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안이가 탁구채를 사달라고 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친구들하고 탁구를 치는데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집 주변의 탁구장을 검색해 출동했다. 학교에서 갈고닦은 주안이의 탁구 실력도 궁금했다. 아내는 심판을 봐주겠다며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탁구를 쳤던지라 처음에는 좀 헤맸지만 이내 왕년의 감각을 되찾아 주안이와 주고니받거니 어렵지 않게 맞춰나갔다. 주안이는 허리를 숙이고 집중했다가 잘 안 되면 짜증도 부렸지만 시원하게 드라이브도 하며 무척 즐거워했다. 학교에서 잠깐씩 쳤던 탁구를 1시간 동안 집중해서 쳐서일까, 주안이는 “좀 힘들지만 엄청 신나고 재미있다”며 다음에 또 오자고 했다. 연습해보고 싶은 동작과 기술도 있는데 나와 시합만 하느라 연습하지 못해 아쉽다는 것이다.
주안이는 축구 선수 손흥민을 무척 좋아한다. 손흥민 선수가 좋아서 축구가 좋은 건지, 축구가 좋아서 손흥민 선수를 좋아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둘 다 엄청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플레이스테이션 축구 게임을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나는 게임을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주안이와 할 때면 늘 이기곤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는 “아들한테 좀 져주면 안 되겠냐”고 타박을 주기도 한다. 모르는 말씀. 주안이는 일부러 져주면 오히려 더 싫어한다.
게임을 할 때 주안이가 선택하는 팀은 늘 손흥민 선수가 포함돼 있다. 그 팀의 기량을 나타내는 수치인 ‘별’(5개 만점)이 있는데, 주안이가 선택하는 손 선수의 팀은 별이 4.5개이다. 내가 선택하는 팀은 별이 5개인 강팀이다. 주안이에게 기량이 더 좋은 팀으로 바꾸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손흥민 선수의 팀을 선택한다. 내가 선택한 팀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않는다. 이것저것 기술도 사용하다가 그래도 어려우면 중간중간 투덜대며 속상해하는 주안이에게 나는“아빠는 그런 거 안 쓰고도 이기는데, 살살해 주안아~” 하며 약을 올린다. 그럴 때마다 주안이는 입술을 앙다물고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
며칠 전 주안이가 숙제를 끝내자마자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축구 게임을 신청했다. 당연히 내가 이길 줄 알고 주안이에게 슬슬 약을 올렸다.“내가 이겨주마.” “넌 나의 상대가 안 되지.” 그랬더니 주안이가 “그런 건 이기고 하는 말 아닌가?” 하며 웃는다. 결과적으로 이날 나는 모든 게임을 졌다. 희한하게도 막상 지기 시작하니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이길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하지 않는 ‘기술’을 쓰는 것 같았다. 결국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는 상황까지 생겼다. 나도 모르게 “최선을 다하는데 안 되네” 하고 혼잣말을 뱉었는데, 주안이가 쓱 미소를 지으며 “그동안 내가 봐줬지…” 한다. 생각해보면 곧 주안이가 내 키도 따라잡을 것이고, 탁구도 따라잡히게 생겼다. 하나하나 ‘역전’해내고 있는 모습이 왠지 흐뭇하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