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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 전 아나운서, 범현대가와 사돈 맺는 사연

MBC 뉴스데스크 최연소·최장수 여성 앵커였던 백지연 전 MBC 아나운서가 범현대가와 사돈을 맺는다.

On May 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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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씨 아들, 1살 연상과 2년 열애 끝에 결혼

백지연 전 아나운서의 아들 강인찬 씨가 정몽원 HL그룹(옛 한라그룹) 회장의 차녀 정지수 씨와 결혼을 발표했다. 6월 2일에 결혼식을 올린다. 아들 강 씨는 1996년생으로 백 전 아나운서가 첫 남편이었던 강형구 씨와 사이에서 얻은 자식이자 백 전 아나운서의 유일한 자식이다.

이번 결혼은 백 전 아나운서에게 남다를 수밖에 없다.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승승장구했지만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으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강 씨는 삶의 이유였다. 과거 백 전 아나운서는 각종 행사장과 방송 녹화장마다 아들을 데리고 참석할 정도로 아들 사랑이 유명했다. 강 씨는 미국 유명 디자인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현재 관련 업계에 몸담고 있으며 이외의 것은 알려진 바가 없다.

백 전 아나운서의 며느리가 되는 정지수 씨는 1995년생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재 HL그룹 미국 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정몽원 회장은 부인 홍인화 여사와 사이에서 아들 없이 두 딸을 뒀는데, 장녀 정지연 씨는 1980년생이다. 정지수 씨는 언니와 13살 차이 나는 늦둥이인 셈. 예비 신랑과는 1살 차이로 연상연하 커플이다. 강인찬 씨와 정지수 씨는 2년가량 교제해오다 결혼을 결정했다고. 지난해 말 양가가 상견례를 하고 함께 청첩장을 발송하면서 결혼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6월 초 열릴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범현대가를 비롯해 재계, 언론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혼사는 정몽원 회장의 아내인 홍인화 여사도 전 TBC 아나운서였기에 한층 화제다. 백지연 전 아나운서는 홍 여사의 아나운서 후배인 셈. 홍 여사는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옛 동양방송(TBC)에서 아나운서로 일했다. 2014년부터 HL그룹 산하 배달학원(한라대학교) 이사장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2018년 사임했다. 정몽원 회장은 아내가 아나운서인데 사돈도 아나운서이고, 신랑 강인찬 씨는 어머니가 아나운서인데 장모도 아나운서라는 재미있는 인연이 만들어졌다. 만약 강인찬 씨와 정지수 씨가 자식을 낳는다면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모두 아나운서인 셈. 범현대가 사돈이 되는 백 전 아나운서가 조만간 ‘할머니’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지도 주목.

백 전 아나운서는 1964년 8월 5일 서울 출생으로 서울 인왕초, 풍문여중, 명지여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과 석사를 받았다. 학창시절 정신과 의사가 되기를 지망했으나 1987년 MBC 15기 공채 아나운서로 합격해 방송에 입문했다. 키 174cm에 대학 시절 별명이 ‘연대 브룩 실즈’였을 정도로 뛰어났던 서구적 미모는 그녀의 인생을 스타 방송인으로 이끌었다.

백 씨 외동아들, HL그룹 회장 차녀와 결혼
 사돈인 홍인화 여사도 TBC 아나운서 출신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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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 이름 앞에 붙었던 여러 타이틀, 앵커, 기자, 작가….
그중에 가장 영광스럽기도 하면서 행복한 것은 ‘엄마’라고 불릴 때이다.
‘좋은 엄마’란 정답이 없어서 어렵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고 지혜로워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돼 아쉽기만 하다.

백지연의 우여곡절 인생

백 전 아나운서는 MBC 입사 5개월 만에 최연소이자 방송사 최초의 뉴스데스크 여자 앵커로 발탁됐다. 그녀에 따르면 사내 오디션 당시 갑자기 천장에 있던 조명이 터져 다들 놀랐는데 혼자만 태연하게 아나운싱을 한 것이 발탁된 배경이 아닐까 한다고. 당시 면접관들이 “백지연 씨는 안 놀라요?”라고 묻자 “방송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놀라면 안 될 것 같습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후 중간중간 MBC 파업과 영국 유학 등으로 잠시 쉬기도 했으나 1996년까지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며 최장수 뉴스데스크 앵커가 됐다. 그녀는 아들을 출산하기 직전인 1996년 8월 뉴스데스크에서 만삭의 몸으로 하차했다. 1999년 3월에는 “자신의 생활을 살아보고 싶었다”며 MBC를 퇴사하고 프리랜스 방송인으로 전향했다.

하지만 여자로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백 전 아나운서는 1995년 영국 유학 시절 만난 옥스퍼드대학교 출신 공학박사 강형구 씨와 결혼해 아들도 출산했으나 3년 만인 1998년 이혼했다.

그녀는 이혼 후 어이없는 소문에 휘말리게 됐다. 이혼하며 위자료도 받지 않은 채 아이를 양육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불륜으로 얻은 자식이어서 이혼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 아니었다.

소문의 근원은 미국에 거주하면서 미주통일신문이라는 극우 매체를 운영했던 배부전 씨가 “전남편 측이 친자확인소송을 냈고 진짜 남편은 모 방송사 간부”라는 게시물을 국내 PC 통신망에 게시했는데, 이를 국내 언론사들이 받아쓰면서 사태가 커진 것이다. 전남편 측도 언론의 질문에는 명확한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자세를 보이면서 의혹은 더욱 확산됐다.

백 전 아나운서는 보도 언론사와 배부전 씨를 고소했고, 유전자 감식을 위해 친자확인소송도 냈다. 하지만 전남편은 유전자 감식을 수차례 거부했다. 결국 백 전 아나운서는 검찰에 강제 유전자 감식을 요구했고,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채혈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전남편과 백 전 아나운서의 친자가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 법원은 배부전 씨에게 명예훼손죄를 적용,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백 전 아나운서는 1999년 11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서울지법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언론의 확대 보도와 사회적 불신,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이 어우러져 사건이 어처구니없이 확대됐다”며 “5개월 동안 이혼한 여자로서 아무 죄 없이 겪은 고통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아들을 보며 이를 이겨냈다”고 그동안의 심경을 털어놨다. 또 “이혼한 여성, 약자라는 이유로 이렇게 매도된 현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며 “앞으로 이런 모순을 드러내고 바로잡는 데 행동을 통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이후 백 전 아나운서는 전남편을 상대로 친권상실소송을 냈고 승소했다. 당시 백 전 아나운서는 자신의 아들이 얽힌 일에 대해 협조하지 않은 전남편에게 더욱 화가 났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리고 백 전 아나운서는 2001년 재미동포 금융인 송경순 씨와 재혼했다. 송 씨는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합격 후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한 바 있다.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과정(MBA),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국제금융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부흥개발은행 부총재 자문과 일본 노무라그룹 프로젝트 금융사의 수석부사장을 맡았다. 두사람은 13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했지만 2007년 5월 결국 이혼에 합의했다. 법적절차는 2009년 완료됐는데 1년 뒤인 2010년 1월에야 세간에 이혼 사실이 알려졌다.

백 전 아나운서는 2013년 1월 MBC 예능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사랑만큼은 F학점”이라며 “이성을 보는 눈이 없는 것 같다”고 후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의 이혼을 겪는 아픔 속에서도 백 전 아나운서는 방송인으로서 한층 성숙하고 완벽한 모습을 늘 대중에게 보여줬다.

그녀는 2008년부터 사회자로 영역을 넓혀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2008년 6월~2013년 1월)과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2009년 5월~2013년 8월)를 맡았다. 2015년에는 MBC 입사 동기인 안판석 감독의 제안으로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약 올리는 재벌 사모님 역할로 출연하며 연기에 도전했다. 그 밖에도 각종 TV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스피치 아카데미를 운영했으며, <MBC뉴스, 백지연입니다> <앵커는 닻을 내리지 않는다> <나는 나를 경영한다> <물구나무> 등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백 전 아나운서는 2019년 4월 배우 이정현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그 결혼식과 그해 9월 한 안마의자 전용관 오픈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 55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질 않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어 화제였다. 그녀는 아들의 결혼 사실이 알려지기 직전 자신의 SNS에 화보 촬영 사진을 올리며 “지금까지 내 이름 앞에 붙었던 여러 타이틀, 앵커, 기자, 작가…. 그중에 가장 영광스럽기도 하면서 행복한 것은 ‘엄마’라고 불릴 때이다. ‘좋은 엄마’의 정답이 없어서 정말 어려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고 지혜로워야 하는, 지나보고 나서야만 깨달아져서 아쉽기만 한…”이라며 어머니로서의 심정을 드러냈다.

백지연 사돈 되는 HL그룹은 어떤 곳?

정주영 첫째 동생 정인영이 세운 회사
1996년 재계 12위였지만
IMF로 위기 겪기도

HL그룹은 범현대가인 한라그룹의 전신으로 현대그룹 창업주인 ‘왕회장’ 정주영의 첫째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세웠다.

정인영 명예회장은 14살 때 서울로 올라와 야간 YMCA 영어과에서 2년 동안 공부하고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야간 영어과 2학년을 중퇴하고 귀국해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다. 영어에 능통했기에 1950년 6·25 전쟁으로 가족들과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던 도중 미군 사령부 통역으로 근무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 발주 공사를 형인 정주영에게 연결하면서 현대건설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이후 1970년대 현대그룹의 중동 진출 당시 신중론을 주장해 정주영 회장과 갈등을 빚자 그룹을 떠나 독립적으로 한라그룹을 만들었다. 이후 1996년에는 자산 총액 기준 재계 12위 재벌로 그룹을 키워냈다.

정인영 명예회장은 아들 둘을 두었는데 차남인 정몽원 회장에게 1996년 말 그룹을 물려줬다. 1955년생인 정몽원 회장이 40대 초반에 그룹을 물려받았기에 당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안 돼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한라그룹은 고난을 겪었다. 다행히 범현대가의 지원 속에 재건에 나섰고, 2008년에는 그룹 모태였던 만도도 되찾았다. 지난해부터는 그룹명을 HL그룹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재계 12위였던 이전과 달리 그룹의 규모는 여전히 축소된 상황이다.
2023년 4월 25일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 HL그룹의 자산 규모는 8조 5,000억원으로 국내 재계 순위 56위다.
정몽원 회장은 아이스하키 애호가로 유명하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7년 동안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을 맡아 남녀 국가대표팀의 올림픽 동반 출전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기여를 인정받아 지난해 세계아이스하키연맹이 선정하는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등재됐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이승용(시사저널e 기자)
사진
일요신문·HL그룹 제공,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스틸컷
2023년 06월호
2023년 06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이승용(시사저널e 기자)
사진
일요신문·HL그룹 제공,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