전원이 빅히트 뮤직과 두 번째 재계약을 맺은 이유다. 이에 대해 방 의장은 “BTS 정도 되는 아티스트는 선택지가 많다. 그들이 우리랑 재계약을 선택했다는 것은 매니지먼트의 수장으로서 BTS와 일했던 역사를 인정해준 기분이었다”라며 “BTS 친구들이 ‘형을 믿고 한번 가보겠다’고 했다. 매니지먼트업을 택하고 20년이 넘는 시간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방시혁은 민희진의 기자회견으로 ‘개저씨’라는 프레임이 씌여졌지만 분명한 건 K-팝 역사를 다시 쓴 ‘방탄소년단’의 프로듀서이자 민희진을 스카우트해 ‘뉴진스’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하이브·민, 갈등 어떻게 봉합될까?
방시혁 의장은 지난 5월 17일 법률 대리인을 통해 민희진 대표와 경영권 분쟁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도, 철저한 계약도 인간의 악의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며 “한 사람의 악의에 의한 행동이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시스템을 훼손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민 대표의 해임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 즉 하이브가 이번 분쟁과 관련해 추가적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뉴진스 멤버와 그들의 부모들, 일부 여론이 민 대표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여론전으로 확대되며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민 대표는 지난 5월 30일 2차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경영 성과를 강조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하이브 측은 6월 8일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앞서 방 의장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2014년부터 기업가로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이 지속 성장하려면 (중략) 인사가 가장 중요하다. 인사 안에서 채용과 문화가 중요하다. 그다음에 지속 가능성은 팬과 콘텐츠다. 이 대전제 안에서 매뉴얼을 짜고 문화적인 원칙을 세우고 우리의 인재상을 정립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이 된 하이브의 첫 번째 과제는 내부 봉합이다. 유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지배구조와 시스템을 변화시켜나갈지도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