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서가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항상 같이 있었어요. 엄마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였죠”. 피아니스트 노영서(28세)의 엄마 차영은 씨는 아들이 시각장애라는 장벽 앞에 무너지지 않도록 곁을 지켰다. 연주 시간 15분 분량의 악보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만 3개월. 하지만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노영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위해 유학길(2019년)에 올라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독일 마틴루터대학교에서 최고연주과정을 밟고 있다. 사소한 부분까지 모든 게 낯설지만 피아니스트로서, 훌륭한 음악가로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활에 불편함이 있다 보니 타지에 있는 아들이 걱정될 거 같아요.
처음엔 그랬죠. 영서가 석사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독일로 떠났거든요.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했지만, 엄마 입장에선 아들을 낯선 곳에 보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요즘은 아니에요.(웃음) 영서가 유학 생활에 잘 적응했고, 앞으로도 잘해낼 거라고 믿거든요. 영서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단 지금 영서가 피아노를 치는 게 행복하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2021년 베토벤국제콩쿠르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거뒀다고 들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보통 30살이 되면 국제 콩쿠르에서 경쟁력이 급격하게 떨어져요. 어린 연주자들이 각종 대회를 장악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때문이죠. 영서는 유년기에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그런데 시력이 점차 나빠지면서 성인이 돼선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지 못했어요. 국제 콩쿠르는 100번 중에 1번 입상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아요. 현실적인 요건을 고려했을 때 영서에겐 더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죠. 그런데 영서가 도전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대회에서 지정한 곡의 목록을 확인했는데, 영서가 한 번도 쳐보지 않은 곡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악보를 보는 시간까지 부족한 상황인 거죠. 영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회 직전까지 ‘구토가 나올 정도’로 악보를 봤대요. 결국 주어진 시간 동안 악보를 다 보지 못했어요. 상황을 고려해 대회 참가를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영서는 준비한 만큼은 무대에서 보여줘야겠다고 했어요. 영서의 마음이 통했는지 참가자 100명 중에 12명 안에 뽑혀 한 번 더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저는 그 자체로 영서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엄마인 저도 놀라워요.
곁에서 본 노영서는 어떤 피아니스트인가요?
피아니스트로서는 존경스럽고, 아들로서는 든든해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제가 영서에게 힘이 됐던 순간보다 영서가 제게 힘을 줬던 때가 많아요.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안고 있는 아이에게 시각장애는 서글픈 일이에요. 엄마인 저도 속상한데 본인은 오죽할까요? 그런 상황임에도 영서는 무너지지 않았어요. 당장 앞을 보기 힘든 상황인데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템포를 찾아가더라고요. 최근에 영서와 통화했는데 영서가 제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해줬어요. 요즘 책을 읽는다고 하면서 제게도 독서를 권유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멋진 일을 한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어떤 환경에 있어도 우아한 사람이 정말 멋진 거야”라고 했어요. 결국 내면을 잘 가꿔야 멋진 사람이라는 의미였죠. 아들에게 여러모로 배우는 점이 많아요.(웃음)
희귀병도 꺾지 못한 의지
노영서는 어릴 적부터 다재다능한 소년이었다. 서울시 대표로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운동 실력이 뛰어났고, 취미로 보냈던 학원마다 심화 학습을 제안받았다. 그중에서 피아노를 선택한 건 노영서 본인의 의지였다. 노영서는 한국 쇼팽 콩쿠르 주니어부, 소년한국일보 음악 콩쿠르에서 1위의 영예를 안았고 금호영재콘서트, 서울시립교향악단 소년소녀 협주회 협연자로 선정되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피아니스트 유망주로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2살 때부터 점차 시력이 나빠졌고, 18살 때 희귀병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노영서는 현재 주변부 시력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처음 피아노를 가르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치원에 보낼 나이가 되면 피아노학원에 보내는 게 수순이었어요.(웃음) 영서는 유치원을 1년만 보냈어요. 초등학교 입학 전 필요한 기초 지식만 가르치고, 주로 문화센터에 보냈죠. 아이가 어릴 때는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피아노도 그 일환이었죠.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영서는 시키면 다 잘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처음엔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영서가 유튜브로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대요.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전문적인 학습을 거치지 않았는데도 곧잘 한다고 해요.
피아노 연주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느 날 영서가 백화점 피아노 가게에서 피아노를 발견하곤 건반을 누르다가 연주를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구경하더니 연주가 끝나자 박수를 쳤어요. 신기한 관경이었어요. 영서가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을 받고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멋진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더 배워보기로 했죠.
12살 때부터 시력이 점차 저하됐습니다. 당시 심경이 어땠나요?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보통 근시가 생길 수 있는 나이니까요. 영서가 학교에서 칠판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과에 갔는데, 의사가 시력 교정이 어렵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 대학 병원에 갔어요. 의사가 유년기 황반변성(안구 내 망막의 중심부가 퇴화하는 질환)이래요. 거기에 3대 실명 원인 질환인 망막색소변성증(안구의 망막시세포층이 퇴행하면서 발병되는 질환)까지 있는 거 같다고 말했어요. 두 질환이 혼합되는 사례는 적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망막 상태가 정상적이라서 진단을 하진 않았지만 지켜봐야 한다고 했어요.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시력 저하에 치명적인 질환인 데다가 결국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는 말 때문에요. 영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시력이 급격히 안 좋아졌어요. 교재가 보이지 않아서 캠코더로 내용을 확대해 읽었죠. 결국 18살 때 망막색소변성증 확진 판정을 받았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엄마의 보살핌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을 거 같아요.
영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절망스러웠어요. 치료법이 임상 실험 단계에 있지만,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래도 엄마니까 정신 차리려고 노력했어요. 무엇보다 영서가 외로움만은 느끼지 않길 바랐어요. 눈이 안 보이는 답답한 상황에도 피아노 앞에 앉는 영서를 지켜봤어요. 영서가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항상 함께 있었어요. 옆에 엄마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였죠. 사실 영서가 많이 무서울 거예요. 보였던 것들이 보이지 않는 공포감이 상당할 거예요. 제가 영서가 느끼는 두려움을 다 알진 못하겠지만, 엄마가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악보 보기요. 피아노는 악보를 보고 그대로 쳐야 하는 음악이에요. 악보를 읽는 게 첫 단계인 셈이죠. 그런데 악보를 읽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영서와 같이 피아노를 치는 친구들은 어려운 악보도 초견으로 어느 정도 속도를 내면서 쳐요. 같은 악보를 같은 시기에 연습하기 시작해도 격차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아요. 일상생활에선 제 걱정이 컸어요. 지금도 영서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최대한 잠들지 말라고 해요. 깜빡 졸다가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상황이 힘들어지니까요. 게다가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면 상황이 얼마나 무섭겠어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현실을 천천히 받아들였어요. 치료법이 개발될 거란 희망도 놓치지 않고요. 사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영서는 많은 것을 이뤄냈어요. 입학하기 힘들다는 예원학교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한예종에 일반 전형으로 합격했어요. 특히 한예종은 피아노학과 학생을 1년에 8명 정도 뽑는 것으로 알려져 문턱이 높은 편이에요. 전부 영서의 힘으로 일궈낸 것들이에요. 희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영서는 누군가가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행복하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해요. 반대로 영서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서의 원동력이 되고요.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노영서를 보면 어떤가요?
제 아들이지만 존경스러워요. 오히려 영서가 저를 돌봐주고 위로해줄 때가 많아요. 아픈 자녀를 키운 부모라는 타이틀은 제게 거창해요. 그만큼 영서가 자신의 의지대로 꿋꿋하게 나아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힘을 내서 나아가려는 영서가 대견하죠.
내 아이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면…
예체능 교육은 특히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고 알려졌죠.
아들이 피아노를 전공한다고 말하면 집이 부유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가정은 지극히 평범하답니다.(웃음) 영서 아빠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건축가예요. 예체능 교육 비용은 얼마큼 할애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커요. 큰돈을 들이면서 교육하는 부모가 있고, 일반 사교육보다 돈을 적게 들이는 부모도 있어요. 저는 후자예요. 알뜰살뜰 살면서 영서를 교육했어요. 영서가 집에서 마음껏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피아노 한 대를 구입하고, 방에 방음장치를 설치했죠. 레슨은 일주일에 한 번 받았고요. 영서 친구들을 보면 엄마가 로드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학교와 학원 픽업을 도맡아 아이가 피아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요. 저는 영서와 외출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했어요. 순탄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영서랑 추억을 많이 쌓았어요. 영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네요.(웃음)
경제적 지원보다 심리적 지원이 우선이었군요.
사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다른 아이들이 레슨 네 번 받을 때, 한 번밖에 못 받았으니까요. 아이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마음일 거예요. 영서가 청소년일 때 엄마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했어요. 주어진 환경에서 영서를 지원할 방법은 심리적인 케어밖에 없더라고요. 영서가 피아노를 치면서 힘들어할 때는 만사 제쳐두고 옆에 있었어요. 얘기를 하면서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함께 고민했고요. 아들의 기분 전환을 담당한 셈이죠.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 만큼 정보력이 중요할 거 같아요.
보통 자녀의 진로 방향이 비슷한 엄마들끼리 커뮤니티가 생겨요. 교육 정보는 물론 일상에서 겪는 고충까지 공유해요. 모임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고민이 생겼어요. 받는 만큼 줘야 하는데 사는 게 빠듯해 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내세운 전략은 솔직함이었어요. 감사하게도 영서가 피아노를 잘 쳐서 공유할 정보가 많았고, 모임 멤버들을 집으로 초대해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영서를 통해 알게 된 엄마들과 지금도 연락하면서 지내요.
어머니만의 자녀 교육 방침이 있나요?
성실한 아이로 자라길 바랐어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작은 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알려줬어요. 영서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숙제로 가훈 만들기를 했어요. 고심 끝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고 썼어요. 영서는 지금도 그 문장을 지켜나가고 있어요.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죠.
예체능을 전공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조언한다면요?
가장 중요한 건 자녀와의 소통이에요. 영서와 같이 피아노를 쳤던 친구들 가운데 좋은 성적을 거두는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유학을 떠나 다른 진로를 찾는 사례도 있어요. 보통 피아노만 열심히 쳤던 아이들이 중간에 그만둬요. 자신이 피아노를 좋아하는지 고민해볼 겨를이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거예요. 부모가 아이와 충분히 소통했더라면 일찌감치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설정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있어요. 또 자녀에게 예체능을 가르치는 목적이 성공이라면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모든 일은 좋아서 해야 해요. 특히 진로는 더 그래요. 영서는 지금 하루에 악보 두 줄을 보는 데도 무리가 있어요. 고통스러워하는 영서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럼에도 영서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선뜻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만일 영서가 피아노를 그만 치겠다고 하면, 전 언제든 뜻대로 하라고 말할 거예요.
피아노를 전공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도 한마디 부탁드려요.
모든 교육이 그렇듯 행복하지만은 않아요. 즐겁고 행복한 건 피아노를 취미로 배울 때뿐이에요. 특히 피아노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장르예요. 그럼에도 자녀가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면 응원해주길 바랍니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만큼 큰 축복은 없을 거예요. 성공의 중요성보다 즐거움의 중요성을 깨우쳐주세요. 그렇다면 행복한 예술가로 살아갈 겁니다.
노영서가 어떤 피아니스트, 어떤 사회 일원이 되길 바라나요?
더 바라는 게 없어요.(웃음) 살아보니 재력, 명예 같은 건 크게 중요하지 않더군요. 죽기 전, 인생을 돌아볼 때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상상해봤는데 가족과 많이 웃었던 날일 거 같아요. 아들의 인생에 그런 날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는 그런 행복한 기억이요. 지금까지 영서는 모든 방면에서 충분히 잘했어요. 악조건 속에서도 도전을 거듭했으니까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