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타이포그래피와 아이코닉한 핑크 톤 패키지, 그 속에 담긴 다채로운 향 아이템으로 많은 사람의 후각을 사로잡았던 향기 브랜드 수향이 탄생한 지도 어느덧 9년째. 향기로 세계 정복을 꿈꾼 지 9년째라는 김수향 대표의 장난스러운 멘트에 잠깐 웃었지만, 이어지는 “1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에는 꼭 현실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들으며 향에 대한 그녀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봄, ‘더 퍼퓸 클럽 바이 수향’을 오픈하며 또 하나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 세상의 향기를 온전히 자신만의 방식대로 큐레이션하고, 방문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거기에 맞는 향을 골라 건네는 일종의 퍼퓸 바를 만들고 싶었다는 오랜 염원을 이뤘다.
서울 성수동의 한 골목에 위치한 이곳은 지난 몇 년간 수향의 제품을 생산하던 공장을 리모델링해 마련했다. 향이 탄생하는 곳에서 향기를 즐기고 느끼는 클럽으로 변신했고 오픈 직후 수많은 이들의 예약이 빗발치며 ‘핫플’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브랜드의 팝업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만약 평생 단 한 가지 향만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향을 고르고 싶으냐는 질문에 “평생 하나의 향만 맡아야 한다니 그건 마치 냄새를 못 맡는 상황이 되는 것만큼이나 잔혹한 일이네요”라고 대답할 정도로 향기에 진심인 수향 대표 김수향의 커리어와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한다.
이태원의 매장을 접고 ‘더 퍼퓸 클럽 바이 수향’을 오픈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향수 러버들을 위한 소셜 클럽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향에 대한 호불호는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결정되기 때문에 향에 대한 취향이 맞는다는 건 사회적인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향을 지극히 탐미적인 관점에서 다뤄보고 싶기도 했죠. ‘수향’을 처음 오픈했을 때부터 이런 형태로 운영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처음 사업하는 마음으로 도전했습니다.
다양한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많이 진행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최근 다올디지털뱅크 Fi와 협업한 ‘머니 퍼퓸’이 떠오르네요. 돈의 냄새라는 콘셉트가 마음에 들어 시작한 프로젝트였는데 제작 기간이 짧아 굉장히 걱정도 됐고 고생도 많았지만 결과물이 마음에 쏙 들게 나왔어요. TV 광고와 오프라인 행사까지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대규모 캠페인이기도 했고 실제로 향수에서 ‘돈 냄새’가 난다는 반응이 폭발적이라 기뻤어요. 올해 초에 진행한 릴(lil)과의 협업도 기억에 남아요. 그동안 수향과 협업한 브랜드는 주로 패션과 뷰티 브랜드였고 상대적으로 여성 고객이 많았는데 릴을 통해 다양한 성별과 계층의 고객들을 만날 수 있어 색달랐어요.
많은 이들의 후각을 사로잡은 수향의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을 공개해주세요.
먼저 콘셉트와 향조를 정한 뒤 조향사나 향료 회사와 함께 창작하고 있어요. 수향에는 33가지 향 컬렉션이 있는데 다양한 향조를 소개할 수 있도록 일종의 뷔페식 구성을 짜두었습니다. 어떤 고객이 오더라도 좋아하는 향 한 가지는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사실 제가 그린 노트의 향을 좋아해 수향의 향들은 대부분 맑고 경쾌한 느낌을 지니고 있어요. 또 자주 사용하는 베이스도 편애하는 향이 있어 그걸 주로 쓰죠. 어떻게 보면 저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편이에요. 요즘은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여러 조향사와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어요.
향뿐만 아니라 스타일리시하기로도 유명한데, 평소 추구하는 패션 철학은 무엇인가요?
‘남이 보든 안 보든 항상 보기 좋은 모습으로 있자.’ 그리고 ‘가진 것은 최대한 보여주자!’라는 마인드로 제 몸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저의 내면을 옷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좋아하죠. 예를 들면 긍정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싶을 땐 컬러풀한 아우터를 걸치고, 카리스마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컷아웃 블랙 니트 드레스를 입는 식이죠. 패션으로 메시지를 표현할 땐 하나의 메시지면 충분합니다. 하나 이상이면 실패해요. 그래서 과한 액세서리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에요.
가장 애정하는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궁금해요.
존경하는 브랜드와 디자이너는 너무 많지만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저의 정신세계를 확장시키는 디자이너를 좋아합니다. 20~30대엔 꼼데가르송과 마틴 마르지엘라를 좋아했어요. 30대 후반엔 프라다와 미우미우를 많이 입었고 40대인 지금은 버질 아블로가 디렉팅한 루이 비통 남성 라인을 좋아해요. 그의 죽음 이후에 이젠 무엇을 좋아해야 하나 탐색 중이이에요.
날씨가 쌀쌀해지며 두툼한 옷에 눈길이 많이 가는 요즘입니다. 겨울을 맞이해 장만하고 싶은 패션 아이템이 있나요?
사실 저는 지난겨울부터 1년간 ‘쇼핑 끊기’를 하고 있어요. 옷, 신발, 가방 등 패션 아이템을 1년 동안 사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했고 이제 거의 1년이 돼가고 있네요. 한때 쇼핑 중독 수준으로 물건을 사 모으곤 했는데 1년 동안 쇼핑 끊기를 하면서 조금 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났어요. 패션이 나에게 갖는 의미도 진지하게 고민해봤고 진짜 좋아하는 것과 필요한 것,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그렇다고 옷 못 입는 사람이 됐냐 하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죠?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겨울을 맞이해 장만하고 싶은 아이템은 아직 없습니다. 쇼핑 끊기가 끝나는 12월에 찾아보려고 해요.
향만큼이나 다양한 뷰티 제품을 접하고 있을 텐데 스킨케어 루틴이 궁금하네요.
킨케어 루틴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별게 없어서 좀 미안한 기분이 들지만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클렌징은 바이오더마 제품으로 합니다. 2차 세안은 하지 않고 물로만 가볍게 씻어내요. 스킨은 여러 브랜드에서 선물 받은 제품을 쓰는데, 요즘 워낙 뷰티 아이템이 상향 평준화돼 있다 보니 어느 브랜드가 더 좋다 할 거 없이 다 훌륭하더라고요. 그 후 시트 마스크를 피부 위에 얹어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요. 매일 시트 마스크로 피부를 케어하는 방법 중 하나인 1일 1팩을 하고 있거든요. 팩이 없을 땐 에센스를 팩처럼 듬뿍 바르고 노래 한 곡을 부릅니다. 피부를 위해 늘 마음속에 노래 하나는 다들 가지고 있죠?
예전부터 지켜보며 느꼈지만 늘 매끈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건강한 피부로 가꾸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저희 어머니의 피부가 70대 나이에도 무척 좋으신 편인데, 본인피셜 처녀 때부터 인삼을 꾸준히 갈아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더라고요. 저는 인삼은 잘 안 맞는 것 같고, 대신 홍삼을 꾸준히 먹고 있어요. 먹는 게 결국 피부로 온전히 드러난다는 걸 깨달은 후 날마다 마시던 와인을 끊었더니 피부가 확실히 좋아진 걸 체감했어요. 또 밀가루를 3주간 끊어보기도 했는데 피부가 반짝반짝 빛나더라고요.
피부만큼이나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해요.
대단한 걸 하지는 않아요. 10년 전부터 주 3회 웨이트트레이닝과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하기로 결심한 후 아직까지도 잘 지키고 있어요. 덕분에 몸무게를 늘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죠. 어떨 땐 욕심이 앞서 주 6회로 운동량을 늘리기도 하고, 어떨 땐 일이 바빠 운동을 전혀 안 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습관대로 주 3회 운동 루틴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자동적으로 그렇게 돼요. 그런 걸 보면 습관이 가장 위대한 것 같아요. 요즘은 찬물 샤워를 새롭게 습관으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 역시 앞으로 10년간 지키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에요.
일도 좋지만 아프면 다 소용없다는 걸 깨닫기도 하죠.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정기적으로 가정의학과에 가서 피검사를 하며 기본적인 몸 상태를 체크해요. 저는 비타민 C가 바쁜 저를 대신해 바이러스에 맞서 싸운다고 굳게 믿어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하루에 1,000mg 용량의 비타민 C를 4알 이상 섭취하고 있죠. 습관처럼 꾸준히 섭취했더니 지난 몇 년간 감기에 걸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심지어 코로나19도 안 걸렸어요. 면역력만큼은 최상의 상태라고 자부해요. 신체만큼이나 마인드 케어도 빼놓을 수 없죠. 정신 건강을 위해 108배를 시작했어요. 틈틈이 108배를 하는데 몸도 마음도 훨씬 좋아졌어요. 108배를 하면서 미워했던 사람들을 다 용서했는데 제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에요.
항상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많은 여성의 워너비로 손꼽히잖아요. 이런 애티튜드를 유지하는 마인드셋이 특별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에만 온전히 신경을 쓰는 편이죠. 살아보니 힘들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어요. 상황이 벅차고 어려울수록 자세를 똑바로 하고 어깨를 펴고 긍정적이고 당당하게 대처합니다. 미래의 나에게 부끄러운 기억을 주고 싶지 않아서요. 아주 어려운 순간이나 힘든 순간에도 최선을 다한 나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훈장처럼 쌓이고 쌓여 실제로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독보적인 향 브랜드인 수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와의 싸움이기도 할 것 같은데, 일할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브랜딩을 할 땐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려봐요. 어릴 때 책을 읽거나 자연에서 놀면서 느끼고 흡수했던 감정들을 다시 불러오는 것이 제가 소재와 콘셉트를 찾는 방식이에요. 저의 세계는 7살에 완성된 후로 한 뼘도 자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제품이나 운영 등에 있어 무언가를 기획할 때는 자료를 엄청나게 찾아보는 편인데, 더 이상 글자가 읽히지 않고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직전까지 읽을거리를 읽거나 뇌 속이 빽빽할 정도로 정보를 집어넣어요. 그 뒤에 주변을 산책하거나 차분히 명상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욕조 안에서 가만히 멍때리고 있기도 해요. 그러면 기적처럼 정리된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쉬는 날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보내나요?
특별한 일은 없고 주로 하이킹을 하거나 운동을 평소보다 오래 합니다. 또 서점에 가서 새로 나온 책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고 몇 권 사옵니다. 빵도 먹어요.
2022년의 끝이 다가오네요. 연말 선물로 제격인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향수죠. 선물하기 좋은 향수 아이템을 추천해주세요.
최근 아르마니 프리베와 협업하며 다양한 제품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연스레 아르마니 프리베에 푹 빠졌어요. 그중에서 하나 꼽자면 배우 손석구가 사용해 화제를 일으킨 ‘버트 말라카이트’를 꼭 시향해보세요. 현장에 있던 촬영 스태프 중 남성들이 유독 이 제품에 반응이 뜨거웠어요. “이 향, 무슨 제품이에요?”라며 제품명을 물을 정도로요.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해도 좋고, 본인이 직접 뿌리고 다니면 한 번쯤 누구나 뒤돌아볼 만큼 매력적인 향이죠.
올해가 가기 전,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요즘 <나는 4시간만 일한다>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내년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최소한만 일하고 원하는 대로 사는,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라이프 사이클을 바꿔보고 싶어요. 올 한 해는 책상 앞에 앉아 있던 기억밖에 없거든요.
살짝 철학적인 주제로 넘어가볼게요. 긍정 파워를 지닌 김수향 대표가 정의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행복은 순간과 찰나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해요.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 금세 행복하다고 느껴요. 인터뷰 기회를 준 <우먼센스>에 감사합니다. 여담이지만 이번 인터뷰를 위해 살펴본 <우먼센스>가 작년보다 더 젊고 새로워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우먼센스>에서 ‘센스’에 더욱 집중한 느낌이랄까. 또 웰니스 섹션이 추가돼 읽을거리가 풍부해져 재밌게 읽었어요.
해외의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방문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어디인가요?
하와이요. 아이러니하게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무려 20년 전부터 하와이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어요. 이메일 아이디를 aloha로 쓰고 있을 정도예요. 하와이는 워낙 유명한 휴양지라 어떻게 보면 뻔하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아직 저에게는 미지와 환상의 세계입니다. 그런 이유로 너무 가보고 싶기도 하면서 동시에 평생 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참 이상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