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재계의 혼외자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그룹과 CJ그룹에서도 한 차례씩 있었던 이슈다.
사실 재계의 혼외자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그룹과 CJ그룹에서도 한 차례씩 있었던 이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일본인 여성과 낳은 혼외자 이태휘 씨와 막내딸 이혜자 씨는 이병철 회장 사후 상속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이름이 거론됐다.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상속 관련 소송을 제기했을 때, 이들이 ‘참전’할 것인지 귀추가 쏠렸었다. 하지만 주로 일본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상속 관련 갈등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CJ그룹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1964년 이맹희 명예회장과 한 여배우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 이 아무개 씨는 적극적으로 다퉜다. 이 씨는 호적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채 삼성이나 CJ와 무관한 삶을 살다가 2004년 이맹희 명예회장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냈다. 2006년 대법원은 DNA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이 씨를 친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맹희 명예회장이 숨진 뒤 갈등이 본격화됐다. 이맹희 회장의 혼외자인 이 씨가 이복형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이재현 회장 등 3남매의 재산이 3조원대에 이르는 만큼 “정당한 자신의 몫을 달라”는 게 이 씨의 주장이었다.
갈등은 더 커졌다. 2016년 3월 이 씨는 “이재현 회장이 선친의 장례식에 못 가게 막았다”며 “CJ그룹 측이 문상객을 일일이 확인하며 자신을 장례식장에 못 들어가게 막았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이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며 이재현 회장 등을 상대로 위자료 2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도 냈다.
하지만 본류에 해당하는 유류분 청구 소송에선 치열하게 다퉜다. 이 씨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로부터 물려받은 차명 주식 등 드러나지 않은 유산을 남겼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2,100억원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CJ그룹 측은 재판에서 “이재현 회장은 어머니인 손 고문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을 뿐 생전 이 명예회장으로부터 받은 재산이 단 한 푼도 없다”며 “이병철 창업주가 돌아가실 때 큰아들을 소위 패싱하고 며느리와 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법원은 CJ그룹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맹희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은 재산 등을 고려할 때 “물려받은 게 없다”는 CJ그룹 측의 설명이 더 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이 밖에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 회장의 혼외자 이 아무개 씨가 상속 소송을 제기해 법적 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또한 태광그룹 창업주 이임용 회장의 혼외자 이유진 씨가 아버지의 차명 재산 중 상속분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내 이복형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법적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이유진 씨는 친자확인소송을 거쳐 이임용 회장의 친자로 인정받은 뒤 상속회복청구소송을 내 2005년 135억여원을 뒤늦게 상속받을 수 있었다. 수년 전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내연녀와 혼외자를 고백해 재계에 큰 충격을 줬다. 최 회장은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솔직함”이라면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와 아이 엄마를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등장하는 혼외자 이슈
역대 대통령 중에도 혼외자 이슈를 피해 가지 못한 이들이 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기에 해당한다.
법원은 2017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혼외자 김 아무개 씨가 김 전 대통령이 재산을 기부한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를 상대로 “유산을 나눠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3억원을 김 씨에게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앞서 김 씨는 2011년 2월 서울가정법원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자로 인정받았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유전자 검사를 거부했지만, 서울가정법원은 김 씨가 제출한 증거들에 신빙성이 있다며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2011년 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 상도동 저택과 경남 거제도 땅 등 50억원 상당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에 혼외자 김 씨 측은 “김 전 대통령이 재산 증여 의사를 표시했을 땐 김 씨가 친자라는 게 실질적으로 결정 난 상태였다”며 “김영삼민주센터 측도 김 씨의 유류분 권리가 침해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혼외자는 2005년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당시 한 언론 매체에 따르면 1970년 당시 7대 국회의원 김대중과 여비서 사이에서 낳은 딸로 알려진 김 씨는 태어나자마자 외조부의 호적에 손녀로 올랐다가 외조부가 사망하자 외삼촌의 호적에 등재됐으며 외삼촌이 사망하며 외조모의 호적에 등재됐다고 한다. 당시는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던 상황. 따라서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하지만 재계와 정치권의 혼외자 이슈를 바라보는 시선은 변화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2010년 전후까지만 해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유권자들은 유력 정치인이나 재벌가의 혼외자 이슈를 비교적 너그럽게 바라봤다면 최근에는 혼외자 이슈는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재산상속 문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 리스크가 오래가는 게 특징”이라며 “아직도 재계나 정치계에 혼외자가 있다는 얘기는 공공연하게 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조심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