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은 늘 찬양과 품평의 대상이었다. 글래머러스하거나 스키니한 체형, 탱탱함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결 또는 잔근육으로 채워진 탄탄한 보디라인 등 부위별로 세밀하고 날카롭게 평가받아왔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응당 지켜야 하는 도리처럼 여겨지던 외모 가꾸기. 이는 아주 오랜 과거부터 암묵적인 미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여성이라면 당연히 애써야 하는 에너지이자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산업이었다. 하지만 이런 외모 지상주의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미국에서 시작된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이 전 세계 수많은 여성에게 뉴 웨이브를 일으킨 것. ‘나 자신 그대로를 사랑하자’라는 의미 그대로 자기 몸 긍정주의를 뜻하는 보디 포지티브는 이제 미국을 넘어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여성에게 새로운 마음가짐을 퍼뜨리는 중이다.
일괄된 미의 기준이 가져온 폐해
2020년 7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의 외모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을 쓰는 편이다’라는 질문에 남성은 55.7%, 여성은 75.7%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우리 사회는 바람직한 외모에 대한 기준이 있다’라는 문항에 남성 66.4%, 여성 70.7%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외모가 우선시되는 사회 분위기는 특히 여성에게 자신의 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디어를 통해 주입된 획일적인 기준을 선망하게 했고, 성인은 물론 성장기 아이들에게도 섭식 장애와 비교 심리, 강박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랜 시간 이어진 외모 지상주의로 다양한 사회문제가 잇따르자 다행스럽게도 패션 및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적으로 반성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등장한다. 정해진 기준에 맞춰 인위적으로 꾸며진 몸이 아닌, 편하고 자연스러운 몸을 받아들이는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미디어 속 모델들은 사이즈는 물론 인종까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언더웨어가 실천하는 보디 포지티브
보디 포지티브를 통해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것은 단연 여성 언더웨어다. 어김없이 강조되던 ‘볼륨’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오직 몸의 편안함에 집중한 언더웨어를 다양한 사이즈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오랜 시간 동안 극단적인 풍만함과 마름을 전시하며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겼던 란제리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 또한 보정용이 아닌 자연스러운 보디라인을 보여주는 편안한 언더웨어를 선보이며 보디 포지티브 흐름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셀러브리티 킴 카다시안이 론칭한 브랜드 스킴스(SKIMS)는 보디 포지티브를 기반으로 탄생한 언더웨어 브랜드다. 스킴스를 ‘모두를 수용한다’는 뜻의 인클루시브(Inclusive) 그 자체라고 설명하는 킴 카다시안은 무려 10가지가 넘는 컬러와 XXS~5XL의 사이즈 선택이 가능한 언더웨어를 선보임으로써 모든 여성의 몸에 솔루션을 제시한다.
이런 변화가 결코 틀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많은 여성이 환영하고 있다는 증거는 매출로 확인할 수 있다. 란제리를 입은 섹시한 여자 모델이 런웨이를 거닐던 엔젤쇼를 폐지한 후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기용하고, 다양한 라인을 확대 론칭한 빅토리아 시크릿의 매출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킴스 또한 지난해 약 6,000억원이던 순매출이 올해는 약 9,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여성 언더웨어의 혁명이라고까지 평가받으며 수영복과 파자마 라인을 확장하고, 최근 맨 컬렉션을 공개한 스킴스의 성공을 상장 기업이라는 자격을 획득함으로써 증명해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내 몸 사랑하기
미국에서 시작된 보디 포지티브 운동은 우리나라의 언더웨어 산업도 뒤바꿔놓았다. 정형화된 사이즈에 내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닌, 언더웨어라는 순기능과 함께 편안함에 집중한 여성 언더웨어 전문 브랜드가 속속 얼굴을 내밀도록 화력을 올려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여성 언더웨어는 다양한 종류로 새롭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심리스 팬티, 와이어 없는 브라 정도였던 한계를 넘어 답답함 없이 가볍고 시원하며, 내 몸에 맞춘 듯 편안한 착용감을 내세운 브라와 팬티가 기능·디자인별로 놀랍도록 세분화돼 언더웨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오로지 여성의 몸을 생각해주는 편안하고 새로운 언더웨어의 등장은 과거 보디라인을 인위적으로 압박함으로써 날씬하게 보이도록 연출해주는 보정 언더웨어나 언더웨어의 순기능은 전혀 갖추지 않은 채 섹시하게 보이는 것만을 목적으로 만든 실크 소재의 란제리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성 언더웨어의 키워드는 ‘편안함’으로 점철됐고,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서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건강한 사회를 구축해줄 보디 포지티브
보디 포지티브는 자신의 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포괄하는 복합적 개념이다. 주어진 내 몸에 감사하고 인정하며 사랑함과 동시에 아름다움에 대한 폭넓은 개념과 관점을 인지하는 것, 건강한 신체를 돌보기 위해 투자하는 것, 내면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해 내적 긍정성을 높이는 것, 신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정보를 거르고 긍정적 이미지에 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등을 통해 우리의 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내 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함으로써 보다 건강한 삶, 그리고 더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구축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보디 포지티브 실천하기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연구한(Tylka, 2012, 2018; Tylka & Wood-Barcalow, 2015) 보디 포지티브 마인드를 도와주는 6가지 지침을 소개합니다.
1 신체 감사(Body Appreciation)
신체적 기능의 온전함과 건강한 몸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 이미지적 특이 사항까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2 신체 인정과 사랑(Body acceptance & Love)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신체 이미지와 실제 자신의 신체가 부조화를 이루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3 아름다움에 대한 폭넓은 개념화(Conceptualizing Beauty Broadly; Perceived Beauty)
아름다움은 정형화돼 있지 않습니다. 다양한 관점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고 인지해보세요.
4 신체 돌봄을 위한 투자(Adaptive Investment in Body Care)
건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과 수분 섭취 등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을 잊지 말고 꼭 챙기세요.
5 내적 긍정성(Inner Positivity)
내적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 배려심이 깊고 친절하며 마음가짐이 바르다는 것을 외모와 행동으로 표현하세요.
6 부정적 정보에 대해 보호 장막을 갖는 것(Protective filtering of Information)
부정적 보디 이미지와 관련된 정보는 멀리하고, 긍정적 보디 이미지와 관련된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