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증권 사태? 뭔지는 자세히 몰라도 가수 임창정이 주가조작을 했다는 얘기는 들었지. 피해자라며? 60억원을 날렸다며?”
가수 임창정이 투자자로 참여했던, 하한가 종목이 속출하면서 논란이 불거진 이른바 ‘SG증권 사태’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내놓는 답변이다. 외국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는 보도되는 것보다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연예인과 의사(주로 병원장), 기업 대표 등 상위 ‘1%’의 투자가 주를 이뤘기 때문.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을 기본 투자금으로 세팅한 투자 구조였고, 암암리에 지인 소개로만 투자자를 모집한 것도 1%의 피해를 키웠다.
그렇다면 임창정 등 상위 1%의 투자자들은 본인의 주장처럼 피해자인가, 공범인가? 법조계에서는 ‘피해자로 볼 여지도 있고, 공범으로 볼 여지도 있는 사건’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어떤 사건인지, 어떻게 수사가 흘러갈 것인지 <우먼센스>가 쉽게 정리했다.
투자금 대비 최대 2.5배까지 늘어나는 ‘위험한’ 투자
이번 사건은 임창정 등 투자자가 수십억원을 맡기면, 이를 운영하는 세력이 손해를 보지 않게 운영하는 ‘위탁 투자’에서 비롯됐다. 먼저 투자한 이들의 주식을 다른 투자자가 더 비싸게 사주는 방식이었다. 투자금 대비 2.5배까지 투자 금액을 늘릴 수 있는 차액결제거래(CFD·Contract For Difference)도 활용했다.
10억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해보자. 실제로는 25억원어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다. 주가가 1만원일 때 10억원을 투자해도 실제로는 25억원어치를 매입하기 때문에 주가가 1만 5,000원이 됐을 때 50%가 아니라 125%의 수익을 볼 수 있었다. 10억원으로 5억원이 아니라 12억 5,000만원의 수익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당연히 투자자들이 줄을 섰다. 이를 설계한 세력들은 적게는 50~60%, 많으면 200~300% 수익이 났다는 것을 보여주며 원금과 수익, 추가 투자금을 더해 ‘재투자’를 유도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수익금의 절반가량이었다.
시장에 없던 신종 주가조작이었다. 설계는 그만큼 치밀했다. 주식을 거래할 상장사를 고르는 데 신중해야 했다. 실적이 양호하면서 거래가 많이 이뤄지지 않는 종목이어야 했기 때문.
그렇게 선정된 8개의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임창정 등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려들면서 2~3년에 걸쳐 꾸준히 올랐다. 주가 폭락 직전인 지난 4월 21일 기준 대성홀딩스 주가는 3년 전보다 약 1,223%, 선광은 1,106%, 삼천리는 606% 상승했다. 상승 폭이 가장 작은 삼천리 종목에 10억원을 차액결제거래를 활용해 투자했다면 수익금이 60억원이 아니라 150억원이 된다.
검찰, 핵심 인물 라덕연 체포…
“임창정도 처벌 가능성 높아”
치밀한 만큼 몰려들었던 돈, 하지만 급락하자…
2~3년에 걸쳐 매일 1~2%씩 오르는 탓에 ‘주가조작’이라는 사실도 지난해 말부터 거론되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치밀했다. 투자자들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고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투자를 대신했다. 자연스레 투자자들은 다단계 방식으로 늘어만 갔다.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이었지만 투자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세력은 당국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여러 지역·계좌로 나눠 통정거래(사전에 시간과 금액을 정한 뒤 거래하는 방식)를 했다.
계속되는 주가 상승에 투자자들은 믿고 돈을 맡겼다. 임창정뿐만 아니라 가수 박혜경, 이중명 전 아난티그룹 회장 등이 투자했다. 소개로 투자한 병원장(의사)만 300여 명에 달한다는 말도 나온다. 유명 연예인, 회장, 병원장들의 소개로 참여한 이들은 수익률이 눈으로 확인되자 빚을 내 투자금을 더 늘리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세력은 투자자들이 지인을 소개하며 신뢰를 담보하는 ‘점조직’ 방식의 영업을 적극 활용했다. 연예인이 소유한 빌딩에서 골프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라덕연 H투자컨설팅 업체 대표의 측근인 프로 골퍼 출신 안 아무개 씨는 연예인들에게 은밀한 ‘투자 영업’을 하는 창구를 맡았다. 방송인 노홍철 등 적지 않은 이들이 투자 제안을 받았다.
투자를 결정한 이들은 자신 명의의 휴대전화, 계좌까지 맡길 정도로 작전 세력을 믿었다. 작전 세력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라덕연 대표에게 돈을 댄 투자자만 1,000여 명, 투자 금액은 8,000억에서 최대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거래가 많지 않았던 종목이 ‘급락’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여러 ‘썰’이 분분하지만 주가조작 세력 중 일부가 언론 보도 가능성, 당국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면서 주가 폭락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가장 지배적이다. 투자자들끼리만 서로 사고파는 거래로 주가를 올렸던 탓에 하락하는 주식을 방어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투자자들은 빚더미에 앉게 됐다. 최대 2.5배의 차액결제거래 방식을 활용한 것은 ‘최고의 수익률’을 ‘최악의 빚더미’에 앉혀놨다.
그러자 라덕연 대표 등 세력을 ‘신’이라며 찬양하듯 말했던 임창정 등 투자자들은 ‘속았다’면서 라덕연 대표를 비판하고 나섰다. 투자자 중 일부는 “차액결제거래를 하는 줄 몰랐다”면서 라덕연 대표 등을 사기로 고소하며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검찰도 수사에 나섰다. 5월 9일, 라덕연 대표를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라 대표의 재산을 동결하는 등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라 대표와 함께 투자자들을 모으고 다녔던 세력 일당들도 구속하는 등,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법조계는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만큼 ‘어디까지, 누구까지’ 처벌을 받게 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피해자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임창정처럼 세력들에게 투자자를 소개하는 ‘홍보 및 영업’을 한 이들은 공모 관계로 처벌받게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TBC 뉴스룸> 보도 등에서 임창정은 청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라덕연 대표에 대해 “(나는) 근데 또 저 XX한테 돈을 맡겨. 아주 종교야”라고 칭송하듯 말했다. 이 자리는 역시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골프 회사가 2022년 12월 개최한 투자자 모임. 이 모임에서 연단에 선 임창정은 이어 “너(라덕연 대표) 잘하고 있어. 왜냐하면 내 돈을 가져간 저 XX 대단한 거야. 맞아요, 안 맞아요?”라고 말했다. 이에 청중 사이에서는 “할렐루야, 믿습니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임창정이 라덕연 대표가 주도했던 주가조작에 단순 참여를 넘어 함께 사업을 하려 했던 의혹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덕연 대표와 함께 투자해 세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법인등기부에 임창정 아내 서하얀 씨와 주가조작단 관계자들이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기도 했다. 임창정 측은 “일부 오해될 만한 발언을 한 건 사실이지만 투자를 부추기진 않았다”며 “주가조작 일당에게 30억원을 투자했다가 (원금은 다 잃고) 빚 60억원만 생겼다. (오보이기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반응은 임창정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원래 ‘주가조작 큰손’들과 가까운 관계였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CB(전환사채) 투자 큰손 중 한 명은 “임창정이 주가조작 세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라며 “이번 논란이 불거지기 몇 년 전에도 S사 등 몇몇 상장사 주가조작 시도에 임창정이 참가할 수도 있다는 풍문이 돌았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주식거래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본인 명의의 계좌와 휴대전화를 타인에게 맡긴다는 게 말이 되냐. 임창정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칭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임창정 등 주가조작 세력들과 ‘공모’ 관계로 볼 여지가 있는 이들도 처벌받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관련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결국 냉정히 보면 임창정은 주가조작 세력들의 사업 구조를 보고 투자한 ‘쩐주’이자 이를 홍보해준 공범”이라며 “검찰에서 임창정을 피해자로 볼 사유보다 공범으로 볼 사유가 더 많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검찰은 투자자들도 ‘구분’해 판단하겠다는 기조다. 본인 명의 계좌와 휴대전화를 맡긴 것 자체가 이미 불법이고, 더 나아가 통정매매 구조를 알고 있었다면 처벌해야 하는 게 맞다는 분위기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불법을 저지른 지점에 있어서는 피의자로 봐야 하지 않겠냐”며 임창정 등 투자자들 중 일부도 처벌받게 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병원장들 ‘줄 서서’ 투자? 시그니엘 앞세워 투자 유치
연예인보다 더 많은 투자자 직종은 의료계였다. 라덕연 대표는 서울 송파구 시그니엘에 비밀 사무실을 차리고 ‘영업’에 나섰다. 월세 2,500만원, 보증금이 수억원에 달하지만 시그니엘이 가진 상징성이 홍보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매달 수천 명이 다녀가는 유명 병원장을 상대로 영업했고, 자연스레 의사 투자자가 늘어났다. 1,000여 명의 투자자 중 의사가 300여 명은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태로 의사들은 적으면 10억원, 많으면 10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일부 피부과·재활의학과 원장들은 주변 의사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앞선 변호사는 “주가조작 세력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자는 ‘개인 사업’을 하면서 수억원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 이들인데, 의사들이 이에 해당한다”며 “수익료를 골프 연습장 회원비 등으로 처리해 세금 혜택을 준다고 했다던데, 이 경우 회계적으로도 도움이 되기에 혹하지 않았겠냐”고 풀이했다.
검찰 수사는 어떻게 흘러갈까?
라덕연 H투자컨설팅 대표와 스크린골프 연습장의 안 아무개 대표 등 세력의 핵심 인사들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사기·업무상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황.
구속 전 라 대표는 KBS 등 주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임창정 포함) 위탁매매를 한 것은 맞다”면서도 “통정매매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다우데이타 주식 140만 주를 처분하면서 주가가 폭락했는데 이게 시장 교란 행위”라고 주장했다. 본인 명의 계좌·휴대전화를 건네받아 한 위탁매매는 불법이 맞지만 그 외에는 정상적인 투자였고, 주가가 급락하면서 피해를 보게 됐다는 해명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라 대표의 해명을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고 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투자를 일임한 투자자들의 소환조사도 시작됐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금융위원회 합동수사팀은 최근 라 대표에게 자신 명의의 휴대전화와 계좌 등을 넘기고 고액 투자를 일임한 의사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라 대표에게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투자금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라덕연 대표가 위탁매매 불법 여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인정했기에 법조계에서는 △통정매매 여부 △임창정 등 투자자들의 사전 공모 여부와 정도 △주가 급락 전후로 라 대표 및 김 회장 등 투자자들 비공개 정보 확보 여부 등 자본시장법 위반을 중심으로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조작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수백만원도 아니고, 수억에서 수십억원을 투자하면서 구조를 알지 못하고 그냥 투자하는 이가 상식적이지는 않기에 검찰도 이를 확인해야 한다”며 “라 대표는 물론 투자자 모두가 처벌받을 여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공모 관계가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