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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세계

‘독일의 대표 지성’ 잉에보르크 바흐만에 대하여.

On October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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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셋이라는 나이가 각별하게 느껴진 시기가 있었다. 무신론자이면서도 신의 아들인 예수가 죽은 서른셋이 되면 천지가 달라 보일 것 같았다. 둥글고 꽉 차 보이면서도 허공을 향해 터져 있는 3이라는 숫자가 두 번이나 중첩된 나이, 그 이후의 세계는 상상하기 어려운 나이, 그렇기 때문에 두려우면서도 설레었던 나이. 잉에보르크 바흐만에게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그랬던 것일까? 그의 단편집 <삼십세>에 실린 7편의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서른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는 47이라는 숫자가 더 의미 있었을 수도 있겠다. 1926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나 인스부르크 대학, 그라츠 대학, 빈 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과 심리학을 배우고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49년 첫 시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1953년 ‘47그룹’ 제12회합에서 47그룹상을 받으면서였다. 1947년에 생긴 이 단체는 한스 베르너 리히터, 귄터 그라스, 하인리히 뵐 등이 활동했던 독일어권 작가들의 문학 집단이다. 어떤 형식이나 문학 강령도 없는 자유로운 조직이었으나, 신인 작가들을 지원하고 젊은 작가들이 독일 문학을 개혁하는 데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 상을 받으면서 눈길을 끌었던 그는 이듬해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표지 모델로 등장하면서 소위 ‘스타 작가’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 나이가 47살이었다. 1973년, 그는 로마의 자택에서 불이 나면서 심한 부상을 입고 사망한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 채 다양한 글을 썼다. “소녀 같은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이자 지적으로 뛰어난 작가”로 불렸던 그는 아름다운 서정이 넘치는 글로 고통과 절망의 정서를 표현했다. 언어철학을 전공한 철학자로서 평생 언어와 그 대상의 관계가 갖는 긴장감에 관심을 기울였다.

“나, 온갖 무의식적인 반응과 단련된 의지로 이루어진 한 다발의 묶음인 나, 충동과 본능의 부스러기와 역사의 찌꺼기에 의해 길러지는 나, 한 발을 황야에 두고 다른 한 발로는 영원한 문명의 중심가를 밟고 있는 나, 도저히 관통할 수 없는 나, 각종 소재가 혼합되어 머리칼처럼 뒤엉켜 풀 수 없는, 그런데도 뒤통수의 일격으로서 영원히 소멸되어 버릴 수 있는 나, 침묵으로부터 생성되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나….” ‘삼십세’의 한 구절은 그렇듯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 아니었을까? 그의 장편소설인 <말리나>는 20세기 작품 가운데 가장 상징적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자아 안의 타자, 여성 안의 남성 등 중첩된 존재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경계를 지워나간다.

전후 독일의 대표 지성으로 불리는 그는 라디오 방송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다양한 글을 썼다. 시집 <유예된 시간> <대웅좌를 부름>, 라디오 방송극 <맨해튼의 선신>, 단편집 <삼십세> <동시에>, 장편소설 <말리나>를 남긴 그는 다작이라 하기 어려웠으나 브레멘 시 문학상, 베를린 비평가상, 게오르크 뷔히너상, 독일전쟁시각장애인협회 방송극상, 오스트리아 국가대상, 안톤 빌트간스상 등을 수상했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김연주
박사(북칼럼니스트)
사진
네이버 책
2022년 10월호
2022년 10월호
에디터
하은정, 김연주
박사(북칼럼니스트)
사진
네이버 책