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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지숙경의 숲 속 공간

보채지 않고, 시간의 흐름대로 계절과 함께 살아간다. 지극히 단순명료한 산에서의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도예가 지숙경의 공간에서 미리 봄 햇살을 맞았다.

On February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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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삶은 빠르고 편리하다. 원하는 물건을 주문하면 대부분의 물건은 이틀을 넘기지 않고 배송되고, 주문한 지 몇 시간 만에 새벽배송으로 집 앞에 물건이 도착하기도 한다. 늘 바쁘고, 꽤 시끄럽고, 밤이나 낮이나 굉장히 밝다. 숲속의 시간은 도시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오지 않는 열매를 보채지 않고, 절기를 따르며 계절을 오롯이 느낀다. 계절이 오는지,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법은 없다. 23년 전 경기도 양평 칠장산 아래 터를 잡은 도예가 지숙경의 시간 역시 자연의 시간과 결을 같이한다. 자연에 기대어 살면서 기다림을 배웠다. 자연이 주는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요한 숲에서 제법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처음 숲속에 집을 지은 계기가 무엇인가요?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을 늘 갈망했어요. 도자기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후 그 생각은 더욱 깊어졌고, 1년간 열심히 땅을 보러 다닌 끝에 지금의 칠장산 아래를 알게 됐죠. 그때가 30대 중반이었어요. 20여 년 전 이곳은 전부 고추밭이었어요. 마을분이 이 동네를 전기가 들어온 지 30년밖에 안 된 마을이라고 하셨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죠. 지금은 주변에 집이 조금 생겼지만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렇게 20년을 자연과 함께 보냈더니 지금은 꽤 운치 있는 공간이 완성됐죠?

잘 구획된 아파트에서 살다가 숲속에 집을 지었는데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너무 많았죠.(웃음) 처음 집을 지을 때는 나무 문에 대한 로망이 커서 문을 전부 나무로 했어요. 시공하는 분들도 말렸는데, 그때 저는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죠. 옷을 더 입으면 돼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추운 겨울이 너무 힘들어 몇 년 후 창호도 다 바꿨죠.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에요. 이 집에 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점이 집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향’이라는 거예요. 방향이요. 요즘은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건축가가 많고 아파트에 주로 살다 보니 향의 개념이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주택에 살면서 더 느끼게 됐는데, 향이 정말 중요해요. 기분과 감정도 좌우하고 무엇보다 기온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죠. 남향이 주는 시원함과 따뜻함을 절대 간과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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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하루, 그리던 모습과 비슷했나요?
전혀요.(웃음) 아침에 일어나 오븐에 구운 크루아상을 먹으면서 햇살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는 제 모습을 꿈꿨어요. 하지만 처음엔 너무 무섭더라고요. 이렇게 외진 곳에 혼자 살다 보니 낯선 사람을 무조건 경계하게 됐죠.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신문은 물론 가스통도 직접 사다 날랐어요. 모두 다 제 일이 되다 보니 크루아상을 굽는 일은 가스 절약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죠. 저녁이면 바깥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음악도 제대로 못 들었고요. 언제 나를 덮칠지 모르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까지 1년 반이 걸렸어요.

정원을 가꾸고,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나요?
정원 작업과 도자기 작업은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아요. 정원과 도자기 모두 기다려주지 않아요. 때를 놓치면 손쓰지 못할 정도로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리죠. 도자기는 때를 놓치면 흙이 말라버려요. 남의 손을 빌리기 어렵다는 점도 같죠. 흙 작업은 지극히 노동집약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과정이에요. 도자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20가지가 넘는 공정을 거치고 6개월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죠. 전통 방식의 장작 가마 소성 작업에서는 어떤 작품도 함부로 가마에서 소성할 수 없어요. 정원 일도 남의 손을 빌릴 수 있는 영역은 굉장히 부분적이에요. 이제는 조금씩 남의 도움도 받으려고요. 남이 하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풀 뽑아준다는 사람 있으니 맡기려고요. 

이곳에서의 기록을 담아 <숲속의 사계절>이라는 책을 출간했죠.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가장 기다려지나요?
책을 쓰면서 이곳에서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계절별로 매력이 모두 달라요. 다섯 손가락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겨울은 가만히 앉아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여기는 눈이 많이 오면 오도 가도 못 하거든요. 숲속에서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겨울이 유일해요. 봄은 가장 두근거리는 계절이죠. 움츠리고 있던 어깨도 펼 수 있고요. 엊그제 정원을 돌아보면서 정리하고 움직이니까 갑자기 흥분되더라고요. 땅도 파보고, 뭔가 올라오는 게 있나 들여다봐요. 도자기를 가마에 넣고, 불 때면서 기다리는 것과 거의 비슷하죠.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봄이 너무 좋아요. “초봄에 파란 것은 다 먹을 수 있다”는 말도 있잖아요. 산에서 살다 보니 정말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지천에 먹을 것이 가득해요. 두릅나무, 엄나무, 생강나무 등 이 새순들을 채집하는 과정도 흥미진진하죠. 여름의 이곳은 정말 울창해요. 양면이 모두 산이라 울창해서 좋지만 장마는 여전히 무서워요. 가을엔 역시 단풍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여기는 벚나무가 많아 여름에는 꽃이 예쁘고, 가을에는 단풍이 예뻐요. 가을엔 가마에 불을 때니까 저에게는 특별한 계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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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양귀비 에피소드는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었어요.
정말 아찔했죠. 다음 주면 꽃이 필 양귀비를 전부 베어버렸으니. 두 분은 작업실의 창단 멤버, 개국 공신 같은 커플이거든요. 워낙 오래 작업실을 오가셨으니 내공을 믿었죠. 정원 일에 로망도 있으셨고요. 원래는 제가 구획을 정해 “여기까지만 해주세요” 이렇게 말씀드리는데 일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신 거죠. 두 분이 집으로 가고 나서 다 베어버린 양귀비를 발견하고 얼마나 허무했는지. 그때 생각하면 재밌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 늘면서 ‘5도2촌’이나 시골의 폐가를 개보수해 사는 인플루언서들의 삶도 주목받고 있어요.
저는 집에는 시간이 녹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물체인 거죠.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도 많아요. 나이도 먹었고, 몸도 조금씩 변해갔죠. 사람들이 왜 전원생활을 꿈꾸는지는 알아요. 전원생활은 목가적이고, 여유롭고, 낭만적일 것 같잖아요. 사실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거든요. 시골이나 산속 생활이 도시의 조직 생활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해요. 여기는 정말 그때 딱 해야 하는 일들이 있거든요. ‘게으름 피우고 조금 있다 해야지’ 하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죠. 오히려 훨씬 더 부지런해져야 시골에서 잘 적응할 수 있어요. ‘나 여유롭게 살 거야’,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거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전원생활을 시작하면 굉장히 위험해요. 여기에서의 삶이 주는 재미, 즐거움이라는 건 결국 육체적 노동이에요. 육체적 노동을 하면서 생기는 통쾌함과 유쾌함이 있거든요. 그날 목표치를 정하면, 내 몸을 움직여 눈에 보이도록 성과를 이뤄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죠. 자연에서는 ‘하던 게임을 마저 하고 해야지’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가 없어요. 밤늦도록 게임하고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일하러 갈 수 없거든요. 해 떨어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서 일을 하는, 자연이 주는 타임 테이블에 맞춰 굉장히 규칙적인 삶을 살아야 적응할 수 있어요. 그래서 조직 생활보다 엄격하다는 말을 한 거죠. 자신에게 스스로 엄격해야 하고, 자기 삶에도 엄격해야 하고요. 하지만 고도로 발전한 도시에 살면서 점점 원시적인 생활을 하려는 사람은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밸런스를 맞춰가는 것도 좋을 거예요.

작가님의 삶은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위안이 돼요.
처음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급자족을 꿈꿨어요.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조금씩 타협을 하고 있죠. 그래도 고집스럽게 땅을 일구고, 땔감을 준비하고, 도자기 작업을 하고 있어요. 스무 해가 넘도록 그렇게 이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야죠.

식재료를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부러웠어요.
최고의 레시피는 밭이나 산에서 바로 수확한 신선한 식재료죠. 지인 중에서는 맛있다고 싸 가는 사람도 있는데, 집에서 먹으면 그 맛이 아니라는 말을 해요. 그래서 음식은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고 하나 봐요. 저에게 요리는 아주 흥미 있는 일은 아니에요. 도자기는 요리와 뗄 수 없는 관계라 손님들이 오면 그릇을 보여주면서 요리를 대접해요. 최선을 다하지만 어느 정도는 일에 가깝죠. 즐기기에는 상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 그런 것 같아요.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내 음식을 즐기기가 쉽지 않네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언제인가요?
해가 뜨기 전 아침을 가장 좋아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차실에서 차를 마셔요. 차를 마시다 보면 창가의 나무 사이로 해가 떠오르죠. 책도 보고, 멍하니 떠오르는 해를 보기도 하지만 해가 떴다는 건 일을 하라는 뜻이니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요. 해 뜨기 전, 여유로운 시간을 가장 좋아해요.

지요 작업실의 사계절


작약 싹이 연다홍색 머리를 내민다. 5월이면 연분홍 홑작약꽃이 정원을 가득 메운다. 3월 중순이 되면 수선화가 제일 먼저 봄이 저 산 너머에 있음을 알려준다. 그 자그마한 강인함으로 미처 녹지 않은 눈 속에서 초록의 싹을 피운다. 밭이나 산에서 바로 수확한 신선한 식재료로 봄 식탁을 차려낸다.

여름
여름의 정원은 꽃 폭탄이라도 맞은 듯하다. 비 한 번 오면 풀들이 쑥쑥 자라나는 바람에 허리 펼 시간 없이 정원에 쭈그리고 앉아 풀을 벤다. 지루한 장마가 지나면 숲은 더 푸르러지고 계곡은 더더욱 깊어진다. 작업실은 에어컨 없이도 7~8월을 보내기 어렵지 않다. 서서히 10월에 있을 가마 소성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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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기운이 제법 서늘해진 초가을 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반딧불이를 만났다. 장작 가마 소성이 시작된다. 날씨나 바람, 나무의 상태 등 인위적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수많은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시간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11월이 되면 작업실 근처 밭둑은 맷돌호박으로 넘쳐난다. 주먹 2개 정도 크기의 호박을 몇 개 따와 호박찌개를 만들어 가을 식탁을 준비한다.

겨울
1년 중 가장 느긋한 시기. 더 이상 정원의 풀은 뽑지 않아도 된다. 더 추워지기 전에 월동 준비를 한다. 핵심은 김장과 난로에 땔 장작 준비. 꼬박 두 달 남짓 텃밭에서 직접 기른 배추로 김치를 담가 채운 김칫독과 작업실 뒷벽에 쌓아놓은 나무 장작은 그저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난다.

CREDIT INFO
에디터
서지아
진행
류창희(프리랜서)
사진
김정선, 문학동네 제공
2023년 02월호
2023년 02월호
에디터
서지아
진행
류창희(프리랜서)
사진
김정선, 문학동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