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천, 공원 등 도심 속 모든 녹색 공간을 애정한다.
인생은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다. 당장 이 글을 쓰는 지금만 해도 오늘 저녁 메뉴는 뭘 먹을지, 올해 겨울 코트는 어떤 것을 살지 따위를 고민한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정해준 길에 따르는 것이 답답했다. 내가 내 인생을 온전히 책임지는 어른이 빨리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 졸업 후, 어린 시절의 내가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삶은 그때부터 진정한 시작이었다. 치열하게 스스로 인생의 길을 개척해야만 했다. 진로뿐만 아니라 내 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했다. 자취를 시작하며 집을 고를 때도 내가 살 곳이니 어떤 동네에 살지, 어떤 집을 선택할지 내가 알아보고 결정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었고, 그쯤 되니 내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 때로는 무겁고 두렵게 느껴졌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이 길이 맞나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내가 너무 고민이 많은 건가 싶었지만 그건 어른들도 똑같은가 보다. 은퇴한 부모님마저 제2의 인생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철저히 알아보고 고민했으니.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모두가 똑같이 취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주고받았다. 이제는 저마다의 일로 만나기 어려울뿐더러 어렵게 시간을 맞춰 만나도 대화의 주제는 압도적으로 결혼과 출산, 육아다. 다들 대화의 주류를 이루는 주제 외에 다른 주제는 꺼내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고민은 나누지 않게 된다. 각자의 삶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제는 사사로운 고민과 선택은 나 스스로의 몫인 것이다.
무언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힐 때면 자연을 찾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원이나 하천을 걸으며 풀 냄새를 맡고 나무와 풀, 강 위에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 등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하지만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서울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많진 않다. 다행히 의도하진 않았지만 항상 자연과 맞닿은 곳에서 살고 있다. 처음 서울에서 머물렀던 곳은 불과 3분만 걸어 나가면 양재천이 있었다. 그곳에서 자연이 주는 위로를 크게 느꼈다. 당시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이 어렵고 고민이 많았는데 양재천 길을 쭉 따라 걷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고, 열심히 운동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나 또한 열심히 살아보리라 다짐하게 됐다. 이어 내가 가장 만족하며 지냈던 망원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 당시 트렌디한 식당과 카페가 많은 핫 플레이스 중 하나라 좋았기도 했지만 망원동을 애정하는 이유는 바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 집 바로 앞에 불광천이 있었고, 20분 거리에 망원한강공원이 있었다. 좀 더 열심히 걸어 나가면 하늘공원까지 있으니 정말이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동네였다. 봄엔 불광천을 걸으며 벚꽃을 감상하고, 여름밤엔 한강으로 걸어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야경을 구경하고, 가을엔 하늘공원에 올라 가을의 빛깔로 물든 공원을 감상하며 힘든 마음을 북돋웠다. 아쉽게도 망원동을 떠난 지금은 올림픽공원이 근처에 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는 아니라 자주 방문하진 못한다. 대신 동네를 열심히 돌아다녀본 결과 집에서 도보로 30분이면 성내천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어찌나 기쁘던지. 요즘은 성내천 걷기 신기록을 달성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서울의 모든 자연 공간을 정복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걷고 온몸으로 느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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