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의서 <동의보감>에 여자는 나이 들수록 음이 부족해진다고 했던가? 마흔 중반을 넘어가니 그 말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건조했다. 얼굴 피부부터 몸, 그리고 심지어 그곳까지. 자연스레 만족도가 떨어지고 관계에 시큰둥해졌다. 그냥 나이 먹으면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한 친구가 섹스 토이를 선물 받았는데 요즘 것은 기능이 너무 좋더라고 말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주제로 친구들이 한참 동안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는 것.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섹스 토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걸 사용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구나. 문득 평생 한 번도 섹스 토이를 시도할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단조롭고 메마른 내 섹스 라이프가 조금 가여워졌다.
첫 만남은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 섹스 토이 하나를 선물 받았다. 섹스 토이라는 신세계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본 친구의 배려였다. 립스틱 모양의 작은 사이즈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제품인데 삽입형이 아니라 초보자가 쓰기 좋을 거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우선 설명서부터 꼼꼼히 읽었다. 내 몸 가장 예민한 부분에 닿는 건데 제대로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클리토리스가 뭔지도 정확하게 몰랐다. 설명서는 나 같은 왕초보 사용자의 주저하는 마음까지 고려한 듯 상세하고 친절했다. 사용법뿐만 아니라 여자의 클리토리스와 성감대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설명, 심지어 한 번도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관찰한 적 없었을 사람들을 위해 휴대전화에 영상 기록을 남기지 않고 촬영해 살펴보는 방법, 파트너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활용 팁까지. 갑자기 훅 믿음이 가며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메마른 나의 섹스 라이프를 다시 활활 불태울 방법이 돼줄지도 모르잖아?
*클리토리스란 여성 성기의 외부에 있는 부위로 5~15mm밖에 안 되는 작은 부위에 8,000개 이상의 말단 신경이 집중돼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여성의 쾌감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고도 한다.
섹스 토이와도 ‘척’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별로였다. 실리콘 재질의 립스틱 같은 모양 속에 작은 돌기 같은 것이 진동에 따라 회전하며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방식. 그런데 아무리 진동 세기를 올려도 별 느낌이 없었다. 함께 들어 있던 젤도 충분히 발랐건만 아픈 느낌까지 들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남들은 다 좋다는데, 나는 어쩌면 성불감증인가? 혹시 처음부터 단계를 너무 훌쩍 넘은 건가 싶어 넷플릭스에서 야한 영화를 찾아 틀고, 먼저 손으로 살살 애무했다. 살짝 흥분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 다시 섹스 토이를 대봤다. 오 마이 갓! 이제야 슬슬 느껴지기 시작한다. 인간이 아닌 섹스 토이와의 관계에서도 예열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난생처음 섹스 토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주는 흥분감 때문일까. 간지러운 듯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한참을 신음을 내뱉다가 문득 허탈해졌다. 이걸로 정말 오르가슴이 가능하긴 한 걸까? 좋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닌데? 남편과의 관계 때처럼 별 감흥이 없으면서도 엄청 흥분한 ‘척’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버릇처럼 섹스 토이에도 거짓 리액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찰과 연습이 필수
한참 동안 손이 가지 않아 며칠을 방치했다. 그래도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번엔 검색을 좀 해봤다. 대부분 이렇게 조언하고 있었다. 자기 몸을 잘 아는 게 중요하다고. 사람마다 성감대도 다르고 그 모양도 다 다르니 자신에게 가장 만족을 주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섹스 토이를 다시 꺼냈다. 이번엔 좀 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가벼운 사전 애무도 충분히 하고 몸이 좀 뜨거워졌다 싶을 때 클리토리스 근처 부위에 미세하게 조금씩 위치를 조정해가며 섹스 토이를 사용해봤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끈기 있게 이곳저곳 시도해보던 중 딱 자지러지듯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드디어 나만의 ‘그곳’를 찾아낸 것이다. 이제 일사천리였다. 진동의 세기를 조절해가며 변화를 줘봤고 리듬감을 더했다. 느낌이 오는 딱 그 부분만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자극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효율적일 수 없었다. 친구들이 남편보다 섹스 토이가 더 좋다고 말했던 이유가 이제야 이해됐다. 이후 몇 번을 더 사용해보니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부분과 진동의 강도를 확실히 알게 됐다. 마흔을 훌쩍 넘어서야 내 몸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것이다.
더 강력한 게 필요해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흥분과 만족도의 곡선은 그렇게 정점을 찍은 후 점차 하향하기 시작했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섹스 토이보다 더 강력한 것을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사만다와 그 친구들이 애용했던 커다란 딜도가 떠올랐다. 볼 때마다 궁금했는데, 이제 그런 삽입형 제품도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민감한 부분에 직접 넣는 제품이니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았다. 남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딜도부터 곡선형의 실리콘 재질 진동형 제품까지 가격도 종류도 다양했다. 한참을 검색한 끝에 여성용 섹스 토이로 유명하다는 브랜드를 발견했고, 그중 적당한 스펙의 제품을 찾아내 주문했다. 꽤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래도 안전하고 검증된 제품으로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주문을 마치고 난 후 문득 예상치도 못한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혹시 택배 상자에 제품명이나 브랜드가 찍혀 오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웃이나 택배 배달원이 보면 어쩌지? 결론은 기우였다. 택배 박스는 물론 송장에도 제품명이나 브랜드가 노출되지 않아 나조차 어떤 제품이 온 것인지 깜빡했을 정도니까. 요즘 섹스 토이 브랜드들, 택배 배송까지 은근히 참 섬세하구나.
오르가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
이번 건 좀 크다. 삽입용 부분과 클리토리스 자극 부분이 일체형으로 이뤄진 제품으로 역시 실리콘 재질. 삽입용 부분은 손으로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쉽게 휘어질 만큼 유연했다. 원래 사용했던 제품과는 한참 다른 스케일에 제품을 한동안 들여다보기만 했다. 호기롭게 주문하던 때와 달리 시도해보기가 쉽지 않았다. 내 몸에 저걸 넣어도 정말 괜찮을까?
맨정신에 도전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 술 한잔 마신 날을 노렸다. 미리 한 번 깨끗하게 씻어둔 삽입형 바이브레이터를 꺼내 들고 침대에 누웠다. 설명서에서 안내해준 방법대로 삽입 전 제품의 끝부분으로 성기 부분을 넓게 문지르며 몸을 조금씩 예열시켰다. 젤도 충분히 발랐다. 그렇게 5~10분 정도 공을 들인 후 서서히 삽입을 시도해봤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내 어리숙한 손길에 오히려 몸이 굳은 듯 바이브레이터를 집어넣으려 힘을 줄 때마다 아픔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몸이 충분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아 삽입을 멈추고 다시 바이브레이터로 성기 근처를 애무했다. 그리고 다시 삽입 시도.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한 끝에 어느 순간 속으로 쑥 완전히 밀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제 진동을 켜볼 차례. 처음엔 클리토리스 부분의 진동만 켜고, 시간 차이를 두고 삽입형 부분의 진동까지 켰다. 몸속에서 생소한 물질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통에 몸이 달달 떨려오기 시작했다. 자극은 생각보다 강렬했고, 바이브레이터가 진동할 때마다 내 질 속을 다양하게 훑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가 지나자 어느 순간 미친 듯 흥분이 차올랐다. 성감대를 제대로 딱 찌른 것일까. 질이 미친 듯이 수축했고 진동이 계속되자 어느 순간 강렬한 감정이 몰려왔다. 오르가슴에 닿은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쉽고 간편하게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다니.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응용력까지 생겼다
신기해서 한동안 시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시도했다. 두 제품을 함께 사용하는 응용력도 생겼다. 먼저 클리토리스 전용 제품으로 클리토리스부터 자극해 몸의 흥분을 끌어올린 다음, 삽입형 바이브레이터를 순차적으로 사용하는 것. 손으로 애무하는 시간이 짧아도 단시간에 흥분에 도달할 수 있는 내 나름의 경제적인 방법이었다. 삽입형 바이브레이터는 이리저리 활용하는 재미가 더 쏠쏠했다. 좌우로 또는 위아래로 삽입하는 방향을 달리해볼 때마다 내 몸은 어디가 좋은지, 어디가 별로인지 솔직하게 반응했다. 신기했다. 내가 이렇게 감각에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섹스가 아직 즐거울 수도 있구나. 인생에 뭔가 새로운 활력을 더한 기분이었다.
물론 나이가 들며 사그라들었던 성욕이 섹스 토이 하나로 완전히 되돌아올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섹스 토이를 통해 내 몸을 관찰하고 연구해가며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고, 이런 시도들이 나뿐 아니라 부부 관계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 뿐. 마흔 한참 넘어 처음 만난 이 장난감이 나에게는 꽤 괜찮더라는 얘기다. 나처럼 이상한 편견 때문에 평생 시도해볼 생각조차 안 해본 사람들에게 널리 추천해주고 싶을 만큼.
내가 시도해본 섹스 토이 2가지
로마 글로스 이지핏
클리토리스 전용 바이브레이터로 립스틱 모양의 콤팩트한 디자인이다. 욕실에 두어도 사람들이 섹스 토이라고 상상하지 못할 만큼 팬시하다. 총 10단계로 진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여성의 몸, 자위 그리고 오르가슴까지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만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제품 가이드북이 압권이다. 9만3천원대.
우머나이저 듀오
독일 브랜드 우머나이저 제품으로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돼 있으며, 클리토리스 흡입과 질 삽입이 한 번에 가능하다. 총 12단계로 진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10가지 바이브레이션 패턴을 경험할 수 있다. 방수 재질로 쉽게 물 세척이 가능하다. 35만8천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