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소희는 에너지가 좋은 사람이었다. 씩씩한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고, 조각 같은 얼굴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거침없는 모습과 감성적 모습이 교차하며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대세 중의 대세 한소희가 새로운 작품을 들고 컴백했다. 넷플릭스 화제작 <경성크리처>다.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이야기다. 극 중 한소희는 죽은 사람도 찾아낸다는 소문난 토두꾼 ‘윤채옥’으로 분해 배우 박서준(장태상 역)과 호흡을 맞췄다.
알려진 바와 같이 한소희는 눈에 띄는 외모와 다채로운 표현력으로 2017 K-모델 어워즈 CF 부문 올해의 모델상을 수상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연기자로 데뷔해 드라마 <돈꽃> <백일의 낭군님> <어비스> 등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촘촘히 채워나갔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강렬한 매력을 지녔지만 마음 한구석에 열등감을 가진 ‘여다경’으로 분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세밀하게 표현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높은 몰입도로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TV쇼(비영어) 3위를 기록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에서 첫 액션 연기에 도전한 한소희는 고난도 액션은 물론 섬세하면서도 폭발적인 감정 연기까지 소화하며 다재다능한 배우로 발돋움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의 솔로곡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글로벌 스타로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나만의 색을 가진 배우이고 싶다.
조금 건방지게 말하자면 ‘대체 불가’의 사람이 되고 싶다.
연기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말이다
평범한 여대생 역할 해보고 싶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난 소감부터 듣고 싶다.
반응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다. 전 세계에 공개되다 보니 내 인생에서 이렇게 주목받았던 건 처음인 것 같다. 떨리고 신기하다. 아직 현실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한일 역사를 다루는 작품이다. 일본에서의 인지도를 고려해 배역을 고사한 배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부담감은 없었나?
한일 역사는 예전부터 다뤄왔던 주제다. 그래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부부의 세계>에 출연할 때 같은 시간대에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방송됐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데도 재미있더라. 그 정동윤 감독님이 <경성크리처>를 연출한다고 해서 참여한 이유가 크다. 게다가 평소에 좋아했던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의 강은영 작가가 집필한다니 더더욱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관계의 힘 때문인지 애초에 한류나 역사, 시대극에 대한 부담감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정동윤 감독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궁금하다.
예쁜 그림을 보면 좋다고 같이 느끼는 경우는 많지만 어색한 포인트를 함께 느끼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정동윤 감독과 본능적으로 느끼는 포인트가 비슷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모든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모습이 많이 보여 작품 자체에 애정을 가질 수 있게 해주셨다.
최근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SNS에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게 왜 논란이 되지?’ 싶었다. 쉬는 날 짬을 내서 경기도에 있는 안성목장을 다녀오는 길에 안중근 의사의 그림이 있기에 찍어뒀었다. 이후 <경성크리처>와 관련된 사진을 올리며 주인공의 서사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여러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 함께 올렸는데 논란이 됐더라. 당황하지는 않았다. 어떤 일에든 여러 가지 의견이 있기 마련이다. 내 글에 용기를 내어 댓글을 달아준 팬들도 있었다.
‘채옥’이라는 캐릭터로 2년을 지냈는데, 캐릭터와 닮은 점이 있을까?
내가 현장에서 ‘금쪽이’라고 많이 불렸다. 그건 좀 닮은 것 같다.(웃음) 채옥을 연기하려면 배우 스스로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동기화가 된다. 그 교집합을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채옥은 자신의 인생을 망쳐가며 엄마를 찾는 사람인데, 그런 부분은 나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하나 맞았던 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점이다. 그 하나의 교집합을 믿고 뛰어들었다. 시청자들은 나를 통해 ‘세이싱’이란 괴물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채옥이가 되지 못하면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채옥이가 되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도대체 왜 10년이나 엄마를 찾아 다녔을까?’ 그 질문을 계속 던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 때도 그랬지만 이번 액션도 심상치 않다.
<마이 네임> 때는 몸짓이 조금 이상하더라도 원 테이크 호흡에 더 의미를 두었다. 이번 캐릭터는 액션에 있어 앞뒤 계산도 잘하는, 몸을 기술적으로 사용하는 인물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날렵한 동작을 내가 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어 대역을 많이 썼다. 아무리 연습해도 전문가가 하는 액션을 따라갈 수 없더라. 액션은 대역, 대사는 내가 했는데, 이게 잘못하면 호흡이 안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카메라엔 안 잡혔지만 최대한 액션을 하고 그 호흡으로 대사를 했다.
상대역인 박서준과의 호흡은 어땠나?
채옥과 ‘장태상’ 사이에는 어느 정도 팽팽한 긴장이 흐르기 때문에 그 흐름을 깨버리면 관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박서준 선배가 현장에서 태상으로 딱 버텨줘 집중이 잘됐다. 같이 뛴 기억이 많아서 별말 없어 자연스럽게 동료애가 생겼다.
극 중 태상이 채옥에게 반하는 순간은 명확하게 보이는데, 채옥은 언제 태상에게 빠졌을까?
태상이가 툭툭 내뱉는 대사들이 있다. 한순간에 반했기보다는 스며들었던 것 같다. 채옥은 늘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하고 수습하기 바빴는데 뜻이 다른 사람이 나와 뜻을 함께해주는 모습에 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을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당기는 힘, 이끌림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시적인 대사가 많다.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나?
대사보다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보통 로맨스라고 하면 사랑의 힘으로 뭔가를 이겨내는 스토리인데, 이번 작품은 조금 달랐다.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오”, “죽지 마시오” 하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그게 오히려 더 로맨스 같았다.
제 눈이 슬퍼 보이나요?
<경성크리처>가 공개된 초반에는 호불호도 확실히 갈렸다.
그래서 파트 2를 나눈 게 좀 아쉬웠지만, 중요한 건 진심으로 촬영에 임했다는 사실이다. 시청자의 모든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게 우리 직업이다. 우리의 진심이 전해지지 못했다면 놓친 부분이 있다는 의미이고, 우리의 진심이 전해졌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호불호가 있다면 놓친 부분에 대해 연구하고 질문해야 한다. 시청자가 주는 다양한 반응을 단지 악플이라 치부하며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앞서 현장에서 금쪽이로 불렸다고 했는데, 이유가 있나?
설렁설렁 걸어 다니면서 미술 팀, 소품 팀, 액션 팀 등 모든 팀에 관여하고 오지랖을 부렸다.(웃음) 아무도 안 놀아주면 매트 깔고 누워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에 시비를 걸고 다녀서 금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덕분에 모든 팀과 다 친해졌다.
데뷔 때는 마냥 ‘예쁜 배우’였다. 이후 다양한 작품을 만나면서 영역을 넓혀갔다.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작품을 2년간 쉬지 않고 찍다 보니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한 마음이다. 지금 막 드는 생각은 평범한 역할을 하고 싶다. 부모님 두 분이 살아 계시고, 임대 아파트가 아닌 자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바람 안 피우는 평범한 남자친구가 있는 대학생 말이다.(웃음) 평범한 역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나?
“눈이 슬퍼 보인다”는 말이다. 많은 댓글 중에 꼭 하나씩 있더라. 배우에게는 긍정적인 의미인 것 같다.
한소희가 든 가방은 순식간에 품절되고, 심지어 손에 든 책도 화제가 된다. 큰 관심과 인기가 두렵지 않나?
무섭지는 않다. 그보다는 좀 더 좋은 책을 읽고, 보다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가방을 들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옷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평소에 입는 옷들은 비싸지 않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 좋아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다. 팬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가방을 들면 서로 신나지 않을까?
줄곧 달려왔는데, 슬럼프가 온 적은 없나?
개인적으로는 우는 연기를 할 때 힘이 든다. 아직은 연기를 테크닉으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 끄집어내 울어야 한다. 내 감정을 건드려 울다 보니 우는 장면이 많은 작품을 할 때는 몸이 힘들다. 그러다 보니 몸이 위험을 감지하고 눈물이 잘 나오지 않더라. 슬픈 상황인데도 ‘이게 왜 슬프지?’ 하며 눈물이 안 나온다. 그럴 때 연기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소희는 어떤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하는지도 궁금하다.
따로 하지 않는다. 사실 액션 스쿨에 다니다 보면 운동을 안 해도 된다. 액션 스쿨이 남한산성 근처에 있는데, 일단 액션 스쿨에 가면 산부터 탄다. 워밍업이다. 그리고 내려와서 체대식 훈련을 받는다. 그걸 하고 나서 다른 운동을 간다고? 죽는다.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살이 쭉쭉 빠진다. 증량할 수가 없다.
배우 한소희의 목표는 뭔가?
나만의 색을 가진 배우이고 싶다. 조금 건방지게 말하자면 ‘대체 불가’의 사람이 되고 싶다. 연기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