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하소연 “3월은 잔인한 달”
새로운 출발은 늘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한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자녀의 새 학년을 준비하는 엄마들에게 3월은 그야말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현실에 맞서 싸우며 적응해야 하는 시기다. 아이의 생활 습관부터 시작해 학교생활, 교우 관계, 학원 스케줄, 학습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한 학부모들과의 교류, 선생님과의 관계 등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1년을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고, 상급 학년으로 진급해서도 수월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 겪는 ‘새 학기 증후군’은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교사들도 매우 심한 새 학기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가 50% 정도라고 한다. 엄마들의 새 학기 증후군 스트레스도 60%를 넘는 수준.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에게 3월은 잔인한 달이다. 특히 자녀의 교육과 양육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엄마들의 경우 걱정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내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주변 학부모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전우애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의 대담자
자유로운 영혼의 늦둥이 초등학교 입학에 걱정 많은 권 여사(45세, 회사원)
기 센 동네 엄마들과의 관계가 고민인 최 여사(42세, 은행원)
아이 스케줄대로 움직이느라 사생활 없는 문 여사(45세, 전업주부)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는 게 낫지”
권 여사(이하 ‘권’) 입춘도 지나고 절기상으론 봄이 시작된 지 꽤 됐죠. 그런데 제 마음은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한겨울보다 더 싸늘합니다. 늦둥이 외동아들이 초등학생이 됐거든요.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에요. 그러다 보니 선배 학부모들을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요.
문 여사(이하 ‘문’)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이면 아직 솜털 뽀송뽀송한 아기잖아요. 얼마나 귀여워요. 공부 스트레스도 없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좀 힘들어도 말이죠.
최 여사(이하 ‘최’) 아이도 학교가 처음, 엄마도 학부모가 처음이잖아요. 그러니 설렘도 있지만 걱정이 많아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없죠. 우리 애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데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아이는 학교 간다고 좋아했는데, 저는 아침마다 아이 등교 준비와 제 출근 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전쟁을 치르는 거 같았어요. 일찍 출근하는 남편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됐고, 나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고생했어요.
권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학교생활이 편하다고 해서 겨울부터 아이랑 연습을 했어요. 저도 아이도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지금도 적응 단계라 좀 힘들지만 아이 학교생활에 모든 걸 맞춰야죠.
문 아침 시간을 여유 있게 시작하지 않으면 애도 엄마도 하루 종일 허둥지둥하게 되죠. 제 친구가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아이가 아침에 느긋하게 준비하고 아침밥을 먹고 왔는지 아닌지 학교에서 다 티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습관이란 게 그렇게 무섭다니까요. 보통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 난다고 해요. 어릴 때 아이의 생활 습관을 잘 잡아줘야 하는 이유는 학습으로도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최 그래서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휴직하거나 아예 그만두는 엄마가 꽤 있어요. 현실적으로 직장 생활하면서 초등 저학년 자녀를 케어하는 건 쉽지 않아요. 저도 친정 부모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죠.
문 저도 직장을 다니다가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일을 그만뒀어요. 가끔 후회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아이들도 제가 뒷바라지하는 만큼 잘 따라와 공부도 곧잘 하는 편이라 다행이죠.
권 저는 양가 부모님이 다 멀리 계셔서 도움받을 형편도 안 돼요. 다행히 제가 다니는 디자인 회사는 출퇴근 시간이 좀 유동적이에요. 사실 전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잘 앉아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네요. 아들 녀석이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다 보니 수업 시간을 지루해하지는 않을지, 수업 시간에 딴짓하다 다른 애들한테 피해를 주거나 담임선생님 눈 밖에 날까 봐 걱정이에요. 집중을 잘 못하면 어떻게 하죠?
남자애들은 무조건 운동 잘하는 애가 반에서 인기가 많아요.
일단 동물의 왕국, 약육강식의 논리처럼 힘이 센 게 우선이니까요.
남자애들은 단순한 반면, 여자애들은 은근히 따돌리거나
어른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못살게 굴어서 더 힘든 경우가 있다고 해요.
-최 여사
공부보다 중요한 아이들 친구 관계
문 제 친구는 아이 입학을 앞두고 학교 책상 비슷한 걸 구입해 가만히 앉아 있는 연습을 시켰대요. 일단 튀는 행동을 하면 친구들이 안 좋게 볼 수 있으니까요.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친구 관계예요. 혹시 우리 애가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까, 애들한테 맞는 건 아닐까, 왕따 주동자가 되는 건 아닐까…. 아마 엄마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일 거예요.
최 첫째 때는 학교 공부보다 아이 친구 관계에 더 신경 썼던 거 같아요. 남자애들은 무조건 운동 잘하는 애가 반에서 인기가 많아요. 아들이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축구, 수영, 태권도, 합기도를 엄청 시켰어요. 남자애들은 일단 동물의 왕국, 약육강식의 논리처럼 힘이 센 게 우선이니까요. 남자애들은 단순한 반면, 여자애들은 은근히 따돌리거나 어른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못살게 굴어서 더 힘든 경우가 있다고 해요.
권 아직 1학년이라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바람은 없어요. 오로지 학교에서 말썽 안 부리고 친구들과 잘 지내기만을 바라죠. 저는 어릴 적에 친구 많은 애가 제일 부러웠거든요. 좋은 친구를 얻을 수만 있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귀찮더라도 주말이나 제가 쉴 때 아이 친구들을 집에 자주 초대하는 편이에요. 엄마들도 같이 와서 놀고, 가끔은 아이 친구 가족과 캠핑도 가고. 일단 저희가 캠핑 장비가 다 있어서 아이 친구 가족에게는 몸만 오라고 해요. 다 아이를 위해서죠, 뭐. 아이가 외동이다 보니 친구 관계에 더 신경 쓰게 돼요.
엄마들 사이의 신경전
문 요즘 아이들의 친구 관계는 엄마들 친분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아요. 아이들을 운동시키거나 논술, 과학 등 수업할 때도 엄마들이 주도해 소그룹을 짜잖아요. 그러다 보니 동네 학부모 엄마들과 교류를 안 할 수 없어요. 사실 나랑 성격이나 취향이 안 맞는 엄마도 엄청 많은데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죠.
최 맞아요. 전 동네 엄마들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학년 초에는 더 그렇죠. 특히 기 센 엄마들을 상대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제가 직장에 다니면서 작년부터는 대학원도 다니고 있어 요즘은 시간이 더 없는 편이에요. 엄마들 모임에 자주 못 가니까 어쩌다 참석하면 술이든 밥이든 일부러 제가 나서서 계산해요. 가끔은 작은 선물도 하고요. 그런데 그걸 또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엄마들이 있더라고요. 돈으로 잘난 척하는 걸로 보였나 봐요. 전 그냥 아이들이 놀러 가거나 학원에 갈 때 픽업 도와주고, 제가 놓치는 부분을 미리 알려주는 엄마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그런 건데.
권 맞아요. 워킹맘과 전업주부 엄마들 사이에 묘한 감정의 골이 있어요. 저도 아이 유치원 때부터 느꼈어요. 자기들끼리 다 정해놓고 저한테는 통보만 한다든지, 방학 때 아이들이 어디 가는데도 저만 쏙 빼고 “시간 안 될까 봐 일부러 말 안 했다” 그러고. 물론 모든 엄마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게다가 늦둥이다 보니 아이 친구 엄마들이 저보다 한참 어려요. 엄마들 사이에서도 왕언니로 통하다 보니까 작은 일에 일일이 화내는 것도 모양 빠지고. 웬만한 일은 그냥 아이를 생각해 넘어가는 편이에요.
문 전업주부 엄마들도 나름의 고충은 있어요. 직장에 나가지 않는다 뿐이지 각자 바쁘게 살고 있는데 마치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 취급을 하니까. 워킹맘 중에 평소에는 엄마들과 교류도 하지 않고 바쁜 척하다가, 학원 정보나 자기가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연락하며 살랑거리는 얄미운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어쨌든 아이들 때문에 엮인 사이니까 좀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고. 다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제각각이라 나이 들어 만나는 인간관계는 참 어려운 거 같아요.
최 맞아요. 아이들 친구 관계보다 더 어려운 게 학부모들 관계예요. 아이들은 싸우기라도 하지 우린 자존심이 있어 대놓고 싸우지도 못하고, 뒷말이 많다 보니 이상하게 소문이 나면 더 상처받죠. 저와 사이가 별로 안 좋은 아이 엄마가 있는데, 워낙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인정받는 아이라 뭘 해도 그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요. 그러니 동네 엄마들이 다 그 엄마를 떠받들어요. 그 엄마가 워낙 정보도 빠르니까. 저도 어쩔 수 없이 그 엄마들 모임에 끼려고 많이 노력했죠. 이번 학년에도 또 같은 반이 돼 스트레스받는 중입니다.
첫 학부모 모임 때 무슨 옷을 입고 어떤 명품 가방을 들고 왔는지 서로 견제하며 지켜봐요.
헤어와 메이크업은 필수, 피부과와 성형외과에서 리프팅 시술을 받는 엄마도 꽤 있어요.
보톡스 같은 건 좀 미리 맞아야 당일에 자연스럽죠.
-최 여사
권 그나저나 첫 학부모 모임에는 다들 신경 쓰고 간다면서요. 친구들이 옷이랑 가방이랑 싹 다 새로 사고, 피부 관리도 받아야 한다고 하네요. 특히 전 나이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더 신경 쓰여요. 겨울부터 피부과 다니는 엄마도 많다고 하던데.
최 엄마 외모에 예민한 애들이 있어요. 특히 어린 남자애들. 주변에도 늦게 아이를 낳은 친구가 있는데, 그 아들이 “엄마는 젊은 할머니같이 보이니까 학교에 오지 마!”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 말에 친구가 왈칵 눈물이 나더래요. 다 늙어 48시간 진통하면서 낳았더니 그런 말이나 듣고 너무 서운했던 거죠. 아무리 철없는 아이라고 해도. 그때부터 열심히 운동해 살 빼고, 피부과 다니고, 아무튼 외모 가꾸는 데 돈 많이 쓰고 있어요.
권 아! 나이 많은 엄마의 비애네요. 저도 뱃살도 빼고 좀 더 신경을 써야겠어요.
문 애들 사이에서도 누구 엄마는 날씬하고 예쁘고, 누구 엄마는 뚱뚱하지만 성격은 좋고. 자기들끼리 어른을 평가해요. 엄마들 모임에서도 아무래도 잘 가꾸고 예쁘면 인기가 많죠. 물론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저도 아이 학원 픽업을 가거나 학교 회의에 참석할 때 최대한 잘 꾸미고 가려고 노력해요. 아이한테도 엄마가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최 첫 학부모 모임은 정말 서로 견제하는 게 눈에 보여요. 선생님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서도 누가 뭘 입었는지, 어떤 명품 가방을 들고 왔는지 곁눈질하면서 봐요. 일단 미용실에 가서 헤어와 메이크업은 필수로 받는 거 같고요.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 리프팅 시술을 받는 엄마들도 꽤 있어요. 피부과에서 꾸준히 관리를 받는 사람도 많은데, 학기 초에는 더 신경 써요. 보톡스 같은 건 미리 맞아야 당일에 자연스럽죠. 난 둘째 1학년 첫 총회 때 피부 관리를 받았는데, 화장품이 뭐가 안 맞았는지 얼굴에 트러블이 나서 아주 낭패를 봤어요. 얼굴의 붉은 기가 없어지질 않아 거의 분장 수준으로 화장을 하고 간 적이 있죠.(웃음)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고민은 역시 공부
문 엄마들이 초장에 기선 제압을 하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엄마들의 외모 전쟁도 다 한때인 거 같아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고 중학생이 되면 아이의 공부가 가장 중요해요. 다른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죠. 특히 아이가 영재원 시험이나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면 뭐든 아이 학원 위주로 돌아가요. 이때쯤 되면 아이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자기 진로의 큰 가닥을 정하니까요. 우리 첫째는 스스로 공부에 올인해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데, 학원 스케줄이 정말 빡빡해요. 내 눈에는 아직 중학생 아기인데, 방학 때도 하루 종일 공부하는 거 보면 안쓰럽죠. 물론 저도 아이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여행은 물론, 친구 만나기도 어렵고 사생활이 없어요.(웃음) 밤에 친구랑 맥주 한잔한 게 언제인지….
권 일찍 결혼해 아이가 대학생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입시는 우리 때와는 너무 달라서 아이 혼자 공부만 잘해서는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일찌감치 준비해 입시 전략을 잘 짜야 한다고요.
최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같은 말이 안 통한 지 오래됐어요. 저도 애들이 아직 둘 다 초등학생인데도 벌써 진로 고민으로 골치가 아파요. 공부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 더 늦기 전에 예체능을 시킬까 생각하고 있죠. 물론 이것도 공부만큼이나 쉽지 않지만요.
문 그러고 보면 그 어떤 3D 업종보다 힘든 것이 학부모의 위치인 거 같아요. 직장은 열받으면 때려치울 수라도 있는데, 부모라는 자리는 그럴 수도 없고. 그래도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고 사는 거겠죠?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와 아이들이 행복한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 학기 스트레스가 있나요?
1월 31일부터 2월 13일까지 50명에게 물었다
❶ 새 학기 스트레스가 있다
매우 그렇다 40%
그렇다 50%
아니다 10%
❷ 새 학기 스트레스의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교우 관계 32%
아이의 스케줄 관리 14%
아이의 학업성적 43%
아이의 담임 11%
❸ 학부모 모임을 위해 외모 관리 시술을 받거나 옷이나 가방을 구매한 적이 있다
있다 65%
아니다 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