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주안이의 마음을 예상하는 게 힘들어졌다. 당연히 할 줄 알았던 일을 싫다고 하거나 좋아할 줄 알았던 것을 거부한다. 물론 좋아하지 않거나 안 할 줄 알았던 일을 아무렇지 않은 듯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번 일도 그렇다. 아내와 함께 주안이의 겨울방학 캠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끼리 가는 캠프가 있는데 보낼지 한참을 고민하며 대화 중이었다. 사실 주안이가 9~10살 때부터 캠프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코로나19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던 터였다. 그런데 올해부터 캠프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주변 학부모들로부터 같이 보내자는 이야기도 있었던 터다. 그동안 미뤄왔던 주안이 성장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아내와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계획을 아무리 잘 세우면 뭐해? 당사자인 주안이가 싫다고 하면 소용없는데…” 하면서 먼저 주안이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주안이가 선뜻 가겠다고 할 것 같지 않았다. 친구들이 얼마나 가는지도 모를뿐더러 아는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캠프 경험이 처음이라 열정적으로 나설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 식사를 하면서 주안이가 기분이 좋을 때 자연스럽게 캠프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엄마 아빠 없이 친구들끼리 가는 1박 2일 캠프가 있는데 갈래?” 주안이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끝나서 황당하기까지 했다.
캠프 가기 전날 밤이었다. 간혹 주안이가 친척 집에서 자고 오기도 했는데, 그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괜히 주안이에게 안아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내는 옆에서 이런저런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기고 있었다. 캠프 측에서 적어준 준비물 목록에 수건이 적혀 있지 않아 고민하고 있으니 주인이가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넣지 마”라고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그리고 캠프로 떠나는 당일. 캠프 버스에 아무렇지 않게 타고 가는 주안이의 모습을 보고 새삼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어렸어도 한 번 더 안겼을 것이고,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한참을 아쉬워했을 텐데, 지금의 주안이는 버스에 타고 난 뒤엔 어디에 앉아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그저 버스를 한참 쳐다보기만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10대 때는 받은 용돈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노느라 정신없었고, 성인이 된 이후엔 먹고산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늘 “바빴어요. 죄송해요”라는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을 종종 헤아릴 기회가 생긴다. 한편으론 내 자식 돌보느라 내 부모님께 소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죄송한 마음도 든다. 왠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주안이의 첫 캠프였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