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에서 사 모으던 인테리어 소품,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 없다. 국내 편집숍에서 전 세계 다양한 인테리어 아이템을 구경할 수 있고,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아이템을 직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 레퍼런스 이미지를 서치할 수 있는 각종 사이트,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서적과 글로벌 인플루언서들의 SNS까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체 왜 공간 스타일링은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아무리 책을 들여다봐도, 셀렙의 집을 랜선 집들이로 엿봐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면 조희선 디자이너가 알려주는 기본 법칙에 집중해보자. 조희선 디자이너는 코미디언 박나래·김태균과 배우 유준상·홍은희 부부, 김명민, 소이현, 하도권 등 스타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로, MBC 예능 <구해줘! 홈즈>의 전문가 패널로도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채널A 예능 <하트시그널 시즌4>의 공간 디자인을 맡아 로맨틱한 공간을 선보였다.
4년 만의 새 책입니다. 인테리어 케이스를 보여주는 책이 아닌 인테리어 바이블을 다룬 책을 출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테리어 스타일링 바이블>은 제 여섯 번째 책이에요. 이전에 낸 책들은 건축에 가까운 실내건축을 다룬 것이었고, 4년 전에 출간했던 <더 퍼스트 인테리어 쇼핑>은 쇼핑 가이드이기도 하지만 건축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책이었죠. 첫 책을 낸 후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그럼에도 읽어보면 내용은 지금과 큰 변화가 없어요.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올드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사진 때문이죠. 올해로 강의를 시작한 지 10년이 됐는데요, 학생들을 가르치며 논문처럼 딱딱하지 않으면서 내용을 잘 정리한 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처음 스타일링을 접하는 학생들에게 기본이 되는 책을 남기고 싶었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흑백과 일러스트였어요.
인테리어 관련 서적인데 흑백이라니, 신선하네요.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직관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 방법이 흑백 일러스트였죠. 책을 보면 일러스트로 화분, 식물, 의자, 조명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셰이프를 잡고, 컬러는 배제했어요. 이 책은 트렌드가 아닌 기본을 말하는 책이거든요. 산수를 배울 때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부터 배우는 것처럼 스타일링을 할 때도 기본적인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책 제목을 <인테리어 스타일링 바이블>로 정한 것도 절판되지 않고 오래 남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직관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을 만들었어요.”
2014년부터 신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죠?
네, 올해로 10년이 됐어요. 현역에서 일하면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어 힘든 점도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좀 더 살아 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 뿌듯해요. 책을 만들면서도 학생들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기본적인 내용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죠.
30년 정도 일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10년 전만 해도 해외 출장을 갈 때 빈 캐리어로 갔어요.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구해오려고 애를 썼죠. 지금은 가격 차이가 50% 이상 나지 않는 이상 무겁게 이고 지고 올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어요. 직구를 할 수도 있고, 편집숍에서 구입할 수도 있죠. 힘들게 패킹을 하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이동할 필요가 없어요. 좋은 쇼핑을 위한 가이드는 지금도 이미 많죠. 하지만 무엇을 쇼핑할지, 어떻게 쇼핑할지를 넘어 쇼핑을 한 후 나에게 맞는 케이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해요. 스마트하게 쇼핑한 후 내가 만들어내는 작업이요. 재료는 많아졌는데 요리를 다 똑같이 하지 않고, 나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거죠. 인스타그램에서 예뻐 보여 산 아이템을 우리 집에 들인다고 그 감성이 그대로 살진 않잖아요.
응용할 수 있는 기본 법칙이 중요하겠네요.
그렇죠. 우리가 인테리어를 컬러로 보고, 화보로 접하니까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잖아요. 모두의 집 컨디션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제품과 예산이 다르니까요. 기존의 인테리어 관련 서적을 보면 예쁘지만 ‘우리 집도 이렇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유럽이나 미주 지역은 인구가 많고, 인테리어 스타일링 관련 시장도 굉장히 커요. 하지만 한국 시장은 전문가의 스타일링을 받는 서비스가 보편화돼 있지 않죠. 스스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외국 서적을 참고하다 보면 한국 정서와 잘 안 맞는 상황도 생기죠. SNS나 유튜브 덕분에 좋은 점도 많지만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아졌어요. 한국과 해외의 실정, 비전문가들의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주는 괴리를 분명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 출간 후 반응은 어떤가요?
우선 흑백인 것에 다들 놀라워했어요.(웃음) 정보를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닌 오디오로 듣는 것에 익숙한 요즘,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 유무와 상관없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라는 평가를 듣고 기분이 좋았어요. 출간 전에 와디즈를 통해 먼저 크라우드펀딩을 했는데요, 구매한 이들을 대상으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오프라인 행사도 가졌어요. 그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30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늘 만나왔던 카테고리의 사람들이 전혀 아니었죠. 연령대도 굉장히 어렸고, 인테리어 전문가도 아니었어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죠.
다양한 컬러를 조화롭게 참 잘 사용하는 것 같아요.
컬러 조합이 쉽지 않아요. 대부분의 집이 블랙&화이트 톤으로 돼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자신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답습하니까 컬러가 어려운 거라 생각해요. 기본을 알면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거든요. 단순히 여기저기서 본 아이템들을 사고, 가진 것을 버려서 똑같이 연출하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잘 만들어내는 게 중요해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쇼핑은 잘해요. 쇼핑한 아이템을 우리 집에 맞게 응용하는 것을 어려워하죠.
MBC 예능 <구해줘! 홈즈>의 전문가 패널과 채널A 예능 <하트시그널 시즌4>의 공간 디자인 총괄 디렉터로 활약했어요.
<구해줘! 홈즈>는 어떻게 집을 꾸미는지가 아니라 전문가로서 집을 설명해줬어요. <하트시그널 시즌4>는 8명의 남녀가 함께 살면서 사랑에 빠지는 공간을 스타일링했고요. 공간을 통째로 빌려 단순히 예쁘기만 한 집이 아니라 진짜 한 달 동안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죠. 8명의 컬러가 나올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를 살리면서 공간 안에서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스타일링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빈집에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게끔 공간을 채우다 보니 빨랫비누, 수세미 하나도 고심해 골랐어요. 앵글 안에서 어떻게 보일지까지 세심하게 고민했어요. 방송을 본 사람들이 시그널 하우스를 통해 인테리어를 배우고, 예쁜 집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는 말을 해줘서 기뻤죠. 마지막 날 화보 촬영을 위해 만난 8명의 출연자도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한 달 동안 시그널 하우스에 살면서 너무 행복했다면서요.
그동안 많은 셀렙과 작업했는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요?
박나래 씨와 한 작업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저도 컬러 스타일링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마감재에는 컬러를 많이 쓰지 않거든요. 그런데 나래 씨 집은 마감재에 컬러를 엄청 많이 썼어요. 나래 씨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 블랙&화이트래요.(웃음) 내부 계단의 블랙&화이트는 제가 엄청 설득했어요. 컬러가 워낙 많아서 중심을 잡아줄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고 했죠. 대신 심심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스트라이프와 체스보드 패턴을 넣어 지금의 계단을 완성했어요. 그런데 2023년 가을쯤 노홍철 씨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나래 씨 집에서 촬영을 했는데 인테리어가 너무 마음에 들었나 봐요. 홍철 씨한테 저는 모던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래 씨 집을 보고 놀란 거죠. 그 뒤로 강남 신사동에 있는 홍철 씨 갤러리 공간을 작업하게 됐어요. 정말 누가 봐도 노홍철스러운 공간이 완성됐죠.
2023년 가을에는 꽤 오래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죠.
출장이 아니라 순수하게 여행을 간 건 처음이었어요. 항상 일과 연계해 갔었는데 이번엔 정말 제대로 충전하고 왔죠. 문 열 때 들어간 미술관에서 문 닫을 때까지 있어본 적도 처음이었죠. 한곳에서 정말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다른 사람들처럼 데생도 해보면서 충만한 시간을 보냈어요. 번아웃이 오기 전 다시 한번 리셋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픽하는 아이템으로 구성을 해보려고요. 조희선이 골라주는 아이템, <써니템>으로 유튜브 채널 이름을 정했어요.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해볼 만큼 해보고 사볼 만큼 사본 선희 언니가 골라주는 아이템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저는 방송이나 다양한 루트로 얼굴이 알려진 편이라 구독자들이 좀 더 편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꾸준히 업로드할 테니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인테리어 스타일링 바이블>
지은이 조희선│출판사 몽스북
인테리어 초보자는 물론 전공자까지 두루 활용할 수 있는 홈 스타일링의 기본과 원칙을 담았다. 리빙 영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소통하는 디자이너 조희선이 20년 넘는 시간 동안 쌓은 현장 경험을 토대로 터득한 인테리어의 기본 법칙이자 시크릿 스타일링 레시피를 공개했다. 모델하우스 같은 공간 이미지가 아닌 스타일링 팁을 제공하는 직관적 일러스트로 현실감을 살린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